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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부탁해’의 그녀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고양이를 부탁해의 그녀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고양이를 부탁해를 봤던 때는 스물 한 살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대작 영화들의 틈바구니에서 사라진 좋은 영화들을 모은 특별전 와라나고(와이키키 브라더스, 라이방, 나비, 고양이를 부탁해)를 택했을 때 그 중 이 영화는 가장 기대가 되는 작품이었다. 스무 살 여성의 심리를 가장 잘 드러냈다는데 스물 한 살의 남적네가 어찌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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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른 세 작품의 감동과는 달리
고양이를 부탁해는 내가 기대하는 그 무언가가 아니었다. 얘네가 스무 살 맞어? 유치한 중고등학생으로 밖에 안 보이는데?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네이버의 영화소개에 의하면 세 주인공은 사랑스런 몽상가 태희(배두나), 아름다운 야심가 혜주(이요원), 신비로운 아웃사이더 지영(옥지영)이었지만, 내게 보이는 건 한심한 몽상가, 철없는 신입사원, 비참한 아웃사이더 뿐이었다. 한 번의 쓰라린 말에 쓰러져버릴지언정, 사회에 발을 들인 혜주는 그나마 가장 현실적이었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버린 둘은 무엇이었을까. 특히 거슬렸던 부분은 그들이 가족을 대하는 태도였다. 다른 사람들을 돕는답시고 봉사활동은 하면서 가족들에겐 이유 없는 성질을 부리는 태희나, 가족의 죽음 덕택에 구질구질함을 벗어 던지고 자유 아닌 자유를 획득한 지영이 성인다운 사람같지는 않았다. 가족이라는 것은 분명 누군가에겐 행복의 원천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부담일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건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세 주인공은 물론 다른 두 명의 조연에게도 가족의 존재는 거의 실종되어 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는 여전히 자기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는 철부지를 못 벗어났다는 얘기이다. 결국 그 둘이 날아간 곳은 의지를 안고 날아간 목적지가 아니라 현실에 발을 들이기 싫어 달아난 도피처에 불과하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얼마 안 되어 나는 대한민국 남자로서의 비극 혹은 자랑스러운 의무를 수행하러 가야 했다. 일년이 지난 뒤였을까. 이를 악물고 살아가야 했던 어느 날, 야간 초소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 영화가 생각이 났다. 나의 스무 살은 과연 그 세 사람과 달랐었나?
나는 저런 유치한 애들하고 다르다. 난 의지를 가지고 살고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라고 주장을 했지만, 나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세상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아는 것이 아니었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다고 했지만 최선을 다해 산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수년이 지나 30대를 바라봐야 하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큰 차이가 없었다. 스무 살이 의미하는 것은 당당한 성인 인생의 시작이 아니라 미완성 혹은 경계인 인생의 시작이었다. 이 영화의 적나라한 유치함이 화가 나는 것은 바로 내가 유치했었음을 인정해야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네이버 영화해설에 의하면 제목의 고양이는 혼자 있기 좋아하고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신비의 동물 혹은 야생동물과 애완동물의 사이에 놓인 고양이의 처지를 보여주며, 소녀와 여인,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서 있는 이들을 창가에 앉아 바깥 세상을 꿈꾸는 고양이로 보는 은유적 표현이란다. 현실을 생각하면 전자의 고양이는 집어 치우고 갖다 버리라고 말하고도 싶지만, 나 역시 때로는 아집을 부리기도 하고 이상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 채 갈등도 하는지라 그건 말조심해야 할 것 같다. 후자의 고양이는 지금 어디에 있을 지 궁금하다. 그녀들은 과연 비행기를 타고 간 곳에서 무언가를 찾았나, 아니면 여전히 경계를 헤매고만 있나. 방황하는 경계인 생활을 하다가 이제서야 힘든 경계를 하나 넘어섰다. 경계를 넘어선 뒤에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어제의 나는 언제나 유치하다는 것과 내일에는 또 다른 경계에 마주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다만 겸손하게, 하지만 치열하게 오늘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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