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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새롭게 보기] 동남아 미술 보기 #1

※ 본 글은 한-아세안 센터(www.aseankorea.org)에서 마련한 대중 강좌인 <동남아시아 새롭게 보기 A New Look at ASEAN>에 대한 간략한 요약과 느낌을 정리한 것이다. "동남아시아의 역사, 영화, 현대미술, 디자인에서 음식까지, 아세안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라는 부제에서 볼 수 있듯이 이번 강좌 시리즈는 이제껏 흔히 접할 수 없었던 동남아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이다.




[2009 열린 강좌 시리즈 II - 동남아시아 새롭게 보기]

세 번째, 동남아 미술 보기

강사: 안소연(2007 베니스 비엔날레 커미셔너)
일자: 2009년 11월 11일 (수)



* 이날 조금 늦어서 앞부분을 놓쳤음. 그리고 부분부분 정리한 거라 말이 이어지지 않더라도 감안해 주시길 :)

현대미술은 서구의 미술문법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은 서구의 식민지 경험을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현대미술의 공통된 변화단계:
1) 식민지 동화
2) 아방가르드 운동
3) 독립/자주 운동(민중적 미술운동 + 지역적 정체성 추구)
4) 동시대 미술로서의 위상 확보

1990년대 급격한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아세안 국가들은 근대화된 현재와 전통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서구 미술을 그대로 답습하여서는 관심을 끌지 못한다. 민중미술은 사실주의적 경향을 띠게 되는데, 사실 미학적 관점에서는 새로운 흥미 거리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주제와 이슈가 부각되기 때문에 관심을 받는다. 민중미술은 사회적, 정치적 상황들이 시각적으로 번안된 것이다.

미술(의 발달)은 사회/경제적 발전정도와 그대로 부합한다. 동남아에서는 어느 정도 다음과 같은 국가별 단계를 보인다. (아래로 갈수록 더 발달)
- 브루나이,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 베트남, 싱가포르, 필리핀
-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 태국

예술의 목표는 (어쨌든) 우리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다. (예술이든 다른 무엇이든) 우리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관계적 미학 Relational Aesthetics
- 작품 속에 관객이 개입하는 것으로, 1990년대 하나의 중요한 경향
- 전시장의 주인도 관객이며, 환경과 관객의 우발성을 중시

데카르트가 주창한 '인간의 이성'을 비판. 주체는 완벽하지 않다.
롤랑 바르트, "저자의 죽음". 완벽하게 전지전능한 저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의미선상에서, 완벽한 창조물은 없다. 이제까지 보고, 듣고, 배워온 여러 가지 요소를 한 번에 결합. 따라서 (예술은) 공동창작물.

관계적 미학에 대한 비판도 존재
- 작품을 객관적으로 판단 불가능
- 페스티벌에 휩쓸려 버림
- 너무 무형의 것


* 나도 미술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고, 강좌 내용을 세세히 다 적어온 것이 아니라 여기 내용만 봐서는 무슨 내용인지 감이 거의 안 올듯. 그래도 미술, 특히 현대미술에 관해서는 완전히 무지한 나로서는 작가들과 작품들을 소개받고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질의 응답시간에는 위 내용과 관계없이 중국과 한국의 팝아트에 대한 질문이 나왔는데 아래와 같이 답하였다.

팝아트는 대중적인 문화의 특질을 반영하고, 대중적 속성을 표현한다. 당연히 중국과 한국의 팝아트는 다르다. 중국의 경우 90년대 의도적으로 양산된 경향이 있다. 이른바 정치적 팝아트라고 할 수 있다. 전형적인 캐릭터를 소유하고 있으며, 중국 공산당에 대한 비판을 의식하여 액면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