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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계에서 이상주의자의 몰락을 보다

ru_happy 2008/06/30 13:36 Posted by ru_happy

[색계에서 이상주의자의 몰락을 보다]

*주의: 스포일러 많음


영화를 보면서 얻을 수 있는 메시지는 무수히 많을 수 있다. 감독이 의도한 메시지는 하나 혹은 몇 개일 수 있으나 일단 감독의 손을 떠난 영화는 관객 그 자신의 생각과 경험과 얽혀 다른 메시지들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떤 작품에 대한 글을 쓰기보다는 어떤 작품 내에 보이는 A라는 요소로 다른 주저리를 끄집어 내려고 하는 편이다. 영화의 본래적 의미와 문법적 요소에 대한 분석은 다른 많은 전문가분들이 알아서 해주실 테니까.

‘색계’라는 작품은 일제의 영향 하에 있던 2차대전 무렵의 중국을 배경으로 친일파 정보부 대장 이(양조위 분)와 그를 암살하기 위해 스파이 활동을 하는 왕 치아즈(탕웨이 분)를 다룬 이야기이다. 원작 소설은 극중 후반부 만을 다룬 짧은 단편이었다고 하니, 역사의 희생양이 되는 그들의 사랑과 심리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이안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강렬한 섹슈얼리즘도 이슈가 되었는데, 내게는 적나라하게 보여지는 둘 사이의 관계보다도 이를 만나기 위해 그녀가 겪어야만 했던 일이 충격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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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죽여야 하는 사람을 사랑해서 죽이지 못한 그녀나, 사랑하는 사람을 죽여야 했던 그보다도 내게 쓰라림을 주었던 인물은 따로 있었다. 바로 광위민 (왕리홍 분)이라는 캐릭터이다. 학생항일단체의 리더로 왕 치아즈와 서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녀를 치욕과 고통의 사지로 보내야 했던 그는 왕 치아즈의 인생을 망친 장본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광위민이 그녀를 좋아하면서도 그녀를 스파이로 만들었던 것은 그가 가지고 있었던 이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애국, 그리고, 일본에 대한 복수. 그러나, 그의 조직이 계획했던 작전은 잘 풀려가지 않는다. 많은 돈을 이 일을 위해 바쳤던 친구는 언제까지 이런 ‘영웅놀이’, ‘마님놀이’에 빠져 있을 거냐고 그를 비난한다. 이 조직과 작전은 결국 실패하고 그 구성원들의 삶을 부셔 버리며 파국에 이른다. 몇 년 후 다시 왕 치아즈를 찾은 광위민은 여전히 같은 이상을 추구하고 있다. 다만 이 번엔 좀 더 큰 조직에 있을 뿐이다. 광위민에 의하면 그 조직은 이전의 사건이 있었을 때부터 이미 광위민의 ‘애들 장난 같았던’ 학생조직을 지켜 보고 있었다고 한다. 왕 치아즈는 다시 가담하지만 그것은 광위민을 위한 것이나, 나라를 위한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이’를 다시 만나기 위한 수단이었을 수도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그녀가 광위민의 이상에 동조했다고는 볼 수 없다. 사실 그 이전에도 그의 이상에 대한 동조가 아닌 그에 대한 호감 때문에 그 길을 선택했다가 너무 많이 와 버린 것이리라.

문제는 타자였던 왕 치아즈는 제쳐두고라도, 광위민 그 자신은 자기의 이상이라는 것을 똑바로 보고 있었는가라는 점이다. ‘애들 장난 같았던’ 과거의 이상과 달리 현재의 이상은 분명함을 가지고 있었을까? 광위민은 왕 치아즈는 물론 함께 이상을 추구했던 친구들과 함께 끌려 나와 죽음을 맞는다. 그가 속했던 큰 조직의 보스는 그들을 버리고 달아나 버렸고, 권력자로 보였던 ‘이’도 감시를 받는 하수인에 지나지 않아 왕 치아즈를 구해 줄 여력은 없다. 광위민은 과연 마지막 순간에 숭고한 이상을 위해 최선을 다했느라고, 후회없는 죽음을 맞이한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남의 손바닥 위에서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한 탓에 자기는 물론, 친구들, 사랑했던 사람의 인생까지 망쳤다고 생각했을까. ‘애국운동’을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다. 단지, 그가 과연 진정으로 숭고한 사명감이나 확실한 목표의식을 가진 인물이었는가에 회의감이 들 뿐이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현실을 모르는 어리석은 이상주의자의 몰락으로 보였다. 이는 내게도 깊은 씁쓸함을 가져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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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십걸과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ru_happy 2008/06/24 00:20 Posted by ru_happy

[가십걸과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미드 ‘가십걸’은 이른 바 ‘It Girl’이라고 불리는 트렌드세터, 상류층 청소년들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의 독특한 매력은 나레이터 ‘가십걸’의 존재에 있다. 일종의 스캔들 전문소식통이라고 할 수 있는 가십걸은 화면에 얼굴 한 번 비쳐지지 않지만 이 드라마를 기존의 청춘 드라마와 차별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베로니카 마스’의 여주인공이자 ‘히어로즈’에서도 모습을 볼 수 있는 크리스틴 벨이 이를 맡아 매력적이고 미스테리한 목소리를 선사해주고 있다. ‘친애하는 가십걸로부터’라고 번역될 수 있는 ‘XOXO Gossip Girl’ (XOXO는 껴안은 모습과 둥근 입술의 이모티콘으로 Hugs & Kisses를 의미)은 그야말로 이 드라마 최고의 명대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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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가십걸 내의 커뮤니케이션 구조는 다음과 같다. 사람들은 핸드폰을 이용해 문자, 사진, 동영상을 이용하여 가십거리들을 가십걸에게 보낸다. 그러면 가십걸은 이를 블로그에 게재하고 모든 구독자들(그러나 보통 가십의 당사자는 제외한)에게 핸드폰으로 그 소식을 다시 전해 준다. ‘A가 B몰래 C와 키스를 했다고 하더라.’라는 소식을 전교생들이 알게 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다. 가십의 특성 상 그 소식은 누군가의 상처를 요구하는 은밀하거나 가학적인 정보인 경우가 많다. 또한 이의 영향력은 또래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크고 감수성이 풍부한 청소년들의 특성을 고려하면 절대적이다.

적나라한 비밀들을 공개해서 사람들의 원망을 받기도 하는 가십걸이지만, 그녀에게도 나름의 원칙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원 미상의 정보를 싣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야.” 등과 같은 대사에서 엿볼 수 있듯이 거짓된 정보를 전달하지는 않겠다는 것이 하나의 원칙일 것이고, 자신의 정체를 절대로 드러내지 않겠다는 것이 또 하나의 원칙이다. 사실 누구 한 사람에게 정보가 독점될 때 자연히 이루어지는 것은 그 사람의 권력화이다. 남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것, 남의 약점을 알고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부릴 수도 있게 만드는 파워를 그녀에게 쥐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십걸은 그러한 사악한 존재가 되지 않는다. 그저 개개의 사람들이 보낸 정보를 다수의 다른 사람들에게 확산시켜주는 중립적인 매개체, 하나의 게시판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결국 가십들이 일으키는 근본적인 문제와 책임은 남을 해하려는 의도를 가진 정보 제공자들에게 있는 것이지 가십걸에게 있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가십걸을 비난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결코 시스템의 구조 상의 잘못이 아니라, 침해성을 가진 사적정보를 공적화했다는 내용 상의 문제 때문일 것이다.

가십걸이 최신의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안 좋은 방면으로 활용된 예라고 본다면, 국내에는 이와 유사하지만 매우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방면으로 사용된 예가 있다. 바로 촛불 문화제이다. 인터넷 매체들과 카메라폰을 든 참여자들은 현장을 생중계하고, 집에서 인터넷 중계를 확인하는 사람들은 다시 이들에게 타 지역의 현황을 문자로 연락해주는 이 시스템은 많은 사람들의 핸드폰과 컴퓨터 모니터에 ‘무서운 비밀’들이 쏟아져 나오게 만들었다. 거기에는 우리의 건강을 담보로 한 거래에 대한 비밀도 있었고, 거리에서 벌어진 폭력에 대한 비밀도 있었다. 이것들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막기 위해 파헤쳐야 할 비밀들이었다. 예전 같으면 최고의 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 정부와 거대 기존 언론사들에 의해 감춰져 버릴 수도 있었던 진실들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덕분에 공개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은 정보통신의 발달과 함께 계속 발전할 것이고, 그 기술은 기본적으로 가치 중립적이다.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결국 우리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그러나, 그렇게 국민과 소통하겠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은 여전히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있나 보다. 온라인 포털과 메타블로그에 대한 통제 주장이 흘러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그 본질적인 이유가 그것들이 가십걸처럼 악용될까 걱정되어서인지, 자기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함인지는 너무나도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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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글리베티, 소외된 자들의 웃음

ru_happy 2008/06/16 22:19 Posted by ru_happy

[어글리베티, 소외된 자들의 웃음]

*주의: 스포일러 있음.

‘못생겼지만 착하디 착한 사람의 성공기.’ 광고로 처음 ‘어글리베티’를 접했을 때의 인상은 바로 그것이었다. 흔하고 뻔한 이런 주제의 드라마가 이제 와서 무슨 가치가 있을까 생각하던 무렵 이 드라마는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고, 이어 SAG(Screen Actors Guild Awards 영화배우조합상) 최우수 여자 연기상과 에미상 여우주연상, 감독상까지 휩쓸어 버렸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힘을 내뿜게 했던 것인지 궁금해서 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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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시작은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가난하고 못생겼지만 착한 여주인공이 우연한 기회로 얻은 좋은 직장, 잘 나가는 매력적인 사람들과의 강렬한 대비와 주인공을 힘들게 하는 차별들. 그런데 에피소드가 더 해갈수록 소외된 자는 주인공만이 아님이 드러나게 된다. 주요 인물들을 나열해 보면 대략 이와 같다.

지나치게 못생긴 여주인공, 불법체류자에 살인범인 아버지, 철없는 미혼모 언니, 동성애자 성향의 조카, 섹스 중독에 마약 중독까지 겪는 남자 주인공, 성전환한 그의 형(누나), 알코올 중독인 그의 어머니, 폭력 남편을 피해 도망친 직장 동료 등등. 이런 사람들이 주인공인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전체적으로 웃음과 애정어린 시선을 잃지 않는다. 미숙한 작품들과의 차이점은 이러한 따뜻함이 터무니없는 환상에 의존하는 동화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아픔들을 직접 마주서고 인내하고 이겨내며, 작은 행복을 나누어 감으로써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작품 전반에 걸쳐 악역으로 등장하던 세 인물들도 딸과의 갈등으로 아파하는 어머니, 어머니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고백하지 못하던 동성애자, 사랑에 아파하는 여인의 모습을 함께 가지고 있어, 온갖 모략이 난무하는 상황에서도 마치 강풀의 만화를 보는 것 같은 따뜻함이 있다

철저히 자본 중심적이고, 사회적 차별이 가득한 미국에서 어떻게 이렇게 소외된 자들을 전면적으로 내세우는 드라마를 내세우고, 예쁘지도 않은 라틴계 여배우에게 많은 상들을 몰아 줄 수 있었을까. 단순히 라틴계 미국인들의 지위 향상 탓으로 돌리기엔 우리가 보고 생각할 점들이 많다. 싸잡아서 비판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겠지만, 지금도 TV를 켜면 많은 드라마에서 주위에서 보기도 힘든 대가족이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가정부를 부리며 연애만을 하고 있지는 않나?

어느 사회나 소외 받은 자들은 있고 사회의 구성원들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써 그들에게 손 내밀어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웃을 수 있는 권리가 있으니까. 그런데 왜 우리나라는 소수의 권력자들이 작은 촛불들을 쓰러뜨려가며 더 많은 사람들을 소외시키려고만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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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과학자는 예술가가 아닌 과학자이며,
최악의 예술가는 과학자가 아닌 예술가이다."

물리학자 아르망 트루소 (생각의 탄생에서 발췌)


모든 화가는 대상을 정밀하게 모사하는 것에서부터 미술을 시작한다. 예민한 관찰력, 공간-색채에 대한 지각능력이 없으면 그의 예술적 목표가 캔버스에 둥근 점하나를 찍는 식의 추상적인 것이라도 좋은 화가가 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뮤지션은 뇌 속에서 발생한 주파수영역의 패턴(화음)과 시간영역의 패턴(리듬)을 악기를 통해 구체화한다. 그의 목표가 5분간의 침묵과 그로 인해 두드러지는 관객의 숨소리 등으로 이루어진 모호한 예술이라고 할지라도, 시간과 주파수 양 영역의 수학적 패턴을 사고하지 못한다면 좋은 뮤지션이 될 수 없다. 또한, 종종 오감의 영역을 넘어선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과학 이론은 그 결과물이 논리-수리의 언어로 정의된다고 하더라도 사실 그 시작에서는 예술적 영감에 가까운 직관(상대성 이론, 육각형 분자 구조)에 의존한다. 뇌에서 발생하는 직관적인 흐름을 빠르게 과학의 언어로 해석할 줄 모르는 과학자에게서는 창조적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이치다.

사람은 살면서 목표하는 바가 무엇이든 간에, 그와 정반대에 있는 듯한 가치를 추구할 줄도 알아야 한다.



사족: 이 책을 아직 읽지는 않았으며, 상기 내용은 이 책에서 다루는 일부 주제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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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의 탄생(양장) 상세보기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지음 | 에코의서재 펴냄
천재들이 활용한 창조적 사고의 13가지 도구들 <생각의 탄생>은 분야를 넘나들며 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13가지 생각도구를 전해주는 책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파블로 피카소, 마르셀 뒤샹, 리처드 파인먼, 버지니아 울프, 나보코프, 제인 구달, 스트라빈스키, 마사 그레이엄 등 역사 속에서 가장 창조적이었던 사람들이 사용한 13가지 발상법을 생각의 단계별로 정리하였다. 이 책은 역사상 가장 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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