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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 그 간절함에 관하여

ru_happy 2008/08/30 00:53 Posted by ru_happy

[메멘토 - 그 간절함에 관하여]

‘다크나이트’의 흥행이 계속 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만화 속의 캐릭터를 진짜 같은 현실로 끌어 들여와 상당히 인상깊었던 ‘배트맨 비긴즈’가 기대만큼의 흥행을 하지 못했었기에, 이번의 결과는 조금 의외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번에는 ‘메멘토의 천재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이 대중적으로도 이름값을 하고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아 왠지 기분도 좋다. 친구와 함께 극장을 나서면서, “으아아, 이렇게 갈 데까지 다 가버리면 (너무 잘, 그리고 너무 적나라하게) 도대체 다음 편에선 어쩔 셈이야!?”라고 탄식을 나누었던 ‘다크나이트’는 일단 시간을 두고 좀 더 곱씹어 볼 참이라, 이번에는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이름을 우리 머리 속에 처음으로 새겼던 ‘메멘토’에 대한 기억을 되돌려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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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는 ‘유주얼 서스펙트’나 ‘식스센스’처럼 한때는 ‘반전영화’의 대명사로까지 군림했던 영화라 할 수 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독특한 편집 구성으로도 유명해서, 이후에도 이와 유사한 구성이 등장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그 이름이 등장한다. 그때만해도 이는 상당히 파격적인 구성이었기 때문에, ‘난해하다,’ ‘이해가 안 간다.’라는 평가들도 많았고, 그 때문에 온라인 상에서 ‘이 영화의 반전이 무엇인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등에 대한 문답들도 꽤 많이 오갔었다. 내 주변에서도 이 영화에 대해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던 사람들과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이 함께 있었다. 이해가 안 간다는 쪽의 한 경우는 영상언어를 나름 공부한 친구였기 때문에 그 친구가 스토리 흐름을 못 받아들였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단지 그 친구가 살아 온 경험은 레너드라는 인물과 그의 감정에 동화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감독과 작가(감독의 동생으로 나중에 소설판 ‘메멘토 모리’를 냈음)가 ‘답은 A이고 B와 C는 아닙니다.’라고 정의 내리지 않는 한 (그럴리도 없지만), 영화에 대한 해석은 자유로울 것이기에, 나 역시 어떤 해석은 옳고 어떤 해석은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의 해석은 ‘기억’이라는 것에 초점을 두는 대다수의 해석과는 조금 다르다. 하지만, 내가 당시에 분명히 내렸던 결론은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삶에 대한 간절한 욕구’라는 것이었다.


메멘토가 가진 반전은 ‘주인공인 레너드의 기억이 조작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사실 비교적 빠른 시간에, 그를 이용하려는 테디와 나탈리의 행동에 의해서 드러난다. 자신이 ‘새미’라고 기억하는 인물이 사실은 주인공 자신이라는 반전도 등장한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반전은 결말부에 이르러서야 등장한다. 바로 ‘레너드 자신도 자기의 기억을 조작했다. (테디를 범인으로 몰기 위해)’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메멘토는 ‘기억’에 관하여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특히 ‘기억의 조작’은 현실에서 보여지는 ‘정보의 불일치에 따른 혼동’이나 자연적인 시간의 흐름에 따라 특정한 사실, 예를 들면 좋았던 일이나 안 좋았던 일만을 기억하게 되는 ‘인식의 변화’와도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 내에서 가장 중요한 물음은 ‘기억’ 그 자체도, ‘반전이 얼마나 기가 막힌가.’도 아니고 ‘과연 그렇다면 그는 왜 자신의 기억을 조작했을까?’라고 본다. 그리고 바로 그것에 대한 답이 이 영화의 핵심적인 메시지가 될 것 같다. 그의 행동은 아내를 죽음으로 몬 자신의 잘못에 대한 죄책감이나 자기 잘못을 잊어버리려는 ‘자기합리화’에 의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만약 그의 처지였다고 생각해보면, 아내의 죽음이 너무 슬프고 힘들다면 스스로의 목숨을 버리는 것을 택하지 남의 목숨을 계속적으로 빼앗는 것이나 남의 도구가 되는 것을 택하지는 않을 것 같지 않나?

그렇다면, 과연 왜 그는 존 G라는 누구나 대상이 될 수 있는 표적을 원수로 설정하고,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테디마저 존 G로 설정해야 했을까. 그 답은 레너드 자신이 불태워버린 사진 속의 자기 모습에 있다. 희열에 가득찬 그의 표정은 바로 자신의 꿈을 실현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만약 당신이 레너드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추억을 먹고 사는 것이 사람이고, 사람과 어울리면서 살아가는 것이 사람인데, 당신은 10분마다 기억이 사라져서 정상적인 생활을 도저히 할 수 없는 입장에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답은 둘 중 하나다. 그 삶 같지도 않은 삶을 포기해버리던지, 그 삶을 삶이 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무언가 의미를, 가치를, 목적을 부여해야만 한다. 레너드는 전자를 택하는 대신 후자를 택했다. 그것이 지극히 비인간적인 목적인 살인일지라도 말이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생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레너드와 같은 극한 상황에 처해 있지는 않지만, 다양한 원인으로 인하여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겪어 본 사람은 상당히 많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럴 때면 어떻게든, ‘새로운 목표를 내 자신에게 부여해서라도’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레너드라는 인물이 감정적으로 더 가깝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크리스토퍼 놀란으로 되돌아가면, 그의 연출이 뛰어난 점은 ‘역순행과 컬러와 흑백의 분리’라는 독특한 편집을 사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기법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주효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메멘토’와 종종 비교가 되기도 했던 ‘돌이킬 수 없는’이 행복한 순간과 최악의 순간을 극명하게 대조시키기 위해 ‘역순행’이라는 기교를 사용했다면, ‘메멘토’는 같은 ‘역순행’을 회상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기억’을 상징화하면서 감춰진 반전을 극대화하는 기술로 사용했다. 새로운 배트맨 시리즈에서 그는 만화적인 상상력으로 점철되었던 시리즈를 ‘사실주의’라는 기법으로 대대적인 전환을 시도한다. 논란은 있지만, 적어도 나에겐 그것은 분명한 성공으로 보였다. 과연 다음에는 그가 무엇을 보여 줄 지 정말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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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그넘 KOREA – 타인의 눈에 비친 것

ru_happy 2008/08/20 00:28 Posted by ru_happy

[매그넘 KOREA – 타인의 눈에 비친 것]

카메라와 사진이라는 매체는 이미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하다. 과거에는 ‘기록’이고 ‘기념’이었다면 지금은 ‘취미’이자 ‘예술’이자 ‘생활’이랄까? 오늘 하루에만도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찍히고 있고, 나는 집 한 구석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이 순간에도 사진 속에 담긴 많은 사람들을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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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그넘 KOREA 사진전은 오히려 이러한 깊숙한 친밀감 때문에, 내겐 다소 어색하게 보였다. ‘사진전’이라고 하면 떠올려지는 그런 이미지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뭔가 딱딱하고 고급스러울 것만 같은 ‘전시장’이라는 배경은 종종 고요함을 즐길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된다. 사진을 감상하는 순간에 그 자체의 이미지만을 바라보는 것은 아니고, 괜히 예술 전문가라도 되는 양 폼 잡고 분위기를 느끼면서 스스로의 망상에 빠져 보는 것이다. 그러면 작은 사물에 불과했던 사진은 내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매그넘 사진전은 그러기에는 너무 붐볐다. “지금 사람이 많아서 입장하시려면 20분 정도 기다리셔야 할 수도 있어요.”라는 매표소 담당자 분의 말이 있었지만, 20분을 기다린다 한들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 나는 친구와 함께 전시장에 들어섰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진을 이렇게 좋아했었나?’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윈도우 쇼핑을 하는 사람들처럼 차례차례 대열을 이루어 전진해 나아갔다. 도슨트(사진 작품을 해설해주시는 분) 쪽에는 특히 대규모의 인원이 모여 있어 나는 일부러 반대쪽으로 피해 다니며 사진을 봐야 했다.

사진의 이미지도 그러했다. 매그넘의 사진들은 ‘와.’하는 경탄을 주지는 않았다. 워낙 화려하고 멋진 구도를 가진 예술사진들에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사진들은 좀 더 ‘기록’이라는 개념에 가까워서 기교보다는 현장을 그대로 옮긴 느낌이었다. 특이한 것은 분명 이것이 바로 1년 전인 2007년의 사진들임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마치 70년대의 사진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흐릿한 하늘과 얼룩진 건물들, 주름진 얼굴의 노인. 분명 남대문이 보이는 서울의 현장이지만 그것은 ‘오늘’이 아니라 ‘어제’였다. 날짜가 분명히 찍혀 있지 않고, 한국에서 찍었다고 분명히 적혀 있지 않았다면, 이 작가들을 한국을 이삼십년 전 같은 풍경에 동남아시아에서나 볼 법한 뱃사공으로 그려냈던 미드 ‘로스트’의 제작진과 마찬가지로 한국에 대해 알지 못하는 서양인들 취급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졌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사진 속의 사람, 광화문 부근으로 보이는 곳에서 찍힌 직장인을 알아보고는 신기해하면서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 외국인 작가와 그에게 사진을 찍힌 한국인과 그 사진을 우연히 마주친 친구들이라는 이상야릇한 조합은 이것이 과거가 아니라 현재임을 일깨워주었다.

사실 사진이라는 것 자체가 찍고 나면 더 이상 ‘현재’가 될 수 없는 본연적인 한계를 가지고는 있기는 하다. 하지만 변화한 대상이 타자가 아닌 우리, 혹은 나 스스로일 때는 그 시간차이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일 따름이지만, 매그넘의 한국 사진들을 굳이 하나로 정의 내리려고 애써본다면, “스틸 사진에서도 느낄 수 있는 한국의 ‘역동성’”이 될 것 같다. 변하지 않는 것만 같은데 정말 빠르게 변한 한국,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곳. 그와 동시에, 변하지 않은 줄 알았는데 너무나 변해 버린 나 자신. 좋은 쪽으로만은 아닌 변화들. 이러한 아쉬움과 낯설음이 내가 매그넘 사진에서 처음 느꼈던 어색함의 정체였을 수도 있다.

사진이 전시되는 곳 옆에는 따로 매그넘의 창립자인 로버트 카파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상영되고 있었다. 전시장에는 그렇게 사람이 많더니, 거기에는 컴퓨터의 관리자도 없고 다른 관객도 없어, 친구와 나는 직접 컴퓨터와 스피커를 연결하고 영상을 보게 되었다. 사진전이 ‘조금 실망스러움’에서 시작해서 ‘의미 있음’으로 끝났다면, 다큐멘터리는 강렬한 인상 그 자체였다. 영상 속 사진들에 전쟁의 현장을 그대로 남기려고 했던 치열함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한 ‘치열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느슨해진 내 삶에서 잠시 놓쳐버린 치열함을 되찾아 의미 있는 삶의 장면들을 만들어 가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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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8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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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 다크나이트(The Dark Knight, 2008)

편의점 2008/08/14 09:47 Posted by 편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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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작품인 배트맨 비긴즈에서 크리스찬 베일 배트맨을 맡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열광했던 기억이 아직 지워지지 않았는데 3년만에 나온 다크나이트는 히스레저로 떠들썩 합니다. 예전의 저였다면 이런 중에도 삐딱하게 기여코 크리스찬 베일 이야기를 떠들어 댔겠지만 지금은 그럴 힘도 상상력도 없네요.

 미국에는 휴 그랜트의 발음을 가르치는 학원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미국은 영국식 발음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는 소리지요. 물론 말하는 사람이 휴 그랜트라 더욱 그럴 수도 있지만요. 러브 액츄얼리에서도 'bottle'를 '바를'이 아닌 '보틀'로 읽는 영국인 남성에게 열광하는 미국인 여성들이 등장합니다.

 저 역시 영국식 발음에 열광하는 편입니다. 영국식 발음은 마치 연음이 많은 미국식 발음과 정확하게 딱딱 끊어지는 일본어를 적절하게 섞어 장단이 잘 조화된 음악을 듣는 것 같거든요. 고전적인 느낌도 참 좋구요.

 영화를 보면서 '다른 놈들은 입다물고 있어. 쟤만 보고 싶어!'란 생각이 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만 가장 대표적인 영화를 들자면 '캐러비안의 해적' 시리즈가 되겠네요. 역시나 영국식 발음과 연관이 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키이라 나이틀리가 그 주인공인데요. 그녀가 입을 열 때마다 감탄사를 연발했던 기억이 나네요. 적절하게 비음이 섞인 소리가 아주 매력적이었습니다. 장 뤽 고다르가 불어로 이야기 하는 여성을 가장 아름답게 봤다면 전 두말 않고 영국식 발음의 키이라 나이틀리! 라고 외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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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다크 나이트에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배트맨 시리즈에 그렇게 흥분하지도 않았았고 히스 레저는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처음 본 배우였습니다. 오히려 제이크 질렌할을 보며 하악댔던 기억이 나네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앞에 엎드리고 싶다는 건 아니구요. 다만 메멘토의 놀란 감독을 좋아했고 이퀼리브리엄의 베일을 좋아한데다 워낙 극찬이 쏟아지기에 조금 기대를 가지고 있었지요. 하지만 히스 레저가 입을 열자 생각이 조금씩 바뀌더군요. 마치 키이라 나이틀리를 보는 기분. 다 필요없고 조커가 나와서 대사를 날려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더군요. 적절하게 느린 속도와 중간 중간에 '쩝쩝'대는 이펙트. 애매한 각도로 기울어진 얼굴과 가끔 한번씩 까딱내는 목. 친구가 '약물 중독으로 죽었지? 약 하고 연기하는거 같은데?' 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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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대악'을 연기한 히스 레저. 전 뭐 그런건 잘 모르겠구요. 요즘 사투리와 발성법 때문에 고민이 많은 저로서는 히스 레서의 발음, 발성을 포함한 연기만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이건 예전에 본 고로시야 이치의 카키하라를 볼 때 마다 조커 오마주란 생각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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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웨이와 삶의 여행

ru_happy 2008/08/10 01:17 Posted by ru_happy

[사이드웨이와 삶의 여행]

*주의: 스포일러 있음


영화 ‘사이드웨이’에는 여행을 함께 떠나는 두 남자가 등장한다. 와인을 좋아하고 전처를 잊지 못하는 순정파 작가와 결혼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화려한 밤들을 보내고 싶어하는 한물간 배우. 둘은 취향도 다르고 이 여행에서 바라고 있는 것도 다르지만, 함께 짧지만 의미있는 여행을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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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는 참 많은 종류가 있겠지만, 나는 여행의 중요한 구성 요소들 중 하나가 ‘함께 여행을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니 어쩌면 가장 중요한 요소일 수도 있다고 본다. 혼자서 하는 여행에 대한 글들을 읽을 때면, 그 자유로움과 낭만에 대한 꿈을 꾸곤 했지만, 내 경험은 그렇지만은 않았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혼자서 여행할 기회가 생기기는 했지만, 그것은 좀처럼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지는 않았다. 물론 새로운 것들을 보는 즐거움은 있었지만, 글을 적어 보려 해도 오히려 밤 늦은 시간 혼자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을 때보다 잘 써지지 않았고, 멋진 사진을 찍으려 해도 뭔가 깊은 감상이 우러나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카메라를 아예 챙기지 않게 되었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던 내가 갑자기 여행에서 사진을 멀리하게 된 것은, ‘공감’에 대한 괴리감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내게 정말 재미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여행은 오랜 친구, 서로의 거의 모든 생각을 공유할 수 있었던 친구와 함께 떠난 일본 여행이다. 그전까지 여행다운 여행을 제대로 해 볼 기회가 없었던 나는 디카도 구입하고 빈티지 풍의 여행 수첩도 내 것 하나, 친구 것 하나 장만했다. 워낙 먹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는 반드시 먹어 볼 것에 대한 리스트만 열심히 준비해서 여행길에 올랐다. 나는 참 열심히도 여행일기를 썼던 것 같다. 그림도 그리고, 영수증이나 표 같은 여행 중에 얻은 것들도 붙이며 일기를 꾸몄다. 매일매일 밤은 친구와 키득키득거리면서 일기를 쓰고, 서로의 일기를 읽어보고 잔액을 확인하며 다음 날의 여행 계획을 정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돌아와서도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열심히 사진들을 올리며 즐거웠던 시간을 되돌아보곤 했었다. 지금도 그 친구를 만나거나, 그 일기를 꺼내 보면, 그 때의 즐거운 기억이 새삼 되살아난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다른 친구들과는 그 당시에도 그런 즐거움이 잘 공유가 되지 않았었다. 여행일지나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줘도 ‘음, 그렇구나.’ 이상의 느낌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입에 붙어 있던 “그 여행 진짜 재밌었다. 여행 또 가고 싶다.”라는 말도 어느 샌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혼자서 하는 여행에서 사진을 찍다 보면 문득 그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는 적어도 같이 여행을 했던 친구와는 공감을 할 수 있었는데, 이 여행은 그 누구와도 공유가 되지 않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더 이상 셔터를 예전처럼 누르지는 않게 되었다. 사진에 얽매이지 말자. 그저 내 머리에, 가슴 속에 담아두고 나의 양식으로 삼는 것으로 만족하고 누군가에게 보이려고 노력하지 말자.

그러던 어느 날, 뉴질랜드의 백팩커(여행자 숙소)에서 머무르고 있던 나는 내 생각을 새롭게 바꿔주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니 어떻게 그것밖에 안 먹어?”라는 어색한 관심으로 말문을 틀 수 있었던 핀란드 친구와 “아니 정말 그거 너 혼자 다 먹을거야?”라는 장난스런 말로 말문을 틀 수 있었던 말레이시아 친구. 그들과 보낸 시간은 단지 몇 일에 지나지 않았지만 마치 오랜 친구인 것 마냥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여행을 즐길 수가 있었다. 나는 그러다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아니 왜 이 사람들이 이렇게 편하게 느껴지지? 나에겐 한국에 나를 기다리는 많은 친구들이 있는데, 왜 그 친구들보다 이 사람들이 더 가까워 보이지? 그 친구들은 갈수록 나와 공유하는 것들이 없어져 가고, 멀어져만 가고 있는데……

어린 시절의 나는 사람을 사귀는 것이 좁고 깊은 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저 마다 다르고, 살아온 생활이 다를수록 그 차이는 큰데, 서로를 이해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냐라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친구들보다는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친구들에게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곤 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삶을 시작하게 된 대학 생활 동안 변하기 시작했고, 다시 그 생활을 떠나 낯선 곳을 여행을 하면서 또 한 차원의 변화를 겪을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결국 가장 가까운 친구는 ‘가장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만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리고 가장 좋은 여행은 혼자 떠나서, 그곳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이드웨이에서 작가인 주인공은 계속 배우인 친구에게 구박받으며 끌려 다닌다. 사실 여행의 목적 자체가 그 친구를 위한 총각파티 성격이 강했는데, 여자 사귀는데 도움은 주질 않고, 방해만 하고 있다는 이유이다. 결국 그 친구는 여자를 ‘꼬시는’데 성공해 여자와 시간 보내기에 바쁘고, 주인공은 모텔에 혼자 남아 친구 뒷수습이나 하는 처지가 된다. 이런 상황과 개인적인 문제들이 겹쳐 둘은 다툼도 벌이지만, 친구는 이렇게 항변한다. “와인도, 문학도 이해하는 네가 왜 나의 성욕은 이해를 못해?” 여행이든 삶이든 뭐든, 같은 자리에 있는 동반자라는 것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일지도 모른다. 다르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다르기 때문에 이해를 하려는 서로의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이 영화가 유쾌한 것은 이것이 친구의 결혼식전 연애 해프닝만으로 끝나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이다. 친구에게 끌려만 다니던 주인공은 실언으로 친구의 비밀을 누설해서 친구가 곤경에 빠지지만 시치미를 뚝 떼기도 하고, 관심 있는 여자에게는 그 친구는 대학 동창일 뿐이지 잘 알지도 못한다며 자기는 전혀 다르다고 말하는 등 지금까지와는 정 반대로 자기 살 길만 생각하는 얌체 같은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친구가 판타지스러운 여행 혹은 일탈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갔을 때, 주인공은 친구는 꿈만 꾸고 이루지 못한 여행지 로맨스의 해피엔딩을 자기가 실현시키러 달려 나간다.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인생은 여행과 같다.’는 흔한 말을 떠 올렸다. 정확히는 혼자 떠나는 여행일 것이다. 둘은 여행을 같이 떠났지만, 사실은 각자의 여행길에 서로가 잠시 동반자였던 것뿐일 수도 있다. 그리고 주인공은 그 여행에서 새로운 동반자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리라. 결국 인생 속에서 사람은 혼자이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새로 만나고 어울리고, 때로는 헤어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기왕이면 내 여행에는 많은 좋은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푸른 눈의 친구가 했던 말을 떠올려 본다. “나는 행복한 사람들이 좋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위 사람들도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나는 아직 행복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언제나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이고, 분명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될 날이 있을 지,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라는 말을 할 수 있도록 나의 삶을 채워 나가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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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놈놈...

alright 2008/08/04 16:19 Posted by al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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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형이라도 없었으면 큰 일 날뻔..



최근 개봉한 ‘놈놈놈’이 흥행일로를 달리고 있다. 추격자의 관객동원도 뛰어 넘었다고 하니, 오랜만에 한국산 블록버스터가 한국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는 듯, 무조건 기분 좋은 일인 것처럼 부산스러운 것 같다.

‘놈놈놈’을 보고, 성질이 났던 건 아마 나뿐 인가 보다. 아니, 나랑 같이 영화를 봤던 외국인 뿐이었나 보다. 오랫동안 기대했던 영화를 보고 나오며 정말 괘씸한 느낌이 들었던 건 ‘인디아나 존스’보다 차라리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진 않았다. 뭐 이런.

대부분 ‘놈놈놈’의 느슨한 네러티브 구성은 인정하는 분위기다. 그래도 최초의 본격 국산 서부극의 시도, 그리고 김지운 감독의 세련된 비주얼 감각은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뭐, 그건 좋다.

그러나, 아무리 용기 있는 시도였다 할지라도, 땟갈이 줄줄 흐르는 그림을 보여주었다 할지라도, 기본을 지키지 못했다면 그러한 노력들이 칭찬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인지는 의문이다. 까놓고 말해서, 이건 A대학 졸업 작품전이 아니지 않은가.

‘놈놈놈’에 대해 내가 가진 불만은 미스 밸런싱과 함께 액션신의 빈약한 연출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서술하자면, 만화적인 네러티브 + 사실적인 연기+ 별 의미 없는 주제 + 뜬금없는 배경, 만주 가 김지운 감독의 ‘스타일’이란 것 외에는 공통점을 찾을 수 없이 얽혀 있다는 것이고, ‘통쾌한’ 액션신은 도통 누가 누굴 쏘고, 나뒹굴어지는 사람이 누구며, 도대체 폭탄은 왜 저렇게 많이 터지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컷의 나열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놈놈놈’만 못한 영화는 셀 수 없이 많다. 보고 성질이 났던 영화도 아주 많았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제작비에, 그렇게 많은 공을 들이고, 그렇게 좋은 배우들과 작업한 영화가 – 무엇보다 그렇게 나를 기다리게 해놓고 - 이 정도 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 나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내가 엄격한 기준으로 영화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밸런싱은 감독의 기본적인 역량이며, 이해할 수 있는 씬 구성은 대중예술로서 가져야 할 당연한 미덕인데.. '놈놈놈'은 그런 기본 뼈대가 빈약한 영화였던 것이다.

뭐, 깊이보다는 허벙한 넓이, 기본을 뛰어 넘은 값싼 재주가 판을 치는 세상인데, 영화 한 편에다 대고 너무 쓴 소리를 했나.. 싶은 생각도 든다. 나름 큰 웃음도 준 영화였는데, 뭘 그렇게 까다롭게 굴 것까지 있어야 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내 돈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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