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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s and Lovers - D.H Lawrence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8. 27. 01:35

The kiss, Rodin,1886

 

Sons and Lovers - D.H  Lawrence


사랑에도 태생적인 인과관계가 있을까. 인생의 모든 끈이 사랑까지 지배하는 것은 과욕아닌가.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당시 나의 관심사는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 혹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소설 줄거리적인
요소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삶의 요소들은 구획별로 정리되어있는 것이 결코 아니며, 소설처럼 이야기의 처음과 끝을 내가 섭렵할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것을 깨달아서일까,,
 책에 대한 시각이 점점 달라짐을 느낄 수가 있다.
책을 처음 읽었던 대학교 3학년 당시 나는 책의 줄거리와 상징적인 의미, 심지어 철학과 신화적인 해석까지 갖다 붙였던
장황한 해설가였다면 지금의 나는 주로 소설의 연대기적인 성격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예컨대, 소설의 인과관계는 소설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주인공의 심리와 행동패턴에 영향을 미친다. 그 인과관계의 가장 근본적인 뿌리는 유전적인 영향과 더 나아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만들어진 삶의 환경에 의지한다. 어떻게 보면 소설의 인과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이러한 유전적인 문제와 환경의 영향이라고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 이러한 요소들이 소설을 현실에 가깝게 만든다고 여기기 때문에 이런 인과관계적 시각의 해설을 선호하는 편이다. 소설이든 실제 삶이든 모든 것은 단절의 연결이 아니라 연결의 연속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아들과 연인들은 작가의 자전적인 얘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주인공의 환경적인 면에 있어서는 작가의 그것과 많이 닮아있다. 광부인 로렌스의 아버지는 춤과 술을 좋아하고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으며, 중산층 계급의 어머니는 결혼 전 교사였으며 독실한 신앙인이었다. 둘은 첫눈에 반해 결혼을 하게 되지만 서로 다른 개성과 돈문제로 다툼이 잦아지고, 남편은 아이들과 아내로부터 소외되었으며 아이들은 불안해했다. 로렌스의 유명한 ‘채털리부인의 사랑’ 에서도 그렇고 ‘아들과 연인들’ 속에서도 남녀간의 만남에 대한 불안정하고 불균형한 시각, 태생적으로 다른 개성으로 인한 연인들의 괴리가 나타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소설에서 광부인 남편에 대한 불만족으로 인한 편향된 어머니의 사랑은 아들들의 사랑에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 소설의 모든 관계의 중심인 어머니(모렐부인)은 동시에 이 소설의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해주는 인물이다.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왜곡된 사랑은 주인공 폴로 하려금 ‘오이디컴플렉스’를 껴안게 하며,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 사이에서 심각한 정신적 괴리와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폴에게는 미리엄과 클라라라는 두 명의 연인들이 있다. 미리엄은 폴에게 정신적 사랑을, 클라라는 육체적 사랑을 의미한다. 그 사이에서 어머니의 사랑은 폴의 영혼을 속박하며, 두 명의 연인들을 모두 거부하게끔 하는 ‘표류지’의 역할을 한다.


책을 읽을 당시 작가가 당연히 여자일거라고 착각했을 정도로 모렐부인에 대한 지적 갈증과 남편에 대한 불만족에 대한 묘사가 엄청 섬세하고 생생한 것은 비단 작가의 탁월한 글솜씨 때문만은 아니리라! 소설 주인공의 폴처럼 어머니에게 고착되었던 작가의 유년시절의 사랑과 불운이 과연 이 소설을 씀으로 인해 해소가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아마도 내가 '아들과 연인들'에 유달리 애정을 가진 이유는 불완전한 사랑과 더불어 자식에게 자신의 모든 지적, 성적 열정을 쏟아부어야 했던 ‘어머니’에 대한 연민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을 투영하면서까지 자기자신을 똑바로 목격해야했던 작가의 처절함에 대한 공감(?)과 존경심때문일지도..

문득 인생의 끈이 어디에까지 닿아 있는가에 대한 문제보다도 그것을 똑바로 인식하고 지켜보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인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 역시 부디 나 자신에게 소외 당하지 않기를 바라며 짧은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