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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Six Feet Under

타인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어릴 때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던 대부분의 낭만주의자도, 현실의 파도에 휩쓸리다 보면 오히려 그것이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비관론자가 되어버리는 것 같다. 다만, 어떻게든 이해해보려 애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마음이 따뜻하다고 여겨지는 것만은 사실인 듯.

개인적으로 타인의 심리를 이해 또는 분석해보려는 성향이 강한 것이 사실이고, 실제로 요즈음 대부분의 스토리텔링에서 캐릭터의 이면을 탐구해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단번에 이해되는 캐릭터들이 난무하는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보면, 내 주변에 있는 사람(캐릭터)들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인간의 마음은 참으로 분석하기 어렵다. 그것이 관념이든 뇌 안에 있는 뉴런이든. 수십 수백 차원의 실세계와 그 안에서 자유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는 인간을 흉내내어 창조하는 작업은 어려운 일임에 분명하고, 그래서 소설과 영화와 만화와 연극이 예술인 것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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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x Feet Under는 제목이 암시해주는 바와 같이 장의사 가족의 이야기다.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인간들을 자신의 인생에 끌어들여 사는 장의사 가족 답게 이들은 대체로 우울하며, 대체로 만성 스트레스에 휩싸여 있고, 각종 정신적 강박을 앓고 있다. 5년에 걸친 이들의 삶을 치밀하게 엿보았음에도, 나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친구와 가족의 감정과 내면의 의식 흐름, 그와 관련된 트라우마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듯, 이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였으나, 그럴 수 없었다. 마치 살아있는 인간처럼, Six Feet Under의 피셔 가족들은 성장과정에서 형성된 복잡한 인격과 자기 내면의 다양한 가치들 간의 충돌을 겪고 있었고, 드라마는 시종일관 이를 드라마틱하게 묘사했다.

일견 괴짜 장의사 가족의 우울한 인생을 묘사하는 독특한 소재의 드라마로 그칠 뻔 했던 이 드라마는 그러나, 그들의 인생을 총합해 더듬어 보았을 때 분명히 관류하고 있는 몇가지 생각들이 있다. 현실에서의 개별 인생의 총합은 그다지 드라마틱한 경우가 없다. 하지만 결국 이들의 인생을 뭉뚱그려 생각해보았을 때, 나는 도리어 죽음이 아닌 삶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영속적이지 않은 인간의 삶이 영속적인 무언가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설령 그 삶을 실제로 살아가는 인간 개체가 그것을 부정하며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영원하고 단단한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것은 깨어지기 쉬운 이상과도 같은 것이어서, 다들 조심스럽지만.

예를 들어 가족 같은 것에서 인간은 제도적으로 관계의 영속성을 추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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