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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데스 프루프(Death Proof)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는 늘 기대를 가지게 합니다. 왜냐하면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데뷔작인 '저수지의 개들'을 통해 훌륭한 이야기꾼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큰 이슈를 불러 모았고 특히 '펄프픽션', '킬 빌'등의 영화는 관객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워낙 개성이 강해서 호불호(好不好)가 극명하게 갈라지기도 합니다. 게다가 '킬 빌2'부터는 그의 열렬한 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로베르토 로드리게즈 감독의 성장과 비교되며 타란티노 감독은 점점 신뢰를 잃어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의 최신작인 '데스 프루프'. 이 작품은 타란티노 감독과 연관된 많은 이야기에 불을 지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이야깃거리를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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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데스 프루프'에 대한 극단적인 반응을 이야기해보죠. '데스 프루프'는 그의 영화 성향에서 크게 벗어난 작품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열렬한 팬들로부터 환영받을만 하죠. 하지만 그 반대로 '점점 퇴보하고 하고 있는건가?'하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원인은 바로 그의 장기인 여자들의 '수다'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작품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수다'입니다. '과연 자막이 저 말을 모두 번역하고 있는 걸까?'할 정도로 배우들은, 특히 여배우들은 정말 많은 말을 쏟아냅니다. 게다가 이야기의 주제는 마약, 섹스이기 일쑤이며 이야기의 흐름에서 벗어나 있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삶 속에서 그냥 뱉어내는 말들, 시간을 죽이기 위해 할 수 밖에 없는 실 없는 대화를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 놓은 듯합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수다'는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데 문제는 과거에 비해 '입담'이 줄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영어의 뉘앙스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생기는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어두운 골방에서 성인잡지를 보며 킬킬거리는 느낌이 사라져 버린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이 없다는 것은 영화의 기획의도에서도 벗어난 일이지요. 70년대 동시상영 영화를 모티브로 로드리게즈와 손잡고 만든 '그라인드 하우스'의 한 작품이니까요. 낡은 LP가 돌아가는 듯한 사운드와 노이즈 가득한 화면, 편집실수인 듯한 갑작스런 화면 전환 등이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도 합니다. 하지만 그의 여러 장기 중에서 '수다'를 맛깔나게 드러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운 평가를 내리는 이유인듯 하네요. 또한 과거에 비해 단순해진 이야기 구성도 평가절하의 한 몫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맛깔스런 대사로 진행되는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타란티노표 영화의 매력이었는데 말이죠.

 그래도 감독은 그러한 아쉬움을 영상으로 채워 보여주고 있어서 위안이 됩니다. 발과 다리에 대한 끝없는 페티쉬도 페티쉬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펄프 픽션'에서 말한 배가 동그랗게 나온 여자의 매력입니다. 이러한 매력을 지닌 알린의 랩 댄스. 남성이라면 어두운 극장에서 숨죽이며 스크린을 바라볼 것입니다. 동시상영관을 목표로 만들어진 장면이라면 대성공인 셈입니다.

 '데스 프루프'가 가져온 또 다른 이야깃거리는 영화 장르에 관한 것입니다. 과연 이 영화의 장르는 무엇일까? 스릴러라 하기엔 이야기가 단순하고, 액션이라 하기엔 조악하고, 코미디라 하기엔 잔인하니까요. 그렇다고 셋 다를 붙일 수도 없는 일입니다. 심지어 페미니즘 영화라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일리는 있어 보입니다만 남자 역할과 여자 역할을 통째로 바꾸어 놓아도 즐기기에는 별 문제 없는 걸로 봐서는 성역할과 마초 때려잡는 영화는 아닌 것 같군요. 오히려 장르를 이야기하고 영화 속에서 심각한 무언가를 찾으려 하는건 영화 감상에 손해일 듯 싶습니다.

 영화가 페미니즘이건 후반의 카타르시스를 위해 전반을 일부러 지루하게 만들었건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닌 것 같네요. 그의 전작들은 대부분 복잡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이야기 전개에 집중하게 되지요. 게다가 끝없이 쏟아내는 대사 덕분에 자막 한 줄 놓칠까 집중을 흩을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장르적 특성이 '데스 프루프'에서는 나쁘게 작용한 듯 싶네요. 그 스스로가 장르적 특성을 넘으려 애썼고 무엇보다 B급 영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고 하니 아무 생각없이 아가씨 다리나 감상하며 후반부의 쾌감만을 즐기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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