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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의 붉은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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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이로의 붉은 장미>는 '세실리아'라는 궁상스런 여자와 영화 속의 남자 그리고 그를 연기한 실제 남자 사이의 관계에 대한 영화다.

지긋지긋한 현실에 살고 있는 '세실리아'는 <카이로의 붉은 장미>라는 로맨스 영화 속 남자 주인공'톰'을 사랑하게 된다. 식당에서 해고된 그날, 그녀는 영화관에 죽치고 앉아 그 영화를 보고, 또 보고, 보고 또 본다. 그러다 영화 속 '톰'의 시선이 그녀에게 꽂히는 순간 '세실리아'의 세계를 양분하던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진다. 그는 스크린 밖의 그녀에게 걸어 나와 사랑을 고백한다. 한편, 자신이 만들어 낸 가상의 인물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는 소식에, '톰'을 연기한 '길'도 그녀가 살고 있는 마을을 찾아 온다. 그는 우연히 '세실리아'를 만나고, 그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초현실적 삼각관계는 완성된다.

사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중학교 때였다. 그 때 나는 영화의 이 초현실적인 설정에 단박에 매료되어 버렸다. 영화 속에 또 다른 현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영화 속의 인물이 그것을 박차고 현실로 나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가상의 인물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 그 초현실적인 상황, 그 환상적인 상상력에 대한 기억 때문에 언젠가 꼭 다시 이 영화를 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성인이 되어버려서 일까. 다시 본 이 영화는 느낌이 좀 다르다. 어린 시절에는 영화 속의 세계와 주인공 '세실리아'에게 주어진 변화의 가능성에 빠져들었었다면, 이제는 그녀의 선택과 그 선택의 결과가 문제였다.

'세실리아'는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한다. 영화 속의 남자 '톰'. 그리고 현실의 남자 '길'. 결국 그녀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영원히 행복할 수 있는 환상이냐, 아니면 또 다른 현실이냐다. 현실을 선택하기에 '톰'이 약속한 환상은 너무나 달콤하고, 환상을 선택하기에 '길'이 보여주는 또 다른 현실은 너무나 생생하다. 결국, 갈등 끝에 그녀는 현실을 선택한다. 영원할 수 있지만, 변하지 않는 영화 속의 환상 보다는 영원하지는 않지만, 살아가지 않고는 알 수 없는 현실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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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게 버림받고 영화관을 다시 찾은 그녀를 보면서, 허탈함과 동시에 그녀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이 느껴졌다. 그녀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세실리아'가 왜 현실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인가, 그리고 내가 왜 그녀를 이해하는가 대해서 나는 좀처럼 그 이유를 말하기 어렵다. 단지 인간은 그런 바보같은 선택을 하는 존재라는 것 밖에, 결국 비참하게 버림받을 것을 알면서도 현실을 선택하는 존재라는 것 밖에,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서른이 다되어 가는 지금까지 이야기 만들기에 집착하고 있는 나도, 생각해보면 '세실리아'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녀 못지 않게 처량하고 궁상맞다. 그녀처럼 나도 이야기가 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을 벗어날 수 없는 까닭이다. '길'에게 버림받은 후 다시 극장으로 돌아와, 영화에 빠져드는 그녀처럼 나도 여전히 누구에게도 잊혀지지 않는 불멸의 이야기가 되기를 바라는, 불가능한 꿈을 쫓는 어리석은 인간일 뿐이다. 결국 그러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내 머리 속에 오랫동안 환상으로 기억되고 있던 <카이로의 붉은 장미>는 결국 냉혹한 현실이었으며 비극이었다.




-'세실리아'가 '미아 패로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