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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fant

용이 되지 못한 <디 워>

얼마 전 <디 워(D-War)>를 봤습니다. 꽤나 기사거리가 많은 영화였죠. 토론 프로그램의 주제로도 등장하고.

저는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그에 관련된 기사나 평은 거의 보지 않는 편이고, - 사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영화평이나 기사는 찾아보지 않습니다만 - 한창 <디 워>가 한국 사회에서 논란의 중심에 서 있을 때 한국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사전 정보나 여러 쟁점들에 관한 의견으로부터 조금 더 거리를 둔 상태에서 영화 자체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참고로 이 글을 쓰기 전 <디 워>에 관해 읽은 글이라곤 요 앞에 재노형이 쓴 후기가 전부입니다.)

그래도 워낙 말이 많은 영화였기에 친구들을 만나면 <디 워>에 관한 얘기를 잠깐이라도 안 들을 수가 없는데 대충 듣자하니 "뭐, 그래픽은 좋은데 내용이 영 별로더라." 였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아마 영화 외적인 논쟁을 떠나서 영화에 대한 평은 대부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더군요.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을 하는 것이 물론 연출, 스토리, 연기 모두 수준 이하였지만 그나마 자랑하는 CG 역시 정말 별로였다고 생각을 합니다. 영화 보는 내내 가장 눈에 거슬렸던 것이 바로 CG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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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War> (www.d-war.com)

영화는 가짜입니다. 거짓이죠. 이건 영화를 만드는 사람도 알고, 영화를 보는 사람도 압니다. 하지만 서로 계약을 하는 거죠. "어차피 이거 뻥인거 다 아는데, 얼마나 진짜처럼 실감나고 재밌게 만드나 보겠어." 계약을 했으니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최선을 다해 만듭니다. 그래서 초원을 달리는 티렉스도, 빗자루를 타고 날아 다니는 포터군도, 광선검을 휘두르는 요다도 영화를 보는 그 순간만큼은 사실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죠. 단순히 CG뿐만 아니라 이야기 구조, 화면 구도, 인물들의 연기, 배경 음악 등등 모든 요소가 잘 어우러져야 합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아무리 뛰어난 연출이나 연기 등은 알아내기가 쉽지 않지만 뒤떨어지는 연출이나 연기는 금방 관객의 눈에 들통이 나기 마련이니까요. 어설픈 대사나 과도한 음악 사용과 같이 중간중간 튀는 요소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극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고 상황에 대해 공감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그런 면에서 <디 워>는 관객과의 계약을 지키지 못한 영화라고 생각을 합니다. 감독의 미숙한 연출력이나 이야기 진행의 엉성함, 역시나 어색한 연기 모두 영화의 몰입을 방해하게 만들고 있거든요. 물론 이에 대해서는 이미 무수히 많은 얘기들이 나왔겠지요.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제가 가장 못마땅해 했던 부분은 바로 CG였습니다.

영화 내에서 CG로 창조된 캐릭터들은 하나하나 보자면 정말 훌륭합니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이무기간의 싸움이나 용이 승천하는 장면은 우리가 이때까지 말로만 들었던 이무기와 용의 전설을 눈 앞에 그대로 펼쳐놓은듯 화려합니다. 이 부분에선 정말 심형래 감독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마지막 장면을 제외한 영화 전반 내내 CG로 창조된 캐릭터들이 화면 속에 녹아들지 못하고 겉도는 것입니다. 도대체 후반작업이라는 것을 했는지 안 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재연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화면과 리니지 오프닝을 보는 듯한 화려한 그래픽을 한 스크린에서 동시에 본다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습니다. 스토리 전개도 엉성하고 배우들의 연기도 어색한 마당에 직접 시각적으로 와닿는 영상까지 튀다보니 극에 빠져들기는 커녕 제대로 집중해서 보기도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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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들었어.. 그런데 왜 따로 노냐고?? (www.d-war.com)

차라리 장난감을 날려 찍었던 <우뢰매>와 같은 기술 수준이었다면 오히려 덜 어색했을까요? 왜 캐릭터에 대한 모델링과 움직임은 그렇게 공을 들였으면서 영화를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것은 간과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축구에서 개인전술이나 부분전술은 뛰어나지만 정작 팀전술은 형편 없는 수준이어서 항상 지고 마는 팀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심형래 감독의 목표가 이번엔 이 정도 수준에서 그치지만 이무기 하나로 가능성은 인정받을 수 있으니 다음 영화를 위한 발판 정도로 생각을 하거나, 이전 <우뢰매>나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처럼 오로지 어린이 눈높이 정도에만 맞추면 일단은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본인도 이번 작품 정도에 만족하지는 않겠죠. 사실 이번 영화의 소재는 굉장히 흥미로운 것이었고, - 물론 그것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발전시키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 앞서 언급한 대로 이무기와 용은 정말 감탄이 나올만한 수준이었습니다. 영화 곳곳에서 기술력이나 연출력의 부족 때문이라기 보다는 자금 사정때문에 대충 마무리한 것 같은 장면들도 눈에 띄는 것으로 봐서 충분한 지원만 받쳐줬더라면 조금 더 나은 작품이 탄생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있고요. 말 그대로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 번엔 더 발전된 모습을 기대하겠지만 부분부분 기술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영화 본질에 대해 스스로 더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면 보는 이들도 더 이상 호의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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