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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푼의 진실과 일곱 푼의 허구, <용의 부활>

몇 년 전부터 삼국지 팬들의 최고의 관심사는 삼국지가 드디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이었다. 그것도 한 편이 아닌 두 편씩이나. 동아시아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삼국지는 만화나 TV 시리즈, 게임 등 다양한 형태로 가공된 적은 있지만 제대로 영화화된 적은 이제껏 없었기에 이번 삼국지의 영화화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삼국지가 장편 애니메이션 시리즈나 TV 드라마 시리즈로 제작된 적은 있어도 영화화되기 힘들었던 점은 아무래도 방대한 서사구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올해 개봉하는 두 편의 영화 모두 하나의 사건 혹은 한 명의 무장에 집중하여 극이 전개된다. 오우삼 감독의 <적벽>은 삼국지 전체 이야기 중 가장 극적이며, 실제 역사적으로도 가장 크고 중요한 전투 중 하나인 적벽대전을 소재로 하였으며, 이인항 감독의 <삼국지: 용의 부활>은 삼국지 최고의 무장 중 한 명으로 칭송받고 있는 조운을 주인공으로 한 사실상의 ‘판타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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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반적으로 삼국지라고 부르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흔히 ‘정사(正史)’라고 부르는 진수의 삼국지를 바탕으로 각종 민간에서 떠도는 야사를 수집하여 재구성한 소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관중의 작품을 흔히 일곱 푼의 진실과 세 푼의 허구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감독 이인항은 한 술 더 떠 역사적 배경과 인물의 큰 줄기만 따왔을 뿐 세부적인 인물간의 관계라던가 배경, 사건 등은 모두 임의대로 재구성하였다. 굳이 표현하자면 세 푼의 진실과 일곱 푼의 허구, 혹은 그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영화의 등장인물이나 사건이 실제 정사나 연의와는 어떻게 다른가를 나타낸 것이다. 물론 필자가 역사나 연의 전문가가 아니기에 다음의 모든 사실관계가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삼국지의 팬으로서 지금까지 알고 있던 삼국지와 영화가 어떻게 다른지 적은 것이라고 감안하고 보면 되겠다.

영화 정사/연의
조운은 일반 병사로 유비군에 입대한다. 조운은 장군으로서 유비의 휘하에 들어간다.
나평안이 조운에게 이름을 묻자 조자룡이라고 답한다. 자룡은 조운의 자(字)이다. 따라서 조자룡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지만 다른 등장인물은 모두 이름을 부르는데 반해 유독 조운의 경우에만 자를 붙여 조자룡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나평안은 지도를 보여주며 고향인 상산(常山)의 위치를 가르쳐주는데 지도 속에 등장하는 상산은 서주(徐州)의 서쪽, 연주(兗州)나 예주(豫州) 부근에 표시되어 있다. 실제 조운의 고향인 상산의 위치는 이보다 훨씬 북쪽인 기주(冀州) 지방이다.
영화의 시작은 조조군에게 쫓겨 봉명산으로 퇴각하는 유비군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실제 이 전투의 무대는 형주 지방의 장판(長坂)이다.
조운은 관우, 장비와 무예를 겨루고, 조운의 무예 솜씨에 반한 유비는 그에게 자신의 가족을 구하라는 임무를 맡긴다. 정사와 연의의 판본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유비는 조운이 공손찬의 휘하에 있을 때 자신의 수하로 거두었거나, 최소한 친분은 있었다.
아두를 구한 조운은 조조군을 뿌리치고 결국 조조와도 맞서 그의 검을 빼앗는 놀라운 무용을 펼친다. 물론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조운이 단기필마로 조조군을 헤집으며 아두를 구해 탈출하는 장면은 연의에서 그의 무공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하지만 조운이 조조와 실제로 맞닥뜨린 적은 없으며, 그가 뺏은 검도 조조의 친척인 하후은을 죽여 빼앗은 청강(靑釭)검이다. 조조는 경산(景山)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자룡의 무예에 감탄하며 “온 몸이 담으로 이루어진 장수다.”라는 평을 한다. 또한 연의에서 조운의 이름을 묻는 장수는 (영화에서처럼) 조조가 아니라 조홍이다.
고향이 잠시 들른 조운은 연인(혹은 아내)을 만나지만 다시 생이별을 암시한다. 실제 조운은 가정이 있었으며 조통과 조광, 두 아들을 두었다.
영화는 역사의 중간 과정을 뛰어넘고 바로 제갈량이 그 유명한 출사표를 올려 북벌을 감행하던 시기로 간다. 이때 위군을 이끄는 장수로 조조의 손녀인 조영이 등장한다. 물론 조영은 가공의 인물이다. 참고로 당시 위의 군주는 조조의 손자인 조예이다.
북벌의 선봉에 선 조운은 한덕의 네 아들과 싸워 물리친다. 조영은 자신의 유인책으로 인해 네 아들을 잃은 한덕을 위로하고 양아버지로 모신다. 조운이 북벌의 선봉에 서서 하후무와 맞닥뜨렸을 때 서량의 한덕과 그의 네 아들(한영, 한요, 한경, 한기)이 도우러 오지만 다섯 부자 모두 조운의 칼 아래 목숨을 잃는다.
조운은 조영의 계책에 빠져 봉명산에 고립된다. 봉명산(鳳鳴山)은 앞서 언급한 1차 북벌 당시 조운이 하후무, 한덕과 맞서 승리한 곳이다. 참고로 조운이 봉명산에서 포위되어 최후를 맞이하는 모습은 관우가 맥성에서 포위되어 최후를 맞이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조운은 결국 전장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조운은 1차 북벌이 끝난 후인 228년 자연사하였다. 참고로 조운은 삼국지의 수많은 영웅호걸들 가운데 천수를 모두 누리고 자연사한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명이다.

이밖에도 끄트머리가 잘려나간 듯한 관우의 청룡언월도라던가 역사적 고증의 식견이 별로 없는 필자가 봐도 당시의 것으로 보이지 않은 투구와 갑옷, 아무래도 일본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오호대장군의 갑옷과 위패를 모신 사당 등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레게머리한 등지는 뭥미 -ㅁ-)

결국 앞서 언급한대로 <용의 부활>은 기존의 삼국지를 그대로 스크린으로 옮겨놓기보다는 재구성 · 재해석을 통해서 새로운 판타지를 창조한 것이다. (<태왕사신기> 역시 같은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감독은 대중들이 기대했던 화려한 무용담보다는 영웅이든 보통 사람이든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그들의 내면적 세계를 좀 더 그려내는 것에 초점을 두었던 것 같다. (물론 그것이 성공했는지 못했는지는 관객 각자가 판단할 몫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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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조자룡의, 조자룡에 의한, 조자룡을 위한 영화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데, 유덕화는 그의 역량을 충분히 뿜어내면서 그가 맡은 조운의 캐릭터를 잘 살려내어 까딱하다간 처참한 실패작이 됐을 뻔한 영화를 그나마 잘 이끌어 나아가는데 성공한다.

오래 기다려온 만큼 많은 팬들이 기대를 했을 텐데 의외의 성격을 가진 작품이 등장하는 바람에 삼국지 팬들의 평가도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적 완성도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고, 삼국지 팬으로서 아쉬운 점이 많긴 하지만 삼국지를 이렇게도 만들 수 있구나라는 것에 위안을 삼고 점수를 주고 싶다.

오우삼의 <적벽>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까. 더욱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