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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right

American Musicals - 04. Busby Berkeley

뮤지컬이라는 단어를 머리에 떠올리면 그 단어 뒤로 매끈한 다리의 쇼걸들이 질서정연하게 춤을 추고 있는 그림이 오버랩 된다. 예쁜 금발 여자들이 가슴이며 허리, 다리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옷을 입고 여기저기 줄지어서 뛰어다니며 배열을 만드는 모습 말이다. 도대체 일찍이 내가 어떤 영화나 쇼에 노출되었길래, 뮤지컬의 형식에 대한 이런 고정관념을 가지게 됐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미국 뮤지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 가보면 그러한 연상의 기원을 찾을 수 있기는 하다. 30-40년대의 미국 고전 뮤지컬영화들에는 무대 위의 마스게임을 보는 듯한 이런 대규모 군무 넘버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의 맥락과는 전혀 상관없이 갑자기 무대가 등장하며, 연관도 없는 수 십명의 여인들이 나와서 원을 만들고 몸을 구부렸다 폈다 하면서 눈요깃거리를 제공하는, 요즘 같아선 다소 따분하게 느껴질 법한 장면들 말이다. 아마도 나는 어린시절 우연히 그런 영화의 한 장면을 접한 후, 그것의 규칙성과 일사분란함에 감동하여 뇌리에 즉각적으로 각인시켜 버린 듯 하다.

 

그러한 뮤지컬들의 타이틀 롤에 꼭 빼먹지 않고 이름을 올려놓은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버스비 버클리(Busby Berkeley)라는 이름의 안무가였다. 그는 브로드웨이의 인기있는 안무가였지만,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춤을 제대로 공부한 적은 없다고 한다. 대신에 그가 그만의 연출 스타일의 힌트를 얻은 것은 그가 포병대 소위로 군복무를 할 때였다. 그러고 보니, 쇼걸들의 늠름한 걸음걸이며 변화무쌍한 배열, 물결처럼 이어지는 연속동작은 군대의 사열이나 행진에서 군인들의 그것들과 많이 닮아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언제나 더 많은 무용수를 넣길 원했고, 더 으리으리한 특수장비를 동원한 무대효과를 원했다고 하니 무력적인 과시의 연성화 버전인 군대행진을 보면서 깨달은 점이 많았나 보다. 그는 무용수들 개개인의 무용기술보다는 전체적인 그림과 균형을 중요시했고, 그래서 그들의 연습 과정은 군인들의 훈련모습에 가까웠다고 한다. 어쨌든 버스비 버클리식 스타일은 30-40년대 제대로 먹어준 것 같다. 그의 화려한 연출력 덕분에 Golddigger 42nd Street같은 당시의 역작들은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고, 그러한 그만의 스타일은 뮤지컬 영화들의 형식적인 본보기로 자리잡아 미국 뮤지컬 영화 역사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물론, 후에 프레드 에스테어(Fred Astaire) 나 진 켈리(Gene Kelly)같은 제대로 된 춤꾼들이 등장하여 뮤지컬의 형식은 다시 한번 변화하게 되지만, 버스비 버클리가 이미 완성한 미국 고전 뮤지컬의 거대함과 화려함의 가치를 크게 대체할 만한 변화는 아니었다고 본다.

 

버스비 버클리의 연출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들도 많다. 여성을 대상화 혹은 성적으로 상품화 시킨다는 비판이나 뮤지컬, 나아가서는 미국 영화를 질보다는 규모의 구성으로 발달시키는데 일조했다는 지적 등이 있겠다. 그가 그런 식의 표현을 시작한 의도가 상당히 의심스럽긴 하지만, 현재적인 관점으로 판단했을 때 그다지 의미 있는 비판은 아닌 듯하다. 좀 따분하긴 하지만, 그의 연출력이 놀랄 만한 건 사실이고 현재의 사람들에게 비현실적인 공상의 원천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예술로 인정받을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제가 찾는 클립은 없고, 제가 보지 못한 그의 영화를 링크합니다.
영화 The Gang's All Here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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