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민

동경 라이브하우스 탐방기 - 야네우라 (屋根裏)

동경 출장 명령이 떨어졌을 때, 가장 기대했던 것은 시부야의 라이브하우스 야네우라(屋根裏)를 다시 한 번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야네우라는 작년 여름에 우연찮은 기회로 알게된 라이브하우스인데, 그 때 일본의 언더그라운드 락 밴드 음악을 생생하게 접했던 것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던 터다.

라이브하우스는 홍대 앞의 인디 밴드 공연 클럽과 같은 식의 언더그라운드 공연장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XJAPAN, 라르캉시엘, 글레이 같은 초대형 밴드들도 역시 초기에는 이 언더그라운드 공연장에서 실력과 명성을 다져 지금의 위치에 이르른 것이다. 일본 음악계에 기획사의 기획으로 포장되어 순식간에 인기를 끌어버리는 아이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밑바닥에서 실력을 검증받은 뮤지션들이 오버그라운드로 올라와, 한 번 공연에 수십만명씩 모아들이는 초대형 스타가 될 수 있는 선순환적인 구조가 너무나도 부럽고도 긍정적이다. 그 밑바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하에서


출장 첫날은 너무나도 피곤해 일찍 잠을 잤지만, 둘째날 공식 일정이 끝나자마자, 시부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꾸벅꾸벅 졸다보니 어느새 시부야역. 휘황한 간판들과 보아 사진이 전시되어 있곤 하던 높은 건물의 광고판, 도로를 대각선으로까지 가로지르며 길건너는 인파 하나만으로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유명한 교차로 등, 시부야의 현란함이 잠 덜 깨 어지러운 머리에 한 번 숨으로 정신을 불어넣었다. 카메라 가방을 다잡고 소개에 따라 100엔 스시에서 스시를 먹은 다음, 지도를 보고 야네우라를 찾아갔다. 작년에 가본 곳이지만 너무나도 복잡한 시부야의 거리와, 간판도 없이 지하에 숨어 있는 야네우라의 특성상 쉽게 찾지는 못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입구



사실 작년에 야네우라를 가게 된 경위도 우연한 것이었다. 시부야에 있는 HMV에서 씨디를 몇 장 사면서, 알바에게 근처 라이브하우스 하나만 추천해달라고 해서 알게 된 것인데, 알바의 말로는 모던락 쪽으로는 아주 유명한 곳이라고 하니, 한 번 믿고 어렵게 가보게 된 것이었다. 그 때는 이미 세번째 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었고, 그래서 더욱 아쉬웠을 수도 있다. 이번에는 홈페이지에서 미리 시간과 밴드 리스트까지 알아갔기 때문에, 느긋하게 도착하여 프론트에서 수금을 맡은 청년과 안되는 영어로 대화를 하며 시간을 죽일 수가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알바


약간 날을 잘못 잡아서, 내가 간 날은 작년과는 다르게 락앤롤 이벤트를 하는 날이었다. 스트레이트한 펑크와 몽환적이지만 에너지넘치는 모던락을 기대했던 나는 약간 실망했지만, 곧이어 락앤롤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면서도 너무나도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이는 다섯 밴드의 열정적인 공연에 금새 반하고 말았던 것이다. 많이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라, 마음에 확 와닿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별식을 먹은 기분이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공연장 입구


두번째 가본 야네우라 공연장의 관객 분위기는 사실 좀 침울하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은 밴드가 나올 때는 팔짱을 끼고 묵묵히 관조하며, 겨우 한두번씩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다. 정말 괜찮다 싶은 밴드가 나오면 몸을 약간 흔들어주고 엄지손가락을 한두번 들어주는 아주 정적인 분위기다. 활발하고 쾌활하다는 간사이 사람들이 관객이었다면 좀 달랐을까? 하지만 언더그라운드 밴드의 공연장이고, 지하실인데다, 웬 잡놈들이 들끓는 곳이나 슬램을 하거나 했다면 좀 부담스럽고 무서웠을 것 같은데, 나같은 이방인이 눈치안보고 조용히 관찰만 하다 갈 수 있는 분위기여서 오히려 나로써는 좋았다.

관객의 구성은 참으로 다양하다. 코스프레 행사장에서 금새 탈출한 듯한 메이드 복장을 한 여고생, 퇴근하자마자 서류가방을 들고 넥타이를 풀어든 채로 헐레벌떡 달려온 아저씨, 꾀죄죄한 단발의 공대생, 스킨헤드족, 마릴린맨슨과 같은 분장을 한 마니아, 업소 출근 직전 잠시 들린 것 같은 미니스커트의 아가씨들, 은행원 또는 교사로 보이는 정장 차림의 노처녀들, 그리고 외국인이지만 외국인이 아닌 척 하면서 서있는 나까지. 일본에서 락은 참으로 누구나 즐기는 장르이구나, 하는 생각에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첫번째 밴드인 gimmic bunny junction은 각진 중절모(모자 이름을 잘 모르겠다)를 쓴 기타리스트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만화 프리스트의 신부 같은 인상이었는데, 기타를 참 열정적으로 잘 쳤으면서도, 자기들 공연이 끝나자 나머지 모든 밴드의 공연을 서서 감상했다. 진지한 자세가 보기 좋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첫번째 기타


두번째 밴드인 The Freak Out은 거친 이미지로 승부하려 했으나 보컬 역량이 부족하고 연주 호흡이 맞지 않아 듣기 괴로웠다. 패스.

세번째 밴드 Quesera Sunky Roars는 절제된 기타와 베이스를 바탕으로 안정적이면서도 호들갑스러운 보컬이 어우러져 가장 탄탄한 음악을 들려줬다. 특히 보컬이 간주에 불어주는 하모니카는 참으로 강렬하고도 인상적이었다.

네번째 밴드, Redhots는 여자 베이시스트 한 명과, 여자 기타리스트 한명, 드러머 한명으로 이루어진 삼인조 밴드였다. 음악 자체는 그저 그런 뽕끼 가득한 락앤롤이었지만, 옷을 맞춰입은 두 여자가 좀 특이하고도 안쓰러워 보여서(나이가 좀 들어보였다) 열심히 박수를 쳐주었다.

다섯번째 밴드야 말로, 대미를 장식한 괴기스러운 밴드였다. 통기타를 치는 보컬은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 앉아서 연주를 했는데, 기기묘묘한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일렉기타와 시체같은 분장의 드러머가 사운드의 공백을 훌륭히 메꾸고 있이서 베이스가 없는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음악은 서정적이었지만 처절했고, 복잡한 구성을 하고 있었지만 뽕짝에 가까운 멜로디를 얹고 있었다. 음산함과 절도 있는 비트를 끊임없이 오갔으며, 검은색 눈물을 흘리는 분장을 하고, 하얀 하이힐을 신은 위에 레이스 달린 블라우스와 검은 정장을 걸쳐입은 왜소한 체격의 남자 보컬은 절구하듯, 비틀린 입으로 노래했다. 훌륭한 마무리였다.

총평: 음악 자체는 크게 매력적이지 않았지만, 토착화라고 하면 토착화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음악의 뽕끼는 락앤롤과 신선하게 융합되어서 그 자체가 새로운 장르인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공연장의 스피커 볼륨이 너무나도 커서, 관람 후 24시간 동안 귀가 멍멍할 지경이었다. 요금은 음료수 포함 현장 구매 2800엔인데, 일본 물가를 고려해 볼 때, 마냥 비싼 가격만은 아니었다. 여러 가지 면을 보았을 때 우리나라 인디 밴드의 공연 또한 즐겨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gimmic bunny junction


Quesera Spunky Roars


REDHOTS


らいむらいと

p.s. 디카 동영상 화질이 쓰레기라 죄송합니다.

'김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얼음과 불의 노래  (0) 2007.07.03
판의 미로  (0) 2007.07.03
몽상가들  (0) 2007.07.03
무지개 여신 - Rainbow Song  (0) 2007.07.03
크라잉넛  (0) 2007.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