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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몽상가들

칼은 어린아이가 들었을 때 가장 무섭다. (정권을 바꾸었기에) 성공한 혁명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68 혁명은 학생운동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몽상가들"의 쌍둥이 주인공들은 어린아이였다. 어린아이들처럼 방종했고, 무책임했으며, 순수하게 서로를 탐닉했다. 누나 앞에서의 마스터베이션과 남동생 앞에서의 섹스는 외설적이라기보다는 원시적인 방종이었다. 금기가 없는 한 달간, 그들은 서로를 자극하고 자극받았지만, 조금 엉뚱한 결론으로 그들의 놀이는 끝을 맞는다.

68 혁명에 가담하는 혁명가들의 운명같은 사랑과, 애증, 또는 혁명 그 자체에 대한 극적 설명 등을 다루는 영화일 것이라 예상했던 나는, 이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좀 당황스러웠다. 치기를 벗지 못한 세 젊은이들의(그것도 둘은 쌍둥이 남매) 성적인 모험이 대부분의 줄거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도입부와 끝 부분에 68 혁명의 발단과 과열되어가는 양상이 잠깐 보이긴 하지만, 부모님이 집을 비운 한 달간 집안에서 벌어지는 이들의 유희가 영화 전체를 관류하고 있는 줄거리의 전부다.

그래서 나로서는, 결국 이 세명의 캐릭터를 어떠한 정치적 상징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근친상간적 요소는 부모의 권위에 대한 반대라던가. 이들이 만들어낸 헐벗은 공동체가 코뮌을 상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뻔하지만 그런 상징을 짐작하는 정도에서 이 영화를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부터 얘기할 부분은 그래서, 개인적인 감상으로 남기고 책임을 회피해야겠다. 나는 이사벨-테오 남매와 메튜의 관계를 서로를 학습시키는 관계로 해석했다. 재미있었던 것은, 내내 이 괴상한 프렌치 남매에게서 자극을 받고 있던 메튜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반면, 메튜를 꼬드겨 자신들의 게임에 참여시키고 만 악마와 같은 남매는 메튜의 한 마디 자극으로 인해 혁명가로 돌변한다는 점이었다. 칼을 들고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던 어린아이 둘에게 목표를 정해주자마자 그 무서운 칼날을 정확한 방향으로 조준하는 이들의 기세. 이사벨 역할을 맡은 에바 그린은 이 영화가 사랑에 관한 영화라고 했지만, 나는 거기에 첨언하여, 방향성을 부과하고 싶다. 이 영화는 순수한 사람들이 억압받을 때, 정신이 어떤 식으로 왜곡되는가. 또는 그 왜곡이 해소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억압이 사라지면, 그것에 의한 상처는 쉽게 사라지는가. 응집된 분노가 방향성을 가지기 시작하면, 얼마나 쉽게 폭력적으로 바뀌는가. 서로를 구원하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사랑의 정의는 어디까지인가. 에 관한 영화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혁명을 정의하는 요소다, 라고.

아는 게 없어서 감상문으로 회피해버렸으니, 아는게 많은 패널 분들의 논리적 비평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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