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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bon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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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joel shapiro 作, @ gana art gallery 2008.02.01-24



평창동에 위치한 가나아트갤러리는 차가운 직선 조각들을 담기에도 참 따뜻한, 빛이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조엘 샤피로의 작품은 전부 무제이다. 제목 없는 작품 앞에 서면 갑자기 자유가 답답해지는건 어쩔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 제목이 없음을 수긍하고 만것은 어릴적 자주 가지고 놀던 레고 블럭 생각이 나서였다.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레고블럭을 왜 집어던졌는지는 기억이 나는데, 내가 원하는 블럭끼리 내가 원하는 위치에 홈을 끼워맞출수 없어서였다. 레고블럭은 모서리끼리 붙일 수도 없고, 모서리와 홈을 끼울 수 없어서 애 성질을 더럽히는 아주 비교육적 장난감이지 않던가. 반면 조엘의 작품들 속 나무 막대기들은 아마도 그가 원하는 곳에 잘 붙어있는 듯 보였다. 그거 안떨어지게 붙이느라 고생했겠더라.

얼핏 보면 작가가 이어붙인 막대기들은 사람의 몸처럼 보이기도 한다. 만약 사람 몸이 저렇다면 얼마나 불편하고 고통스럽겠는가. 그래도 작가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균형과 안정을 초월해보고 싶었던가보다. 작가가 불완전하고 거친 나무막대기를 땅바닥에 세운 순간, 그의 고통도 평온함으로 정의되버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 예술만큼 어리석고 불편한 존재도 없다. 자기몸 깎아가며 만지지도 못할 공기를 가르는 발레리나, 보이지도 않는 바람 그리느라 생고생했는데 생전에 그림 한 점 팔고 정신병원서 죽은 고흐, 자기 귀도 잘랐는데..들리지도 않으면서 암흑을 휘저으며 지휘했던 베토벤..이들의 삶이 그들에게 두번째 선택을 주기나 했느냐 말이다. 그들은 그저 고통을 선택했고,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용했을 뿐이다.

조엘 전시관 옆에서 하고 있던 한 회화전에는 '말과 글'이란 제목을 가진 여러개의 그림 작품들이 있었다. 작가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의 그림 두가지를 서툴게나마 묘사하자면 이러하다.

두 그림의 제목은 둘다 각각 '말과 글'이다.

- 낡은 건물과 건물 사이에 색이나 겨우 빼꼼하게 드러낸 하늘, 그덕에 등장한 그림자, 그 사이를 아무렇지 않게 걸어가는 사람과 개. 하늘은 분명 열려있건만 그들은 닫힌 그림자 사이로 걸어들어간다.

- 빽빽하게 우거진 소나무 잎사귀 사이로 보일까 말까한 낡은 하늘과 그 밑으로 불투명하게 지나가는 듯한 구름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세상.

분명 무지와 선택, 그리고 보이지 않는 길들은 두려움과 맞닿은 고통이다. 그렇다할지라도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자주 보이지도 않는 것들 때문에 싸우고, 허우적거리고 고통스러워한다. 어느 재일동포 소설가의 인터뷰에서 그가 했던 말처럼 행복은 순간인 반면, 불행은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균형을 찾아야겠다 마음을 잡은 순간, 조엘의 무제 작품과 이름모를 화가의 '말과 글'은 그 불편함과 불투명한 덧없음으로 나를 위로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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