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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erno

기생수 - 히토시 이와아키

패러디 혹은 오마주

  히토시 이와아키의 기생수에 관한 감상은 매우 많이 있다. 내가 기생수의 줄거리를 소개하거나 주제가 무엇인지 이야기하려 한다면 그것들의 더 나을 것 없는 반복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만화 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이 작품을 왜 좋아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비단 만화에서 뿐만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야기를 구성 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로 하여금 끝까지 보고 싶게 만드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기생수의 도입부는 인간이 지구에 미치는 악영향에 관한 의미심장한 나레이션과 함께 우주로부터의 기생생물의 침입으로 시작한다. 이 장면을 보는 독자는 인식하지는 못한다해도 즉시 의문이 생긴다. 기생생물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그들이 지구에 온 목적은 무었인가. 작가는 절대로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심지어 결말에서 조차도 알려주지는 않았다. 독자 스스로 생각하라는 듯이.) 결국 읽는 사람은 그 해답을 얻고자 이야기를 끝까지 봐야만 한다. 만화에 몰입감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이야기의 결말 부분에서야 답을 찾을 수 있는 궁극적인 의문점을 첫 장면에 배치시켜 놓아야한다. 그러면 독자는 마치 이제 막 말을 하기 시작한 어린아이처럼 끊임없이 '왜?'라고 자문하며 끝까지 책을 놓을 수 없게 된다.

  원래 작가는 3회 분량으로 이야기를 계획했었다고 말을 한다. 그러나 역시 잡지 연재가 이루어지면서 엄청난 인기를 이끌자 편집부에서는 단행본화를 결정하고 작가에게 이야기를 늘려주기를 원했을 것이다. 다행히 드래곤볼처럼 캐릭터만 바뀐 동일 내용의 반복이 아니라 각 권의 에피소드가 독립적으로 그러나 유기적으로 잘 짜여져있다. 기생수의 등장, 주인공의 변모, 그리고 최강의 기생수인 고토와의 대결까지 군더더기 없이 진행된다. 전혀 지루하지않다. 물론 여기에는 기생수라는 만화적 장치의 힘이 가장 크다.  

  기생수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역시 무자비한 살육이 난무하는 전투 장면이다. 작가의 그림체는 귀엽다거나 세밀하다거나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투박하고 리얼하다. 기생수들이 휘두르는 경질화된 육체의 날에 베어지고 난도질 당하는 인간의 묘사는 매우 사실적이다. 마치 쏘우나 호스텔 같은 영화를 싫어하면서도 손가락 사이로 잔인한 장면을 다 보고 싶은 것처럼 작가가 묘사하는 하드고어한 장면은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야릇한 쾌감을 가져다 준다. 액션 연출에 있어서 화려한 동작보다는 힘있는 펜선을 사용해서 속도감을 표현하는데 주력했고 오른쪽이를 통해 드러나는 머리 좋은 작가의 참신한 대인전술을 보는 것도 즐겁다.

  기생수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결말부의 고토의 최후이다. 뻔한 이야기라면 자연을 상징하는 고토를 살려두었을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서도 그러하듯이 자연이라는 것은 언제나 인간보다 위대하며 감히 손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고토를 죽인다. 주인공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종의 하나의 개체로서 종의 보존을 위해 그것이 자연이든 무엇이든 자신의 종을 위협할 만한 것은 제거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까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혼자만을 위해 행동하지 말라.'며 젠체하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든다. 인간이 인간을 위해 행동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인간이니까. 인간이 동물을 보호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인간을 위한 일이니까. 인간이 하는 많은 일들은 겉으로는 자신이 아닌 다른 것들을 위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살펴보면 결국 자신을 위한 일이다. 리처드 도킨스가 수십 년 전에 이미 이야기했듯 생물은 결국 유전자에서부터 이기적인지도 모른다. 그 말의 진위 여부는 상관없다. 다만 고토를 살리는 것이든 죽이는 것이든, 우리는 삶의 매 순간 최선의 것을 선택하기위해 노력할 뿐이다. 그런 노력 자체가 훌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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