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바이 베스파 - 박형동

  '프리크리'라는 애니메이션의 엔딩에 등장하는 노란색 베스파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한때 오토바이를 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물론 가격을 보고 급좌절한 뒤, '그래, 오토바이는 위험해. 면허도 없는 주제에......'라며 합리화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지만, 베스파의 동글 동글한 몸매와 받침없이 발음되는 매력적인 이름은 여전히 뇌리에 각인되어 있었다.

  모 만화가의 블로그에 놀러 갔다가 알게 된 '바이바이 베스파'는 '박형동'이라는 작가의 단편집이다.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는데, 일러스트레이터로 상당히 잘 나가시는 분이었다. '리버보이'와 '플라이 데디 플라이'의 표지를 담당했던 그분.

  이 단편집은 베스파를 포함한 다섯가지 바이크와 그에 관련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있다. 개인적으로 두번째 이야기인 '스노우 라이딩'과 마지막 이야기 '바이 바이 베스파'가 가장 마음에 든다.

* 스노우 라이딩
동거하던 그녀와 이별하기로 마음 먹은 어느 겨울날, 함께 기르던 고양이가 말썽이다. 피부병에 걸린, 줏어온 도둑 고양이는 누구도 데려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결국 내다 버리기로 마음 먹은 나와 그녀는 함께 바이크를 타고 산으로 향한다. 그러나 고양이를 가엽게 여긴 우리는 결국 다시 고양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고, 동거는 고양이가 죽기 전까지 한달 더 연장된다. 각자의 길을 따라 헤어진 후에도 그 날의 일은 첫눈 오는 날마다 따뜻한 기억으로 우리에게 찾아온다.

* 바이 바이 베스파
한때 목숨걸고 락밴드를 했던 나는, 내일이면 다른 사람에게 넘길 베스파를 타고서 놀이공원에서 일하는 친구를 찾아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끈을 하나 잡고 있었어. 그걸 놓치면 보통사람이 되어버리는 그런 끈이야. 이걸 놓으면 내 의미가 없어지니까 안간힘을 쓰며 끈을 잡고있는 거야. 그런데 지금은 내가 기타 안쳐도 세상은 잘 돌아가고 애정결핍의 여자아이는 꼭 내가 돌보지 않아도 누군가 보살펴 줄 사람을 찾아낼 거구 자동차 매연 잔뜩 먹어가며 고장 잘 나고 수리센터도 거의 없는 오래된 양철 스쿠터를 타는 건 바보다 라고 생각하게 된 거지."
마지막으로 베스파를 타며 해안가 도로를 질주하고 난 후,

나는 어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