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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Mr. Mcdonald

영화 <Welcome Mr. McDonald>를 봤다. 신인작가가 집필한 라디오 드라마가 제작되는 우여곡절의 과정을 보면서 라디오 매체의 흥미로운 특성을 발견했다. 라디오 매체와 TV로 대표되는 시각매체의 가장 큰 차이는 간단하게도 라디오 매체는 '영상이 없다'는 것이다. '영상이 없다'는 것은 드라마 제작이 영상의 한계에서 벗어난다는 뜻이고 내레이션과 대사를 적절히 이용하면 아무런 제약 없이 어떠한 이야기도 표현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이러한 청각 매체의 특수성으로 인해 영화 속 라디오 드라마 제작과정에서는 TV 드라마의 그것에서는 찾을 수 없는 특이한 모습들이 연출된다. 등장인물의 이름, 배경 등 드라마의 이야기가 매 분 매 초 손쉽게 교체된다. 이러한 빠른 교체에 현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급조한 '특수 청각 효과'도 이용된다. 

무엇보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바뀌는 것이 아주 흥미롭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스타 급 성우의 일방적인 요구로 그녀의 이름이 '메어리 제인'이 되면서 처음에 일본식이었던 모든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도널드 맥도널드', '조지'등의 서구식 이름으로 바뀐다. TV같은 시각매체의 드라마에서 등장인물을 구분시키는 것이 등장인물의 외모라면, 이에 반해 시각적인 요소가 제거된 라디오 드라마에서 등장인물을 구분시키는 것은 등장인물의 목소리와 '이름'일 것이다. <Wecome Mr. McDonald>에서 등장인물의 외국적 이름이 작은 소동의 시작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변화하면서 이야기의 배경은 미국의 뉴욕으로, 다시  미국의 시카고로 이동하고 우주 비행사가 되기 전까지 어부였던 '도널드 맥도널드(도나르도 맥도나르도)'의 등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댐을 터뜨리기까지 이른다. 갑작스런 공간적 배경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진공 청소기, 컵라면 뚜껑, 변기 물소리 등 온갖 특수효과가 동원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준비가 단지 광고가 나가는 몇 분 안에 이루어진다는 점. 실감나는 뉴욕의 모습을 담아 오기 위해 뉴욕에 가야 하고, 댐을 부수기 위해서 몇 천 만원을 들여 미니어처를 제작하고 컴퓨터 특수효과를 만들어 내는 영상 매체에 비해서는 등장인물들이 미칠 듯 뛰어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제법 경제적인 셈이다.

드라마의 줄거리도 또한 몇 번씩 바뀐다. '메어리 제인'의 직업은 파칭코 직원에서 능력있는 변호사로, '도널드 맥도널드'의 직업은 어부에서 멋진 항공기 비행사로, 다시 우주비행사로 바뀐다. '메어리 제인'과 재회해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기로 했던 '도널드 맥도널드(도나르도 맥도나르도)'는 하와이 상공에서 통신 두절이 됐다가 우주선을 타고(정확히 말하면 우주선 위에 서서) 지구로 귀환하는 지경에 까지 이른다. 다소 과장된 이야기의 변화에도 불구하고에서 그려지는 라디오 드라마 제작의 '상대적 무제약성'이라는 조건 하에서는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Welcome Mr. Mcdonald>의 우여곡절은 앞서 언급한 영상이 없는 청각 매체의 특수한 환경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변하고, 이야기의 배경이 변하고, 현실적인 사랑이야기가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귀환하는 초현실적인 영웅물로 둔갑하는 변화무쌍한 상황은 영상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청각 매체의 환경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흥미로운 것은 영상 매체가 비운 자리를 청자들의 상상력이 차지한다는 것이고, 바로 거기에 영상 매체가 흉내 낼 수 없는 라디오 매체만의 매력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 속 라디오 드라마가 가진 비논리성과 비현실성의 맹점은 라디오의 청자들의 상상력으로 메워지게 되는 것이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드라마의 감동은 생산되어 결국 캐마초 트럭 운전사까지 울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가슴이 훈훈해지는 일본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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