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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right

판의 미로

<판의 미로>는 끝맛이 참 씁쓸하다. 물론, 영화에서 묘사되는 현실 역시 무척 잔인하고 또 흉악했다. 그래도 영화의 결말이 승리를 보여줬다면, '현실'의 세계가 '가상'의 세계에 침범당하여 산산조각나는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이렇게 까지 허탈하지는 않았으리라.

영화에서 그려지는 '가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는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의 영역은 절대 침범되지 않는다. 단지, 주인공 '오펠리아'의 머릿속에서만 '겨우' 공존하고 있을 뿐이다. '현실'에 의한 '가상'의 파괴나, '가상'에 의한 '현실'의 전복은 없다. 단지, 두 세계 사이에서 고통받는 '오펠리아'만 있을 뿐이다.

지긋지긋한 '현실'의 세계에서 '오펠리아'를 구해주었어야 할 '가상'의 세계는 오히려 '오펠리아'에게 책임을 묻고 시험을 강요한다. 끝까지 '오펠리아'의 믿음과 용기를 배반하는 '가상'의 세계는 파시즘에 의해 지배되는 '현실'의 세계 못지 않게 더럽고 지독할 뿐이다.

'오펠리아'는 '가상'과 '현실' 사이에서 어떤 것도 보상받지 못하고 '잔인하게' 죽는다.
그녀는 '현실'과 '꿈'의 경계에서 갈등하다가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위로받지 못한 채 매몰차게 버림받는다.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판의 미로>가 씁쓸한 이유는. '오펠리아'의 죽음 이후 그녀가 들어서는 아름다운 궁전이 단지 허무한 환영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씁쓸해서 참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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