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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크라잉넛

저는 팬이라고까지 할 정도로 크라잉넛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언더그라운드(좋은 말로 인디) 밴드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디 문화의 첫 총성을 울린 크라잉넛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술먹고 노래방 테이블 위에 올라가서 부르는 노래인 "말달리자"를 부른 밴드, 정도로 기억하고 넘어가기에는, 이 악동 캐릭터의 밴드가 10년 동안 해온 음악이 너무 아깝지요.

펑크는 정신력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음악인 듯도 하지만, 사실 정신력만 가지고 하다가는 쉽게 지치는 음악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아나키즘 산물 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1960년대 히피 문화의 계승자라고 정의하기에는, 약간 깊이가 없게 느껴지기도 하고, 되는대로 소리만 지르다 끝나는 것 같기도 한 것이 펑크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어찌보면 이 음악은 정의내리려는 시도 자체를 어색하게 만들어버리는, 아웃사이더와 같은 음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집 때만 해도 날 것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밴드 크라잉 넛은, 2집 "서커스 매직 유랑단"에서부터 아코디언 주자 김인수를 영입하여 전열을 가다듬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오버그라운드 입성에 성공한 인디 밴드이고(어쨌든 러브레터에 출연했으니), 그런 입장에서 크라잉넛의 위치는 스스로들도 모호했을 것 같습니다만, 크라잉넛은 인디밴드다운 시도들을 다양하게 전개해 왔습니다. 오늘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도, 무언가 밴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흐름 같은 것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아코디언 주자 김인수씨의 영입은 훌륭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코디언이라는 묘한 악기는 2집 동명 타이틀에서부터 지향하기 시작한 동유럽 민요 느낌의 멜로디와 참으로 절묘하게 맞아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이 앨범 전체가 이런 컨셉은 아니지만("군바리 230"의 경우는 그냥 존내 달리는 펑크죠. 노래야 속이 시원하게 좋지만.), "신기한 노래" 정도만 해도 이 독특한 마이너 곡조의 뽕끼 줄줄 흐르는 멜로디는 크라잉넛의 히피적 감수성과 묘하게 맞아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 들어 봅시다. "신기한 노래"를 찾고 싶었으나, 부득이하게..


서커스 매직 유랑단 (1999)


3집 "하수연가"에서 "밤이 깊었네"라는 불멸의 히트 트랙으로 다시 한 번 입지를 다진 이들이었지만, 저는 사실 이 앨범에서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를 듣고 귀가 벌렁벌렁거렸습니다. 판타지에서 전혀 공감가지 않는 시시껍절한 싯구로 대충 넘어가곤 하던 축제 장면이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럽 집시 민요를 듣는 듯한 바이올린 세션이 엉덩이를 들썩거리게 만드는 흥겨운 노래를 만들어주더군요. 이 노래도 못찾았고, 대신 "신기한 노래"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는 "지독한 노래"를 들어봅시다.


지독한 노래 (2001)

제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크라잉넛의 연주력이나 에너지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훌륭하지 않다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정서적인 능력(표현하기 어렵군요) - 인간의 숙명적 애환에 대한 공감력, 같은 것입니다. 전통적인 음악 스타일이라는게 다 이유가 있을테니까요. 군 입대 전 탱고(불꽃놀이)까지 손을 대던 그들은 군악대 복무를 동시에 끝내고 돌아와 신작 "OK 목장의 젖소"를 들고 우리 앞에 섰습니다. 뭐 여러 종류의 시도들을 여전히 하고 있지만, 저는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의 연장선에 있는, "마시자"에 집중했습니다.


마시자 (2006)


얼마전 우연한 기회에 이들의 언플러그드 라이브를 공짜로 볼 기회가 있었는데요. 만돌린과 벤조, 각종 기괴한 타악기들이 동원된 이 공연에서, 저는 좀 더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음악은 세계를 아우르고 있다(!). 이 공연에서 컨트리를 시도하는 모습은 제 가설(?)을 증명하고 있는 것 같아 흡족했습니다.


Dirty Old Town (cover)

어느새 날선 펑크족이 아닌 연주력이 탄탄한 10년 경력의 밴드가 되어 있는 크라잉넛이지만, 인류 보편의 감성에 공감할 줄 아는 그들의 순수함이 언제나 지켜지길 바랍니다.


좋지 아니한가 (2007)

p.s. 동영상들 상태가 안 좋아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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