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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bon

페르세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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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불같은 첫사랑의 성장소설이나 페르세폴리스같은 성장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접할때면 내 오래전 일기장을 들춰봤을때와 비슷한 감정선이 생긴다. 죽을것만 같았고, 실제로 죽을 작정까지 하게 만들었던 순수한 시절들의 단순한 이해관계들이나 철저하게 이기적이었던 유아기적 발상들과 언행들은 이제는 그럴 수 없는, 더 이상 그럴 여력도, 동기도 남아있지 않은 현실 속 나에겐 그저 담담함 혹은 부러움의 대상인 동시에 민망함의 대상이기도 하다. 사춘기 시절 한참 앙드레 지드나 헤르만헤세의 성장소설 읽기를 즐겨 했던것은 공감의 차원이었을 것이요, 지금이나 이후에는 부러움과 향수의 대상이기 때문인듯하다.

페르세폴리스는 이란 여감독의 실제 성장기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공산주의와 이슬람종교정치, 이라크와의 전쟁 소요 속에서 자라나는 한 소녀의 성장과정과 그 눈으로 통해 보는 바깥세상에 대한 얘기를 그리고 있다.

내가 특별히 주목했었던 것은 자신의 지나간 시절들을 관조하는 여인의 회한과 더불어 그녀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소극적인 정의감이었다. 어린시절 소녀는 정치범으로 사형을 당한 할아버지의 얘기를 듣고, 자신이 사랑했던 삼촌까지도 옥에서 사형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며 자란다. 이러한 가정적인 배경과 어두운 사회적 분위기 탓에 소녀는 몰래몰래 ABBA와 락을 들으며 진보적인 꼬마로서 거리낌없이 자라게 되지만, 계속되는 전쟁의 위험으로 소녀는 유럽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전쟁과 종교의 억압에서 자유로워진 그녀는 길거리에서 불량식품을 골라먹고 댕기는 듯한 삶을 살다가 결국엔 향수병으로 인해 이란으로 돌아오고만다. 좁은 문에서 바라보는 큰 세상의 자유로움으로 인해 그녀는 기꺼이 타락의 문턱까지 가지만 순간순간 자신의 뿌리와 가족들의 정치적 희생에 대한 신념을 잊지 않는다.

이란이라는 조금은 생소한 배경의 애니메이션이기는 하나 386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가슴속에 불(?)같은 것에 대한 부러움이랄까, 그들은 어려웠고 억압받았다고 말하겠지만 소요가 지나간 후의 고요는 때로는 시체들로 낭자하는 잔인함과, 자스민 꽃이 휘날리는 아름다움을 자아낼것만 같은....뭐 그런 로망이 있나보다. 세대적 변명을 덧붙이자면, 자신의 것을 지키며 용감하게 살기에는 집값도 너무 비싸고, 취직하기도 어렵다. 배불리 먹을 수 있고, 잘 곳이 있다 해도 행복하다고 말하기엔 가져야 할 것도, 요구당하는 것도 너무나 많다. 음식과 잠에 대한 단조로움으로 인한 지루함과 내외적인 요구와의 갭이 자꾸 잘 알지도 못하는 옛날 옛적 얘기에 대한 향수에 빠지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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