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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bon

세월 by 마이클 커닝햄



문학이란..


개강 준비로 책장 정리를 하다가, 대학 시절 아끼고 아껴 읽던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생각난 김에 작년 이맘때쯤 읽었던 마이클 커닝햄의 소설 '세월'에 대한 잔상을 이제야 써볼까 합니다. 책이 옆에 없어 좀더 세세한 묘사를 하지 못하는 점이 조금 아쉽네요.

마이클 커닝햄은 뉴욕에서 활동하는 동성애자 작가입니다. 그의 소설 '세월'은 그에게 퓨리처상 수상을 안겨주었으며, 영화(the hours)로도 제작되었습니다.
제목인 '세월'은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 제목과 같으며, 이 작품은 작품의 스타일 뿐 아니라 주인공들의 의식에도 버지니아 울프라는 유대적인 상흔으로 강하게 묶여 있습니다. 잔잔하면서도 한고비한고비 넘길때마다 눈을 질끔 감았다 뜨게 만들었던 '의식의 흐름' 기법을 통해 이 소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야기를 연결해줍니다.

세가지 이야기는 다른 공간과 시간에서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공통 분모가 존재합니다. 델러웨이 부인을 집필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와 1940년대, 버지니아 울프의 '델러웨이 부인'을 읽는 로라라는 주부의 이야기, 1990년대 뉴욕의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클라리사와 그녀의 동성애자 친구이자 작가, 에이즈 감염자인 리처드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책장을 번갈아가며 독자의 의식을 환기시켜줍니다.

지금 특별히 기억에 남는 스토리는 클라리사와 리처드에 관한 내용입니다. 한 사람의 사고는 독창적이지 않을지언정 의식은 부정확하지만 유대감없이 단독적으로 흐르기 마련입니다. 제가 리처드에 애정을 갖는 이유는 끊어질듯 팽팽한 외줄타기와도 같은 의식구조으로 인한 인간의 약함이 두드려져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물에 미끄러지는 듯한 그의 죽음과 고독은 슬픔을 자아낸다기 보다는 창백한 의식으로부터의 자유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마이클 커닝햄의 '세월'뿐만 아니라 델러웨이 부인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의식의 흐름 기법은  20세기 모더니즘과 페미니즘에 많은 영향을 미친 버지니아 울프가 본격적으로 소설에 도입한 기법입니다.

의식의 흐름 기법의 특징은 아무리 사소한 일상 생활에서 부딪히는 순간 순간의 의식과 과거와 죽음의 신비성 등을 독백이나 사색, 회상, 연상등을 통해 찰나의 심리적 순간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것입니다. 이는 인물들의 사실적인 성격묘사와 행위묘사가 적나라한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들(에밀졸라(목로주점)나 플로베르(보바리부인)과 같은 작품이 있습니다)과는 상반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건의 전개라든가 사실적인 인물묘사가 주가 되는 사실주의에 비하여 의식의 흐름기법은 조금 더 찬찬하면서 덜 명료하고 비논리적이며 지속적인 특징을 갖습니다.

이 작품은 이러한 의식의 흐름 기법을 통해 흙더미 속의 꽃잎 한장같은 일상도, 죽음도 그 어느것 하나 흥분하는 일 없이 찬찬하며 동요없이 그들의 의식 속으로 읽는이를 끌어들입니다.
'때로는 가슴 안에 우울도 꽃이 될 수 있다네'하고 읇었던 릴케마냥 문학은 우리로 하여금 삶의 절실함과 아름다움에 흠뻑 젖게 해주기도 하고, 우리네 복잡한 삶에 개입하여 의도없는 순결한 환희와 고통을 주기도 합니다.  

저는 '문학은 인간이 삶을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 것을 가르친다'라고 했던 윌리엄 포크너의 말을 참 좋아합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거창한 명제 앞에서 문학이 제게 허락해준 것은 삶에 사랑을 가르쳐주고, 그것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주는 삶 그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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