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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스(1890) by 아나톨 프랑스


타이스(1890). by 아나톨 프랑스.


독자가 문학을 접하는 데에 있어서 작가에 대한 이해 배제는 달걀 잃은 어미닭과 같다. 이는 자칫 작품을 작가라는 주변환경으로 한정지을 수 있는 심각한 오류를 낳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유독 프랑스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작가와 작품의 밀착이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나톨 프랑스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프랑스 지성인들의 우상이었으며, 20세기 프랑스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이다.
한국에서는 그다지 많이 읽히고 있지 않지만 '타이스 명상곡'이란 바이올린 곡은 많이 알려져 있다. 바로 그 곡의 원작이 아나톨 프랑스의 '타이스'이다.

타이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집트 사막에서 고행을 하던 파프니스 수도사는 알렉산드리아 최고의 미녀 무희 타이스를 방탕함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사막을 떠난다. 그 감화로 타이스는 구원을 받고 수녀원으로 가게 되지만 파프니스는 도리어 타이스의 육체적 매력에 유혹되어 어떠한 고행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파프니스는 타이스에 대한 정욕에 휩싸여 고행도 소용없게 되자, 다시 사막을 떠나 어느 폐허 사원의 높이 솟은 기둥 위로 올라가서 다시 긴 시간의 고행을 시작한다. 이 기둥은 남근을 상징한다. 자신의 정욕을 피하려 찾아간 이 곳에서 그는 다시 '속된' 자아에 직면하게 된다. 기둥 위에서 은거하며 고행하는 파프니스를 희귀하게 본 대중들은 그를 찾아와 병고침을 받고, 곧 그곳은 문전성시를 이루어 마을과 장이 난잡하게 들어선다. 이는 성경의 예루살렘 주변의 장이 들어선 것을 보고 예수가 꾸짖었던 것을 우화적으로, 풍자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곳에서 파프니스는 대중들로 인해, 그리고 자신 스스로가 시종일관 오만했으며, 여전히 음란했지만 그 모든 것을 부정하며 의혹을 품는다.

이 작품에서 인간의 오만과 음란, 의혹은 각각의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 회의적인 시각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인간은 자신에 대한 어떠한 것도 부정할 수가 없다. 즉 자기 자신과 더 깊숙한 곳에 있는 자아를 분리시킬 수 없다. 마치 파프니스가 타이스에 대한 사랑과 정욕을 분리시킬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파프니스는 속되고 타락한 인간이 아닌, 단지 스스로 자기 자신을 분리시키려 애썼던  ‘그냥’ 인간일 뿐이다.

작품 전체에 걸쳐 흐르는 분위기는 ‘회의주의’이다. 그렇지만 작가는 회의주의를 결코 비관적인 시각에서 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능동적 인생살이를 회의주의를 통해 투영하려 했다. 그가 극중인물을 통해 자신을 투영하려 했던 인물인 파프니스의 친구 니시아스는 이러한 능동적 회의주의적인 인물의 대표격으로 나온다. ‘향연’에서 니시아스가 다른 철학자들과 논쟁하던 중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이오.” 또한 파프니스가 타이스를 만나러 가던중 사막에서 만난 또다른 회의론자 티모클레스는 둘의 대화 중 이렇게 말한다. “동일한 사물도 외양은 여러 가지로 달라지기 때문이오. 멤피스의 피라미드들은 동틀녘에는 분홍빛 광채를 내는 원추같지만, 해질녘에는 불타는 듯한 하늘 위에 검은 삼각형으로 보인다오. 그렇지만 어느 누가 그 내면의 본질을 간파할 수 있겠소?”

이 작품의 미학은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봄으로써 얻게 되는, 언제나 썩 아름다울 수만은 없는 ‘진실’ 혹은 ‘인간의 진정한 자아’에서 찾을 수 있다. 작가는 이를 드러내기 위해 때로는 역설적, 풍자적 수법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결국 인간의 오만과 음란, 의혹으로 인한 고뇌를 연민의 눈으로 승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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