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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 우연히 학교에서 하는 행사 중 김진명 (평양과기대설립총장/연변과기대총장)이 임원으로 있는 동북아 신약개발 협력단의 조인식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것이 평양과기대가 곧 설립된다는 소식의 아주 헐렁한 첫 단추였다. 당시 나는 돈많은 한국 사람이 중국사람의 신분으로 대학을 짓는게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라고 난리들인가 하고 둔감한 표정을 짓곤했다.

한민족, 형제동포라는 말조차 무의미하게 다가왔을 뿐더러, 나는 그들에게 무관심했었다. 북한을 향한 어른들의 이중적인 사고와 행동들은 그것이 어떠한 이유에서건 설득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그들의 이중적 잣대와 더불어 '북한놈들'이라는 호칭이 오히려 친근한, 적대적이고 감정적인 비판과 맹목적인 민족주의는 북한에 대한 적대심도 아닌 차가운 무관심을 낳았었다.

시간이 흘러 우연히 읽게된 미국 라이스 대학의 길리스 전 총장의 글에서 "평화를 원하거든 이웃부터 도우라'는 말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구절과 함께 나를 세차게 흔들었다.
나는 저 멀리 아프리카의 굶주리고 병든 아이들을 보며 마음 아파하면서도 바로 내 옆의 이웃은 간과하고 있었다. 두만강 저편에는 글을 모르는 불편함보다도 자식들의 배고픔이 더 서러운 어머니들이 고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아이들은 소설책이나 드라마에서가 아닌 배고픔에 죽어가는 부모들을 보며 죽음을 배운다.

지금 북한은 남북 통일 혹은 평화와는 관계없이 어느 경로를 통해서든 세계와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시도가 교육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남쪽에 사는 우리를 포함한 세계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큰 도전이며, 세계가 제시하는 축복된 비전이다. 이것은 또한 이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억울하고도 감사한 사명을 의미한다.

'뛰어넘는다'라는 표현이 출중한 이유는 그것이 보편성의 세계를 내려다볼수 있는 높은 위치에 있어 오롯한 두려움을 수반하기 때문이며, 그렇기에 우리는 그 떨림을 도전이라 부른다. 그것이 이 이기적인 보편성의 세계에서는 이상이라는 누명을 쓰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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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부시 대통령의 고향인 텍사스주에 위치한 라이스대학의 총장을 역임했으며, 지금도 이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습니다. '텍사스'하면 많은 분들이 '보수' 혹은 '반북'을 먼저 떠올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설혹 이들 모두가 보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지라도, 아니 전 세계가 보수적일지라도, 우리들 모두가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기원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명백합니다.

경제학자로서, 저는 오래 전부터 저개발 국가들의 경제개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왔습니다. 최근 유독 저의 관심을 끄는 나라가 바로 북한입니다. 그것은 특별히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북한은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경제발전을 이루어낼 만한 너무도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세계의 조류는 화해와 협력입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저는 "평화를 원하거든 이웃부터 도우라"고 한 마셜을 존경합니다. 그의 말은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북한과 평화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북한을 도와야만 합니다. 그러나 핵문제와 같은 정치적 문제, 혹은 북한 인권문제 등이 제기된다 하더라도 남북 경제교류는 계속될 것이며 그래야만 합니다. 이러저러한 문제가 벌어질지 모른다는 예상때문에 그것이 두려워서 행동을 주저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태도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법입니다.

2002년에 착공한 평양과기대는 현재 5층 규모의 정보기술 건물 골조공사와 식당 건물 기초공사를 마친 상태입니다. 2007년 4월이면 IT, MBA, 농식품공학부 등 3개 대학원 과정 학생 150명을 모집하여 문을 열게 될 것입니다.

북한 최초의 국제대학인 평양과기대는 무엇보다 한민족의 장래와 번영을 위한 것입니다. 분단 60년의 아픔을 넘어 민족의 화해와 회복, 번영을 위한 것이며 다가오는 통일시대와 통일 이후를 준비하는 대학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대학이 북한의 과학기술발전의 중요한 거점으로서, 장기적으로 세계적인 수준의 과학기술교육을 북한의 젊은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북측의 지도층이 서방세계와 국제사회의 시장 기능과 시스템을 이해하는 통로가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더 나아가 평양과기대가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건설에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물론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구상과 건설은 서울과 평양의 결정에 달린 일이지만 적어도 이 구상이 진행될 때 필요하게될 도움을 제공할 수 있을 만한 준비를 미리 갖추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지난 12월에 발족한 우리 설립위원회는 저를 포함한 연변과기대의 김진경 총장과 포항공대의 박찬모 총장을 중심으로 동북아 교육문화협력재단과 함께 더 발전적으로 확대하여 국제적인 후원 조직을 갖추고 자금, 인력, 지식의 국제적인 자원을 총동원하여 지원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 사립대학을 세워서 운영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비단 사회주의 국가에서가 아니라도 사립대학이란 언제나 이러저러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구조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이를 극복할 수 있을만한 좋은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제란, 언제나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없이 성공을 거둘 수는 없습니다.

남과 북의 한민족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우리 모두는 남과 북의 평화적인 통일을 한마음으로 기원하고 있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한반도는 분명 평화통일을 이루어낼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가고 있는 것이고 인내심을 가지고 한발자국씩 더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가 해야할 일입니다.


말콤 길리스, 전 라이스 대학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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