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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발한다 -에밀 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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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라는 처음 세편의 글을 르피가로 신문에 싣지만 곧 우익세력의 거센 반발로 접고 만다)

1894년 10월 31일 독일대사관에 프랑스의 군사정보를 팔았다는 혐의로 드레퓌스라는 한 유태인 장교가 체포되었다. 내통한 비밀서류의 글씨체가 드레퓌스의 것과 비슷하다는 것 말고는 정확한 증거도 없었으며, 진범이 다른 사람으로 밝혀진 이후에도 군대는 10년 이상 사건을 은폐한다. 드레퓌스 사건은 1870년 보불전쟁에서 패배한 후 독일에 대한 적대감과 *파나마 운하 사건 이후 반유대주의가 팽배라는 배경을 지닌다.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의 원제목은 ‘공화국 대통령 펠릭스 포르씨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이 원고는 프랑스 로로르 신문에 싣게 되면서 편집장의 권유로 인해 격문에 더 어울리는 제목을 갖게 된다. 졸라가 국가권력을 상대로, 여론을 호도하는 언론을 상대로 진실 투쟁을 한 것과 드레퓌스 사건 자체만으로 드레퓌스 사건 종결 100년이 조금 지난 오늘날까지도 주목받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내막에 대한 깊숙한 이해 뒤에는 사실 드레퓌스 사건 자체, 그리고 드레퓌스라는 인물 자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느껴질 정도이다.
에밀 졸라는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하여 1897년부터 1900년까지 3년동안 쓴 13편의 글을 모아 ‘멈추지 않는 진실’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한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완역본이 없으며, 내가 읽은 책은 2편의 글이 빠진 11편의 글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드레퓌스 사건에 앞서 '기고자' 인 에밀 졸라에 대해 알아보자.

에밀 졸라는 프랑스의 자연주의 작가이다. 그는 플로베르나 발작과 같은 사실주의 작가들의 영향을 받았지만 ‘문학은 과학이다’라는 신조로 유전론과 환경결정론에 입각한 자연주의적 글을 썼다. 단적으로 그의 소설 「목로주점」의 여자 주인공의 딸인 나나가 「나나」라는 또 다른 장편 소설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목로주점은 프랑스의 하층민들의 생활을 그렸으며, 그것이 마치 가족병력이나 되는 듯 유전적인 요소와 환경적인 요소가 주인공들의 절절한 삶을 통해 비참하게 이어진다. 예를 들어 목로주점에 나타나는 노동자들의 절망스러운 삶은 그들이 늘 일삼는 알코올과 섹스와 같은 환경에 의한 필연적인 결과로 나타난다. 따라서 그의 소설은 하층민의 애환을 담았다기 보다는 풍자에 가까우며(목로주점의 여주인공은 일생 고생만 죽도록 하다가 끝내 굶어 죽고만다) 유전적, 환경적 요소는 말 그대로 ‘인간의 굴레’와 같은 역할을 맡는다.

자연주의는 다른 어떤 사조보다도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그것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졸라의 관점때문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정말 악취가 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을 정도로 고약한 파리의 하층노동자계급에 대한 묘사는 거의 완벽했지만, 이것은 노동자에 대한 부르주아의 사회적 통념을 보여주는 데에 주력했다고 보여진다. 이로 인해 졸라 자신도 진보주의적 지식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대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비판을 받게 된다.

타이스의 작가 아나톨 프랑스 역시 자연주의에 대한 맹렬한 비판을 했었지만 그 역시 드레퓌스 파였던지라 졸라의 장례식에서 자신의 조사를 이렇게 끝맺으며 졸라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우리는 그를 부러워합니다. 방대한 저작과 위대한 참여를 통해 조국을 명예롭게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를 부러워합니다. 걸출한 삶과 뜨거운 가슴이 그에게 가장 위대한 운명을 선사했기 때문입니다.”

드레퓌스 사건은 사회적, 역사적으로 프랑스를 진동시킨 사건이다. 이 사건은 우리로 하여금 진실에 대한 숙고와 지식인과 권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며, 여론, 파시즘 그리고 언론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 반유대주의, 오늘날의 정치적 회의주의 등에 대한 여러 가지 시사점을 주는 중요한 작용점을 갖게 해준다.

특히 소설가인 에밀 졸라가 자신의 글을 책이 아닌 '신문'에 기고했다는 점은 언론을 통한 전면적이고 저돌적인 사회참여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졸라는 드레퓌스 사건뿐 아니라 오랜 친구인 인상파 화가 마네의 ‘피리부는 소년’ (살롱에서 거부되었던 그림)에 대한 글을 신문에 기고를 함으로써 화가들이 마네의 그림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후 화가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오랜 관습에 대해(인상파는 초반에 엄청난 비판을 받았었다) 반대하는 예술운동을 펼쳤다. 이렇듯 드레퓌스 사건은 ※'지식인의 사회참여 전통의 확립' 뿐만 아니라, 예술에까지 그 지경을 넓혀 예술가의 사회참여의 책무성 인식에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결국 이것은 예술과 진리에 대한 인류적 진일보를 이루게 해준 결정적인 사건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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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나마 운하 사건은 프랑스 제 3공화정 초기에 일어난 정경 결탁 스캔들로서, 수에즈 운하를 건설한 프랑스인이 파나마 운하 공사에 착수했다가 파산하면서 많은 의원들이 돈으로 매수되었던것이 발각된다. 반유태계 신문은 이 사전이 유태인들과 연루되었다고 폭로하면서 사회적으로 반유태주의 바람이 휩쓸게 된다.

'나는 고발한다'의 옮긴이(이기환)는 '옮긴이의 말'에서 드레퓌스 사건의 의의 중 하나로 '지식인의 사회참여 전통 확립 마련'을 언급하였다.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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