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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호퍼, 길위의 철학자


이 책의 저자 에릭 호퍼(1902-1983)는 미국에서 '독학한 부두노동자, 철학자, 사회척학자, 프롤레타리아 철학자’ 등으로 불렸다. 그 스스로 삶을 관광객처럼 살았다고 고백할 만큼 그의 책에서 드러나는 그 자신은 군더더기 없는 여백과도 같은 인생을 살았다. 사실 호퍼의 직업은 작가나 철학가라기 보다는 떠돌이 노동자, 레스토랑 보조 웨이터, 사금채취공, 부두노동자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노숙할 수 있을 정도로 날씨가 온화한 캘리포니아로 이주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혼자였고 생계비를 벌줄도 몰랐으며 가진 돈이라고는 300달러가 전부였다. 돈이 떨어지고 난 뒤의 일따위는 어느 연극 무대의 일인양 제껴두고 로스엔젤레스에 도착하자마자 시립도서관에 처박혀 독서를 일삼았다. 직업소개소와 길거리를 오가며 그는 오로지 책에 매달렸다.
그의 독립적이며 순수한 지적호기심은 결코 종잇장 위에서만 노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지적 호기심에 대한 진정한 소통의 매개체는 책이 아닌 ‘사람’이었다. 일생 혼자였을 것같은 노숙자의 자서전에 쏟아져나오는 놀라울 만큼의 에피소드는 책에 대한 것이 아닌 사람에 대한 것이다. 그는 철저하게 혼자였던 만큼 관계에 대한 고민보다는 그 자체의 의미에 대한 사색에 더 중점을 두었던 듯하다. 심지어 언어는 질문을 하기 위해 창안되었으며, ‘사회적 정체는 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질문을 할 충동이 없는 데에서 비롯된다’고 할 정도로 그의 삶은 진정한 사람다움에 대한 의문과 의미찾기를 위한 여행이었다. 그리고 늘상 그러하듯이 사람과의 관계가 그의 일상의 평화를 깨뜨리려 하면 그는 주저없이 길 위로 되돌아갔다. 이러한 그의 불안정해보이는 떠돌이 노동자 인생에 대한 반문은 어느 안정지상주의자 농장주가 남긴 두가지 유언으로 답을 대신해보고자 한다.


”가치있는 음악 작품을 작곡하거나 어떤 매체이건 예술 작품을 창조한 프레스노 지역 사람들에게 최소 1,000달러 이상의 상금을 주어야 할 것이다. 수년간 계속 노력해 온 사람들은 상을 받을 만하다고 본다. 우리는 중년의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그것이 해로운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늙은 사람들에게 창조적 활기를 자극하고 그것을 유지하게 하는 방도를 찾아야 한다. 우리는 40세의 인간은 새로운 시작이 불가능한 완성품이라는 터무니 없는 가정을 배척해야 한다. 40대가 청소년보다 배우는 것이 쉽지 않다거나 쉽게 잊는다는 증거는 없다.

(중략)

그러므로 프레스노 지역의 중년과 노년은 모두 손에 붓과 물감을 들고 나서야 한다. 아무도 우리의 초여름 언덕을 회색이 감도는 분홍색과 창백한 황금색을 뒤섞어 물들여 놓을 수는 없다. 아무도 포도원의 초록과 아몬드, 복숭아, 살구, 자두, 오렌지, 올리브 나무의 초록, 밀, 귀리, 클로버, 알팔파 밭의 초록, 목초지와 소택지의 초록 등 무한히 다양한 초록색들을 포착할 수는 없다. 또한 우리의 흙은 검은색과 회색, 붉은색, 갈색이고, 밭에서는 푸른색이 도는 황금색이기도 하다.“ (p.151)

두번 째 유언은 '아훼가 사탄에게 물었다. 너는 어디 갔다 오느냐? 사탄이 대답하였다. 땅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왔습니다'라는 성경의 욥기 구절이 새겨진 떠돌이들의 합숙소를 짓는 것이었다.  


땅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방랑자에게 외로움이란 무얼까. 호퍼는 인간에게 가장 친숙한 외로움을 예술로 승화시킨 장본인이다. 친숙한 것을 새로운 것으로 보이게 하는 예술가로서의 운명을 규정지은 그의 생은 한 순간도 무딘 적이 없었다. 그의 말대로 예술가의 본모습은 이 세상에서의 영원한 이방인이거나 다른 별에서 온 방문객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는 내내 sting의 'englishman in New York'이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 (특히 'im an alian, legal alien'을 읇조리는 그부분!) 그것은 아마도 세상에 대한 낯선 시선과 헛헛한 희망따위를 계속 이어가야 하는 우리네 지구별 이방인들에 대한 불분명한 연민때문이리라.


“양들은 주변에 익숙하지 못하다. 양에게는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기괴하고 전에 본 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어리석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양에게는 인간적인 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이다. 양들의 그러한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연민의 정을 자아낸다. 양과 마찬가지로 사람도 생에 대한 두려움과 이 세상에서 영원한 이방인이라는 느낌 때문에 종족이나 민족으로 무리를 짓는 것이다.”(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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