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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erno

골때리는 연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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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쁜 한복을 차려입은 등장인물 히로미(남!!!)


  어떤 노래 혹은 만화를 감히 좋아한다고 말하기 부끄러운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나는 더자두의 김밥이라는 노래를 좋아해.'라고 말하고 반드시 '가사 때문이 아니라 멜로디가 흥겹기 때문이지.'하며 이유를 덧붙여야 안심이 되는 것처럼. '골때리는 연극부(이하 연극부)'도 나에게는 그런 만화 중 하나이다. 이 만화는 유쾌한 부조리들로 가득차 있다. 일단 주인공인 평범한(사실 꽤나 잘 생긴) 쇼타로는 시계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첫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선배 마코토를 보고 첫 눈에 반한다. 여기까지는 여느 로맨틱 코미디와 같다. 그러나 쇼타로는 연극부 부장인 히로미를 마코토로 오인했다가 그와 엮여버려 인생이 꼬이게된다. 사실 이 히로미라는 캐릭터가 만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다. 대충 그린듯한 3등신의 비율의 히로미는 몸은 남자이지만 마음은 여자인 인물로서 꽃미남 쇼타로의 애인을 자처한다. 알고보니 같은 연극부 소속이었던 마코토는 남성혐오증이 있어서 접근하는 모든 남자들을 가공할 펀치로 날려버리는 병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게이인 히로미와 역시 같은 부류라고 오해당한 쇼타로에게는 접근을 허용한다. 이런 장치로 '히로미-쇼타로-마코토'의 삼각관계가 형성되고, 쇼타로에게는 오해 상태를 지속시켜나가야 할 이유를 부여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리사, 나르시스, 존재감 없는 선생님 등의 캐릭터가 추가되면서 더욱 말도 안되는 난장판의 항연이 펼쳐진다.
   개그 만화를 지망하는 사람에게 연극부는 이런 점을 시사한다. '진정 웃기는 만화를 그리고 싶은가, 그렇다면 정신줄을 놓아라!!' 그렇다. 닥터 슬럼프도 그랬지만(어느 누가 탑 모양의 변을 나무 막대에 끼워 들고 다닐 생각을 했겠나.), 제정신을 가진 척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십년전 꽃다운 18세 어린 마음에 충격을 가져다 준 장면은 바로 다음과 같다.


마코토가 남자랑 놀아나다가 자살을 시도했었다는 거짓말을 한 것이 들통나자 연극에선 거짓말도 중요하다면서 변명을 하는 히토미. 마코토에게 변명이 씨도 안먹히자 뒤돌아 웅크리고 앉아서 "하지만... 부장이 부원에 대해서... 모른다는 건......."이라며 웅얼거린다. 그리고 잠시후, 뒤돌아선 히로미의 모습이 세로로 쩍 갈라지더니 그 속에서 파리 모양을 한 히로미가 나타나 날아서 도망친다. 그리고 에피소드 끝.


  아니 이게 뭔가, 데이빗 크로넨버그와 코믹스의 만남인가. 인간이 고치로 변하고 파리로 변태해 도망가는 것을 상상하다니. 사실 모든 종류의 창작은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이다.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은 상관없지만, 왠만하면 창작자를 만날 일 없는 문화 소비자들은 오로지 작품으로만 창작자의 내면세계를 판단한다. 그러므로 자신 내부의 변태적이고 기괴한 공상을 드러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연극부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가득찬, 간혹 설익었지만 대부분 명랑하고 신선한, 그쯤되면 막가자는 유머들은 독특하고 성실하다. 적어도 평균적으로 두 페이지에 한번씩은 유머가 나온다. 물론 웃고 안 웃고는 독자 마음이지만. :b 





ps.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으로는 '마법소녀 비비안'이 있습니다. 4권 완결이고 역시 제목이 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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