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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8/07/05 piano (1)
  3. 2008/05/19 반짝반짝 빛나는 by 에쿠니 가오리 (5)
  4. 2008/04/01 misread, the kings of convinience (1)
  5. 2008/03/27 어메이징 그레이스 (9)
  6. 2008/02/11 무제 (6)
  7. 2007/10/09 주객전도 계몽소설 (9)

페르세폴리스

bonbon 2008/07/31 11:56 Posted by bon.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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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불같은 첫사랑의 성장소설이나 페르세폴리스같은 성장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접할때면 내 오래전 일기장을 들춰봤을때와 비슷한 감정선이 생긴다. 죽을것만 같았고, 실제로 죽을 작정까지 하게 만들었던 순수한 시절들의 단순한 이해관계들이나 철저하게 이기적이었던 유아기적 발상들과 언행들은 이제는 그럴 수 없는, 더 이상 그럴 여력도, 동기도 남아있지 않은 현실 속 나에겐 그저 담담함 혹은 부러움의 대상인 동시에 민망함의 대상이기도 하다. 사춘기 시절 한참 앙드레 지드나 헤르만헤세의 성장소설 읽기를 즐겨 했던것은 공감의 차원이었을 것이요, 지금이나 이후에는 부러움과 향수의 대상이기 때문인듯하다.

페르세폴리스는 이란 여감독의 실제 성장기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공산주의와 이슬람종교정치, 이라크와의 전쟁 소요 속에서 자라나는 한 소녀의 성장과정과 그 눈으로 통해 보는 바깥세상에 대한 얘기를 그리고 있다.

내가 특별히 주목했었던 것은 자신의 지나간 시절들을 관조하는 여인의 회한과 더불어 그녀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소극적인 정의감이었다. 어린시절 소녀는 정치범으로 사형을 당한 할아버지의 얘기를 듣고, 자신이 사랑했던 삼촌까지도 옥에서 사형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며 자란다. 이러한 가정적인 배경과 어두운 사회적 분위기 탓에 소녀는 몰래몰래 ABBA와 락을 들으며 진보적인 꼬마로서 거리낌없이 자라게 되지만, 계속되는 전쟁의 위험으로 소녀는 유럽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전쟁과 종교의 억압에서 자유로워진 그녀는 길거리에서 불량식품을 골라먹고 댕기는 듯한 삶을 살다가 결국엔 향수병으로 인해 이란으로 돌아오고만다. 좁은 문에서 바라보는 큰 세상의 자유로움으로 인해 그녀는 기꺼이 타락의 문턱까지 가지만 순간순간 자신의 뿌리와 가족들의 정치적 희생에 대한 신념을 잊지 않는다.

이란이라는 조금은 생소한 배경의 애니메이션이기는 하나 386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가슴속에 불(?)같은 것에 대한 부러움이랄까, 그들은 어려웠고 억압받았다고 말하겠지만 소요가 지나간 후의 고요는 때로는 시체들로 낭자하는 잔인함과, 자스민 꽃이 휘날리는 아름다움을 자아낼것만 같은....뭐 그런 로망이 있나보다. 세대적 변명을 덧붙이자면, 자신의 것을 지키며 용감하게 살기에는 집값도 너무 비싸고, 취직하기도 어렵다. 배불리 먹을 수 있고, 잘 곳이 있다 해도 행복하다고 말하기엔 가져야 할 것도, 요구당하는 것도 너무나 많다. 음식과 잠에 대한 단조로움으로 인한 지루함과 내외적인 요구와의 갭이 자꾸 잘 알지도 못하는 옛날 옛적 얘기에 대한 향수에 빠지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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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ano

bonbon 2008/07/05 10:04 Posted by bon.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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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열이 오를대로 올라서는 숨을 참을 줄도 몰랐고, 감정을 침잠시킬 방법도 몰랐을때, 늘 가슴 먹먹하던 시절 본 영화다. 아직도 이 영화를 생각하면 창백한 색감과 단조음의 피아노 음이 끊임없이 코속부터 머리까지 휘휘 돌고 돌아 감정-인플레이션이 되어버린다.

피아노는 에이다에게 하나의 '생명체'로서, 이미 그녀의 의식속에 존재하여 그녀의 사랑과 닮아있다. 표면적으로 단지 피아노의 잠식만으로 그녀는 함께 해방되었고, 창백하리만큼이나 자유로와졌다. 릴케의 「말테의 수기」에 인생은 사랑을 이루기 위해 산다는 구절이 있다. 사랑이 늘 낭만적인것만은 아니듯 릴케의 말 역시 상투적이라고 단정짓기엔 인생은 내가 생각하고 알아왔던 것보다는 복잡할지도 모른다.

에이다는 자신의 몸만큼이나 소중하게 여기던 피아노 건반 하나를 떼어내 자신의 사랑을 전달한다. 자신의 살을 도려내는 것만큼이나 아프지만 피아노 건반은 그녀자신과 그녀가 소유한 사랑을 드러내는 매개체이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첫번째 도약이기도 하다. 베인즈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자신의 틀 밖으로 뛰쳐나온 에이다에게는 피아노의 굴레에서, 혹은 남편의 소유로부터 벗어남이 그녀의 잘린 손가락만큼이나 절실하다. 비록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게 되었지만 그녀는 자유롭다.

상처는 직관이 아닌 인식이기 때문에 그것은 누가 알아주든 아니든, 어딘가에 있는 외딴섬의 화석같다. 어리석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상처받을까봐 전전긍긍하며 화석같은 삶을 산다. 그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가 상처받는 것이 무서워 에이다의 남편처럼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자신이 아는지 모르는지도 모르고 해치기도 한다. 그는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서보지도 못하고 섣불리 자신의 소중한 것을 파괴하고, 미련없는척 잘난척도 해가며-사랑을 도려낸다. 그 칼로 도려내는게 자신의 살인줄도 모르고, 안쓰럽게.

상처가 좀 나면 어떠랴. 그러므로써 내가 존재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누군가 함께 있어준다면- 조금은 더 여유있게 다른 사람의 상처가 아물길 기다려주자. 그 사람을 바라보는건 폭탄만한 상처를 안고 사는 그 자신이 아니라, 그 옆에 존재하는 나일테니까. 적어도 함께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기고, 지켜봐주는것 역시 사랑하는 사람의 몫일테니, 그만 욕심과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자.

릴케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사랑이 있기에 사람들은 인생을 견뎌내기도 하고, 바람에 흔들려서 잎사귀가 다 떨어져나갈지언정 살아내는 것일지도.


***2006년 4월에 썼던 글....그대로 가져옴. (출처는 윤선영의 사이좋은 세상)
도대체 2년전에 ... 난 사랑을 했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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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by 에쿠니 가오리

bonbon 2008/05/19 19:18 Posted by bon.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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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1889, 캔버스 유채]



우리는 늘 선택의 고리 앞에 서있다. 그리고 내가 해야만 하는 결정과 내가 진정 원하는 결정간의 괴리감과 강요가 때론 선택에 대한 집중도를 결정짓곤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문제에 당면하여 당연한 정답처럼 보이는 제비를 뽑기도 하고 어찌된 일인지 틀린줄 알면서도 오답을 뽑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처럼 누군가에게는 진짜 정답인 '오답'에 정당한 근거로 삶의 집중도와 따뜻한 시각이면 충분하다.

쇼코는 게이 남편을 택했고, 무츠키는 우울증환자 부인을 선택했다. 물론 서로의 선택 이전에 각각의 선택은 각자의 삶의 집중도와 배려에 기인한다. 자신의 행복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행복이 늘 같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자신의 사랑과 행복이 늘 동일선상에 있다면 얼마나 흐뭇하련만,,,, 삶은 늘 우연과 필연으로 뒤엉켜 있고, 행복과 불행사이를 오르락거린다. 소설속 주인공들 역시 늘 그 사이에 서있으며 언제나 그렇듯 결정에의 강요속에 놓여져있다.

무츠키는 이성애자 여성들이 통곡할만큼 다정다감하고 가정적이며 헌신적인 게이 남성이다. 쇼코와 무츠키는 정신병과 의사와의 편리한 결합으로 인하여 부모와 자신의 열등감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한다. 겉보기에 이들의 결혼생활은 탈없고 무난하다. 최소한 부모님들께 이 결혼의 정체가 탄로나고 아이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기 이전까지는 말이다. 무츠키는 알콩중독에 우울증 증세를 가진 아내를 잘 보살피며, 쇼코는 남편의 남자친구 이야기 듣기를 즐긴다. 그리고 이들 사이 매꿀수 없는 공백마저 때로는 즐기니 이보다 더 평화롭고 안전한 관계는 없어보일 정도다.

이 책의 클라이맥스이자 내가 가장 감동받은 부분은 이 둘의 관계가 양가에 알려지고 아이 부분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 부분이다. 쇼코는 고민 끝에 무츠키의 친구인 산부인과 의사를 찾아가서 무츠키의 정자와 그의 남자친구의 정자를 결합하여 하나의 정자를 만든 뒤 자신의 난자로 시험관 아기를 가질수 있는지 여부를 의논한다. 클라이맥스라고는 했지만 이마저도 위태롭기보다는 따뜻한 인간애를 느낄수있는 부분이었다. 단번에 말도 안된다 못박지만 그러면서도 우리는 입을 열어 새로이 말을 만들고, 그렇게 인간의 역사는 다이나믹하게 흘러왔잖은가. 그것이 결코 늘 따뜻하거나 정의로웠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말이다.

가끔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과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 사이에 '용기'라는 악세사리를 꽂아두곤 한다. 그러나 악세사리가 늘 날 따라다니지도 않을뿐더러 봐줬음 하는 몇몇 타인들마저 악세사리를 못보고 지나칠때가 많다. 심지어 자신조차 악세사리의 존재 자체를 잊곤 하니깐 말이다. 글을 쓰다보니 선택에 있어서 정말 두려운건 선택 자체보다는 '망각'인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그때 상황에서 쏟았던 열정과 에너지, 그리고 따라다녔던 고통을 잊는건 너무 슬픈 일이니깐. 아마도 선택에 있어서의 실패는 주류에서의 탈선보다도 고통의 망각인듯 하다.

반짝반짝 빛나는

반짝반짝 빛나는 지갑을 꺼내서
반짝반짝 빛나는 물고기를 샀다
반짝반짝 빛나는 여자도 샀다
반짝반짝 빛나는 물고기를 사서 반짝반짝 빛나는 냄비에 넣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여자가 손에 든 반짝반짝 빛나는 냄비속의 물고기
반짝반짝 빛나는 거스름 동전
반짝반짝 빛나는 빛나는 여자와 둘이서 반짝반짝 빛나는 물고기를 가지고
반짝반짝 빛나는 동전을 가지고 반짝반짝 빛나는 밤길을 돌아간다
별이 반짝반짝 빛나는 밤하늘이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빛나는 눈물을 흘리며
반짝반짝 빛나는 여자는 울었다

-이리사와 야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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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read, the kings of convinience

bonbon 2008/04/01 17:30 Posted by bon.bon

산뜻한 '봄소풍'을 기대하며..

The kings of convinienve, misread







추신: 분당은 너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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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이징 그레이스

bonbon 2008/03/27 13:40 Posted by bon.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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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고달프다 우울하다 힘들다'는 기염을 토해내고, 당시에는 쓴 약사발을 아무리 피하고 싶을지언정 위기와 고난이 없는 인생은 존재할수도 없으며, 살아낼 재미도 없을것이다. 가끔 사는게 피곤할 따름이지 유익하지 않다고 말할 것도 아니며, 어느 것에 무게중심을 둘지, 어떤 기회비용을 감수할지도 순전히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리고 그 무게와 기회비용의 댓가를 위해서는 최소한 자신만이라도 수긍할 수 있는 명분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이것이 바로 신념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보면서 신념에 더욱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주인공 윌리엄 윌버포스는 18세기 영국의 노예무역을 폐지시킨, 실존했던 정치인이다. 윌버포드는 21살에 정치에 입문하였으며, 50년에 걸쳐 노예무역폐지운동을 벌여 죽기 며칠전 비로소 노예매매폐지법안이 통과되었다. 올해가 노예매매폐지운동 200주년이 되는 해고,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라고 한다. 유명한 찬송가이기도 한 <어메이징그레이스>는 노예무역선장에서 목회자의 길로 항로를 바꾼 존 뉴튼이 작사한 노래의 제목이다. 노예무역선장으로서의 죄의식으로부터 출발한 그의 깨우침은 노래가사 단 몇줄로 200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있다. 자신의 정치행로와 신념 사이에서 잠시 주춤하고 있던 윌버포드가 존뉴튼 목사로 인해 자신의 나약함을 딛고 일어서게 되는 것은 결코 우연한 계기는 아닌 것이다.

인간의 나약함은 신념의 흔들림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내 인생을 굳세게 끌어줄것만같았던 신념은 때로 명분을 앞세워 오히려 나의 발목을 붙잡기도 하고, 넘어지게도 만든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게 만든 원인인 나의 불만섞인 목소리는 바로 '신념'때문이니까 말이다. 나를 결정지어줄 무언가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 나를 힘들게 할 것이라고는 생각못했던 나의 상상력의 부재랄까. 한마디로 나는 고민하지 않았던 것이다. 고민의 한 자락을 지혜롭게 일단락짓고, 나도 어서 세상을 향해 'How sweet the sound'를 외치고 싶다.


Amazing Grace
- John Newton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I once was lost, but now I'm found.
Was blind, but now I see.

'Twas grace that taught my heart to fear,
And grace my fears relieved.
How precious did that grace appear!
The hour I first believed!

Through many dangers, toils, and snares
We have already come.
'Twas grace that brought us safe thus far,
And grace will lead us home.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I once was lost, but now I'm found.
Was blind, but now I 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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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bonbon 2008/02/11 23:25 Posted by bon.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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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joel shapiro 作, @ gana art gallery 2008.02.01-24



평창동에 위치한 가나아트갤러리는 차가운 직선 조각들을 담기에도 참 따뜻한, 빛이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조엘 샤피로의 작품은 전부 무제이다. 제목 없는 작품 앞에 서면 갑자기 자유가 답답해지는건 어쩔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 제목이 없음을 수긍하고 만것은 어릴적 자주 가지고 놀던 레고 블럭 생각이 나서였다.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레고블럭을 왜 집어던졌는지는 기억이 나는데, 내가 원하는 블럭끼리 내가 원하는 위치에 홈을 끼워맞출수 없어서였다. 레고블럭은 모서리끼리 붙일 수도 없고, 모서리와 홈을 끼울 수 없어서 애 성질을 더럽히는 아주 비교육적 장난감이지 않던가. 반면 조엘의 작품들 속 나무 막대기들은 아마도 그가 원하는 곳에 잘 붙어있는 듯 보였다. 그거 안떨어지게 붙이느라 고생했겠더라.

얼핏 보면 작가가 이어붙인 막대기들은 사람의 몸처럼 보이기도 한다. 만약 사람 몸이 저렇다면 얼마나 불편하고 고통스럽겠는가. 그래도 작가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균형과 안정을 초월해보고 싶었던가보다. 작가가 불완전하고 거친 나무막대기를 땅바닥에 세운 순간, 그의 고통도 평온함으로 정의되버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 예술만큼 어리석고 불편한 존재도 없다. 자기몸 깎아가며 만지지도 못할 공기를 가르는 발레리나, 보이지도 않는 바람 그리느라 생고생했는데 생전에 그림 한 점 팔고 정신병원서 죽은 고흐, 자기 귀도 잘랐는데..들리지도 않으면서 암흑을 휘저으며 지휘했던 베토벤..이들의 삶이 그들에게 두번째 선택을 주기나 했느냐 말이다. 그들은 그저 고통을 선택했고,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용했을 뿐이다.

조엘 전시관 옆에서 하고 있던 한 회화전에는 '말과 글'이란 제목을 가진 여러개의 그림 작품들이 있었다. 작가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의 그림 두가지를 서툴게나마 묘사하자면 이러하다.

두 그림의 제목은 둘다 각각 '말과 글'이다.

- 낡은 건물과 건물 사이에 색이나 겨우 빼꼼하게 드러낸 하늘, 그덕에 등장한 그림자, 그 사이를 아무렇지 않게 걸어가는 사람과 개. 하늘은 분명 열려있건만 그들은 닫힌 그림자 사이로 걸어들어간다.

- 빽빽하게 우거진 소나무 잎사귀 사이로 보일까 말까한 낡은 하늘과 그 밑으로 불투명하게 지나가는 듯한 구름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세상.

분명 무지와 선택, 그리고 보이지 않는 길들은 두려움과 맞닿은 고통이다. 그렇다할지라도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자주 보이지도 않는 것들 때문에 싸우고, 허우적거리고 고통스러워한다. 어느 재일동포 소설가의 인터뷰에서 그가 했던 말처럼 행복은 순간인 반면, 불행은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균형을 찾아야겠다 마음을 잡은 순간, 조엘의 무제 작품과 이름모를 화가의 '말과 글'은 그 불편함과 불투명한 덧없음으로 나를 위로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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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객전도 계몽소설

bonbon 2007/10/09 23:51 Posted by bon.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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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y Joel 의 앨범자켓그림. 글과 관련없지만,,,이뻐서.



심훈(1935), 상록수
.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은후, 가끔 내가 과연 이 소재로 책을 쓴다면, 혹은 내가 주인공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였을까 하는 상상을 하곤한다. 내가 읽은 책들이 주로 옛 시대적 배경이기에 아마도 가끔은 터무니없기도한 상상을 하기에 더 편리했을 듯싶다. 이것이 문학의 거울보기효과 아니겠는가. 각설하고..

오늘 나는 학생들과 수업은 제쳐두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필연적으로(한글수업이다보니,,) 심훈의 상록수를 떠올렸다. 나는 상록수작품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현대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많은 영감과 모티브를 주기에 충분한 작품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상록수가 건전한 계몽소설이라서? 결코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 심훈의 상록수는 계몽소설의 범주라고 배우긴 하였지만 요즘 다시 생각해보니, 이 책은 계몽소설이라기 보다는 단순한 연애소설이거나, 영화 몽상가의 주인공들처럼 이상을 쫓는 젊은이들의 치기어린 낭만을 그린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교과서에 나온 아주 짧막한 에피소드는 분명 계몽소설의 기능을 갖추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계몽은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는 것이다. ‘상록수에서의 계몽은 말과 글을 통해 사람들의 정치적, 사회적 의식을 일깨우는 것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 상록수에서 주력하고 있는 스토리전개의 실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 책의 주요 스토리는 최용신의 애끓는 장거리연애, 병이 걸려 수술을 받으면 살 수 있는 것을 알면서도 미련하게 계속 무리를 해가며 일을 하는 최용신의 남다른 희생정신에 초점을 맞추며, 박동혁과 최용신이라는 인물들의 영웅적 행적을 부각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심훈은 자신이 좌파 민족주의자임을 강조하고자 했다지만 작품속 박동혁이라는 인물의 연설에서 농민들의 문해교육이 사상운동이 아니라 계몽운동임을 강조하는 부분을 보며 그가 소극적이고, 어쩔 수 없는 우파 지식층 민족주의자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위에서 언급했듯 계몽운동이 사람들의 정치적 사회적 의식을 깨우치는 것이라면, 사상운동은 도대체 뭘까. 말과 글은 원하든, 원치 않든 사상을 껴안고 갈 수 밖에 없으므로 굳이 그것을 나눌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보기 좋은 포장을 뜯어버리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그들의 계몽시킴으로써 그들을 사회와 독립운동의 현장으로 끌어와 인력동원이라도 했어야 했다. 사상서든 계몽서든 뭐 어떤가.


또 하나, 작품 속 몽매한 농민들은 박동혁과 최용신의 지도아래 글을 열심히 배우고, 자신들이 자발적으로 조직을 결성하는 노력 등을 보여준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박동혁과 최용신이라는 당시 특권계층(대학생)들에 의한 수동적인 자세를 벗어나지 못한 채, 끝내 사회적, 자발적 자아의 면모를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결국 이 소설은 대학생들의 목숨을 내건 낭만적 발구르기에 그치고 만다.

당시 1930년대 우리나라 문맹률은 85%에 육박했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 문해율은 많이 향상되었지만 지금도 글을 읽고 쓸줄 모르는 사람들이 전 국민의 20%을 육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의 의무화된 지원으로 각 지방청들의 노력과 지원은 많이 향상되었으나, 가끔 재미있는 일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가령, ‘무료한글학교를 지원한답시고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홍보로 전단지를 뿌리고, 홈페이지에 광고를 내는 모습들을 보면 말이다. 이쯤되면 각 시청 교육과마다 늘 오는 사람들만 온다라고 하는 볼맨 소리는 조금 우습기까지 한 것이다
.

이론상으로 외치기는 교육에서의 주체자는 학생라면서 옛 작품 속에서도, 현재 우리 삶속에서도 이 주객전도는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역으로 주와 객을 바꾸어 상록수의 주인공이 최용신이 아니라 작은 산골마을의 12살 먹은 아이라면, 혹은 40대의 주부라면 어땠을까. 최용신의 무모해보이기까지한 열정을 그들의 삶에 대입시켰다면 소설의 볼륨은 더 커졌으리라. 그랬다면 최용신과 박동혁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나 영화 몽상가에서처럼 아기자기하고 낭만적인 혁명가적인 면모는 정녕 볼 수 없었겠지만, 진정 이 작품이 계몽소설이라면 농민들을 계몽시키려다 애꿎게 죽은 처절한 여주인공이 아닌, 그 노력을 통해 세상을 향해 눈을 뜨게 되는 그 누군가가 주인공이었어야 했던 것 아닐까
.

필연적인 상상이라고는 했지만, 수업 끝에 우리는 한글을 다 배우고나면 시청으로 다같이 달려가서 무료강좌를 배우고, 자격증을 따자고 결의(?)하였다. 비록 그들이 60대의 노령이지만 앞으로 그들이 살아갈 날이 적어도 지금껏 살아온 날의 반이나 남았음을 다시금 상기하고 새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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