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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게 살자>와 바르게 산다는 것

<바르게 살자>와 바르게 산다는 것

 <바르게 살자>는 정말로 오래간만에 보는 재미있는 국산 코메디 영화였던 것 같다. TV를 켜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개인기를 다시 보게 만들지도 않았고 결국엔 억지스런 신파로 끝나는 답보를 거듭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바르게 살기 힘든 세상에 대한 풍자극이다. ‘정도’만을 걷는 정도만은 사실 일반인이 보기에도 바보스러운 고집쟁이일 뿐이지만 ‘정도’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에 지친 일반인들이 감정을 이입하기에는 좋은 캐릭터다. 악역으로 나오는 잘나가는 야망가 경찰서장이 순박한 정도만에게 골탕 먹는 모습이 대리만족의 웃음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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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내가 기분좋게 웃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오히려 다른데 있었다. 영화는 시종일관 정도만 대 경찰서장의 대결 구도로 진행된다. 물론 선은 정도만이요, 악은 경찰서장인 것처럼. 그러나 경찰서장이 과연 악자였는지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출세밖에 모르는 비정한으로 출연하고는 있으나 실제 영화 장면에서는 나는 그가 누구에게 딱히 해를 끼치는 모습을 보지는 못한 거 같다. (딱지를 끊은 정도만에게 가벼운 복수를 하기는 했지만 그에게도 권위를 앞세운 강압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의미 심장한 장면은 얼굴을 비추러 온 도지사를 경찰서장이 대하는 태도이다. 단지 출세에만 눈이 먼 같은 부류의 사람이었다면 그를 그토록 냉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내게 보인 경찰서장은 단지 자신의 가치관에 충실한 사람으로서 정도만과 자존심 대결을 하는 사람이었다. 정도만이 도덕원칙의 상징이라면 경찰서장과 도지사는 모두 현실원칙의 상징이다. 그러나 도지사가 비리의 길을 걷는 사회악이었다면 경찰서장은 현실 속의 성공을 향한 야망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결국 내가 통쾌함을 느낀 부분은 도덕원칙이 현실 속의 성공욕구를 이겨서가 아니라, 결국엔 도덕과 야망이 타협하여 비리를 이기는 장면이다. 경찰서장의 몰락으로 만약 극이 마무리되었다면 나는 이 영화를 그저 비현실적인 환상에 불과한 이야기로 느꼈을 것 같다.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우리들 중에 투쟁하는 프롤레타리아를 찾기는 힘들다. 부르주아 아니면 부르주아가 되고 싶어하는 소시민이 있을 뿐이고, 나 역시 그런 소시민의 한 사람이다. 도덕이 현실을 무조건 이길 수는 없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노력없는 일확천금을 꿈꾸며 로또를 산다고, 남들이 힘든 것보다 당장 내가 좋은 직장 잡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누가 쉽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도덕과 현실은 계속 우리 안에서 갈등한다. 때로는 도덕이 이길 것이고, 때로는 현실이 이길 것이다. 다만 마지막까지, 사회악의 승리로 끝나지만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