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색계에서 이상주의자의 몰락을 보다

ru_happy 2008/06/30 13:36 Posted by ru_happy

[색계에서 이상주의자의 몰락을 보다]

*주의: 스포일러 많음


영화를 보면서 얻을 수 있는 메시지는 무수히 많을 수 있다. 감독이 의도한 메시지는 하나 혹은 몇 개일 수 있으나 일단 감독의 손을 떠난 영화는 관객 그 자신의 생각과 경험과 얽혀 다른 메시지들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떤 작품에 대한 글을 쓰기보다는 어떤 작품 내에 보이는 A라는 요소로 다른 주저리를 끄집어 내려고 하는 편이다. 영화의 본래적 의미와 문법적 요소에 대한 분석은 다른 많은 전문가분들이 알아서 해주실 테니까.

‘색계’라는 작품은 일제의 영향 하에 있던 2차대전 무렵의 중국을 배경으로 친일파 정보부 대장 이(양조위 분)와 그를 암살하기 위해 스파이 활동을 하는 왕 치아즈(탕웨이 분)를 다룬 이야기이다. 원작 소설은 극중 후반부 만을 다룬 짧은 단편이었다고 하니, 역사의 희생양이 되는 그들의 사랑과 심리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이안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강렬한 섹슈얼리즘도 이슈가 되었는데, 내게는 적나라하게 보여지는 둘 사이의 관계보다도 이를 만나기 위해 그녀가 겪어야만 했던 일이 충격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죽여야 하는 사람을 사랑해서 죽이지 못한 그녀나, 사랑하는 사람을 죽여야 했던 그보다도 내게 쓰라림을 주었던 인물은 따로 있었다. 바로 광위민 (왕리홍 분)이라는 캐릭터이다. 학생항일단체의 리더로 왕 치아즈와 서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녀를 치욕과 고통의 사지로 보내야 했던 그는 왕 치아즈의 인생을 망친 장본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광위민이 그녀를 좋아하면서도 그녀를 스파이로 만들었던 것은 그가 가지고 있었던 이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애국, 그리고, 일본에 대한 복수. 그러나, 그의 조직이 계획했던 작전은 잘 풀려가지 않는다. 많은 돈을 이 일을 위해 바쳤던 친구는 언제까지 이런 ‘영웅놀이’, ‘마님놀이’에 빠져 있을 거냐고 그를 비난한다. 이 조직과 작전은 결국 실패하고 그 구성원들의 삶을 부셔 버리며 파국에 이른다. 몇 년 후 다시 왕 치아즈를 찾은 광위민은 여전히 같은 이상을 추구하고 있다. 다만 이 번엔 좀 더 큰 조직에 있을 뿐이다. 광위민에 의하면 그 조직은 이전의 사건이 있었을 때부터 이미 광위민의 ‘애들 장난 같았던’ 학생조직을 지켜 보고 있었다고 한다. 왕 치아즈는 다시 가담하지만 그것은 광위민을 위한 것이나, 나라를 위한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이’를 다시 만나기 위한 수단이었을 수도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그녀가 광위민의 이상에 동조했다고는 볼 수 없다. 사실 그 이전에도 그의 이상에 대한 동조가 아닌 그에 대한 호감 때문에 그 길을 선택했다가 너무 많이 와 버린 것이리라.

문제는 타자였던 왕 치아즈는 제쳐두고라도, 광위민 그 자신은 자기의 이상이라는 것을 똑바로 보고 있었는가라는 점이다. ‘애들 장난 같았던’ 과거의 이상과 달리 현재의 이상은 분명함을 가지고 있었을까? 광위민은 왕 치아즈는 물론 함께 이상을 추구했던 친구들과 함께 끌려 나와 죽음을 맞는다. 그가 속했던 큰 조직의 보스는 그들을 버리고 달아나 버렸고, 권력자로 보였던 ‘이’도 감시를 받는 하수인에 지나지 않아 왕 치아즈를 구해 줄 여력은 없다. 광위민은 과연 마지막 순간에 숭고한 이상을 위해 최선을 다했느라고, 후회없는 죽음을 맞이한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남의 손바닥 위에서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한 탓에 자기는 물론, 친구들, 사랑했던 사람의 인생까지 망쳤다고 생각했을까. ‘애국운동’을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다. 단지, 그가 과연 진정으로 숭고한 사명감이나 확실한 목표의식을 가진 인물이었는가에 회의감이 들 뿐이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현실을 모르는 어리석은 이상주의자의 몰락으로 보였다. 이는 내게도 깊은 씁쓸함을 가져다 주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가십걸과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ru_happy 2008/06/24 00:20 Posted by ru_happy

[가십걸과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미드 ‘가십걸’은 이른 바 ‘It Girl’이라고 불리는 트렌드세터, 상류층 청소년들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의 독특한 매력은 나레이터 ‘가십걸’의 존재에 있다. 일종의 스캔들 전문소식통이라고 할 수 있는 가십걸은 화면에 얼굴 한 번 비쳐지지 않지만 이 드라마를 기존의 청춘 드라마와 차별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베로니카 마스’의 여주인공이자 ‘히어로즈’에서도 모습을 볼 수 있는 크리스틴 벨이 이를 맡아 매력적이고 미스테리한 목소리를 선사해주고 있다. ‘친애하는 가십걸로부터’라고 번역될 수 있는 ‘XOXO Gossip Girl’ (XOXO는 껴안은 모습과 둥근 입술의 이모티콘으로 Hugs & Kisses를 의미)은 그야말로 이 드라마 최고의 명대사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드라마 가십걸 내의 커뮤니케이션 구조는 다음과 같다. 사람들은 핸드폰을 이용해 문자, 사진, 동영상을 이용하여 가십거리들을 가십걸에게 보낸다. 그러면 가십걸은 이를 블로그에 게재하고 모든 구독자들(그러나 보통 가십의 당사자는 제외한)에게 핸드폰으로 그 소식을 다시 전해 준다. ‘A가 B몰래 C와 키스를 했다고 하더라.’라는 소식을 전교생들이 알게 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다. 가십의 특성 상 그 소식은 누군가의 상처를 요구하는 은밀하거나 가학적인 정보인 경우가 많다. 또한 이의 영향력은 또래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크고 감수성이 풍부한 청소년들의 특성을 고려하면 절대적이다.

적나라한 비밀들을 공개해서 사람들의 원망을 받기도 하는 가십걸이지만, 그녀에게도 나름의 원칙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원 미상의 정보를 싣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야.” 등과 같은 대사에서 엿볼 수 있듯이 거짓된 정보를 전달하지는 않겠다는 것이 하나의 원칙일 것이고, 자신의 정체를 절대로 드러내지 않겠다는 것이 또 하나의 원칙이다. 사실 누구 한 사람에게 정보가 독점될 때 자연히 이루어지는 것은 그 사람의 권력화이다. 남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것, 남의 약점을 알고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부릴 수도 있게 만드는 파워를 그녀에게 쥐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십걸은 그러한 사악한 존재가 되지 않는다. 그저 개개의 사람들이 보낸 정보를 다수의 다른 사람들에게 확산시켜주는 중립적인 매개체, 하나의 게시판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결국 가십들이 일으키는 근본적인 문제와 책임은 남을 해하려는 의도를 가진 정보 제공자들에게 있는 것이지 가십걸에게 있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가십걸을 비난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결코 시스템의 구조 상의 잘못이 아니라, 침해성을 가진 사적정보를 공적화했다는 내용 상의 문제 때문일 것이다.

가십걸이 최신의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안 좋은 방면으로 활용된 예라고 본다면, 국내에는 이와 유사하지만 매우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방면으로 사용된 예가 있다. 바로 촛불 문화제이다. 인터넷 매체들과 카메라폰을 든 참여자들은 현장을 생중계하고, 집에서 인터넷 중계를 확인하는 사람들은 다시 이들에게 타 지역의 현황을 문자로 연락해주는 이 시스템은 많은 사람들의 핸드폰과 컴퓨터 모니터에 ‘무서운 비밀’들이 쏟아져 나오게 만들었다. 거기에는 우리의 건강을 담보로 한 거래에 대한 비밀도 있었고, 거리에서 벌어진 폭력에 대한 비밀도 있었다. 이것들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막기 위해 파헤쳐야 할 비밀들이었다. 예전 같으면 최고의 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 정부와 거대 기존 언론사들에 의해 감춰져 버릴 수도 있었던 진실들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덕분에 공개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은 정보통신의 발달과 함께 계속 발전할 것이고, 그 기술은 기본적으로 가치 중립적이다.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결국 우리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그러나, 그렇게 국민과 소통하겠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은 여전히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있나 보다. 온라인 포털과 메타블로그에 대한 통제 주장이 흘러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그 본질적인 이유가 그것들이 가십걸처럼 악용될까 걱정되어서인지, 자기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함인지는 너무나도 명백하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어글리베티, 소외된 자들의 웃음

ru_happy 2008/06/16 22:19 Posted by ru_happy

[어글리베티, 소외된 자들의 웃음]

*주의: 스포일러 있음.

‘못생겼지만 착하디 착한 사람의 성공기.’ 광고로 처음 ‘어글리베티’를 접했을 때의 인상은 바로 그것이었다. 흔하고 뻔한 이런 주제의 드라마가 이제 와서 무슨 가치가 있을까 생각하던 무렵 이 드라마는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고, 이어 SAG(Screen Actors Guild Awards 영화배우조합상) 최우수 여자 연기상과 에미상 여우주연상, 감독상까지 휩쓸어 버렸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힘을 내뿜게 했던 것인지 궁금해서 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드라마의 시작은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가난하고 못생겼지만 착한 여주인공이 우연한 기회로 얻은 좋은 직장, 잘 나가는 매력적인 사람들과의 강렬한 대비와 주인공을 힘들게 하는 차별들. 그런데 에피소드가 더 해갈수록 소외된 자는 주인공만이 아님이 드러나게 된다. 주요 인물들을 나열해 보면 대략 이와 같다.

지나치게 못생긴 여주인공, 불법체류자에 살인범인 아버지, 철없는 미혼모 언니, 동성애자 성향의 조카, 섹스 중독에 마약 중독까지 겪는 남자 주인공, 성전환한 그의 형(누나), 알코올 중독인 그의 어머니, 폭력 남편을 피해 도망친 직장 동료 등등. 이런 사람들이 주인공인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전체적으로 웃음과 애정어린 시선을 잃지 않는다. 미숙한 작품들과의 차이점은 이러한 따뜻함이 터무니없는 환상에 의존하는 동화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아픔들을 직접 마주서고 인내하고 이겨내며, 작은 행복을 나누어 감으로써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작품 전반에 걸쳐 악역으로 등장하던 세 인물들도 딸과의 갈등으로 아파하는 어머니, 어머니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고백하지 못하던 동성애자, 사랑에 아파하는 여인의 모습을 함께 가지고 있어, 온갖 모략이 난무하는 상황에서도 마치 강풀의 만화를 보는 것 같은 따뜻함이 있다

철저히 자본 중심적이고, 사회적 차별이 가득한 미국에서 어떻게 이렇게 소외된 자들을 전면적으로 내세우는 드라마를 내세우고, 예쁘지도 않은 라틴계 여배우에게 많은 상들을 몰아 줄 수 있었을까. 단순히 라틴계 미국인들의 지위 향상 탓으로 돌리기엔 우리가 보고 생각할 점들이 많다. 싸잡아서 비판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겠지만, 지금도 TV를 켜면 많은 드라마에서 주위에서 보기도 힘든 대가족이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가정부를 부리며 연애만을 하고 있지는 않나?

어느 사회나 소외 받은 자들은 있고 사회의 구성원들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써 그들에게 손 내밀어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웃을 수 있는 권리가 있으니까. 그런데 왜 우리나라는 소수의 권력자들이 작은 촛불들을 쓰러뜨려가며 더 많은 사람들을 소외시키려고만 하는 것인가.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스피드 레이서로 보는 일본 문화, 그리고 한류]

스피드레이서에 대한 평은 분분하지만 대체로 악평이 대세인 것으로 보인다. 일단 개인적인 평가는 기대 이상이었다. 알록달록한 색깔이 요동을 치는 예고편 때문에 기대를 너무 안 하고 있던 탓도 있지만, 그러한 표현이 가치가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등과 같은 영화들은 마찬가지로 단순명료한 히어로물 만화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영화화를 위해 적절한 각색이 되어 있는데 반해 이 작품은 원작의 느낌을 최대한 그대로 끌어오려고 한다는 점에서 ‘신시티’의 컨셉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공각기동대’로부터의 영감을 가져 왔던 매니아적인 전작 ‘매트릭스’가 대중적으로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버리면서 생긴 기대감 때문에, 마찬가지로 애초에 매니아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출발한 이 영화가 괜히 돌을 더 많이 맞게 된 건 아닐까. 원색적인 색감은 TV의 광고로 보았던 것보다는 디지털 스크린에서 훨씬 잘 어울렸고, ‘오바’하고 있다기보단 만화적이고 미래적인 배경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역동적인 이미지 역시 대형화면에서 잘 살아났다. 이 영화를 만약 컴퓨터 모니터로 보았다면 나 역시 경마나 자동차 레이싱을 TV로 보았을 때처럼 지루하게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소년 만화의 설정을 그대로 옮겨 왔으니 이야기가 유치하다는 평가는 당연한 일이므로 생략하면, 이 영화 실패 요인으로 생각해 볼 점은 어느 영화잡지 평론가 분의 평대로 시대와 국가적인 사고가 맞지 않다는 점인 것 같다. 21세기의 현실 정서와 가족기업의 가치를 숭상하는 6,70년의 일본 정신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관객이 아니라 ‘스파이키드’를 즐겁게 봤던 미국 관객들까지 이 영화를 폄하하는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닌가 한다. 다른 이미지는 받아 들이기 쉽지만 다른 생각은 받아 들이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일 테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나, 스피드레이서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일본 문화를 담은, 혹은 일본 영화를 리메이크한 헐리우드 영화는 계속 늘어날 조짐이다. 그 기본 바탕은 소재 고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라는 점에 있기에, 일본 영화 외에도 공포 영화들을 중심으로 태국이나 한국 등의 아시아권 영화들도 판권이 팔리고 있지만, 워쇼스키 형제의 차기작도 닌자 이야기일 만큼 유독 영화계에서 일본 문화는 높은 대접을 받으며 하나의 큰 문화 현상이 되어가고 있다. 제2의 자포니즘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 오래 전에는 헐리우드의 거장들이 구로사와 아키라 같은 일본 감독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들이 잘 와 닿지 않았다. 자기네 서구인들의 눈에는 일본 역시 아시아의 ‘미개’한 국가로 밖에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의 그런 생각을 완전히 무너뜨려버린 단어가 바로 ‘자포니즘’이었다. 자포니즘은 19세기 유럽을 강타했던 일본 문화의 유행을 말한다. 유럽인들이 일본산 도자기를 사 들여올 때 포장지로 덮여 있던 우키요에 판화에 반해 시작되었다는 이 유행은, 고흐 같은 당대 최고 작가들의 그림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대학에서 디자인문화론이라는 수업을 듣기 전에는 이런 사실들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 “우리나라 교육계에서는 이것을 일부로 감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곤 했다. 서양 작가들의 일본 문화에 대한 존중은 하루 아침에 생긴 게 아니라 이처럼 이전부터 쌓여 온 가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한류’라는 말이 유행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아시아로 국한된 현상이었다. 그러나, 한류가 있었던 덕분에 한국의 배우들이 헐리우드 영화에 캐스팅되기 시작하고 있다. 아시아 전역에서 인지도를 가진 스타가 좋은 흥행 요소가 될 것 같아 선택하는 것뿐이지 한국 영화나 문화의 위상 자체가 오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를 가지고 ‘코리아니즘’ 운운하며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좋은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김윤진의 이름이 있기에 ‘세븐데이즈’라는 이름이 좀 더 쉽게 팔릴 수 있었을 것이고, 이렇게 점차 한국의 작품들이 전해지면 자연히 한국 문화를 노출시킬 기회도 늘어갈 것이리라. 과거에는 헐리우드의 한국 배우라고 해 봐야 대부분 교포 출신이어서 언론이 자랑스러운 한국배우 운운하는 것이 호들갑떠는 것으로 밖에 안 보였던 데 비해 한국에서 출발해서 처음으로 선전을 해 준 비의 모습은 그래서 뿌듯하다. (김윤진은 미국 출생으로 ‘쉬리’의 성공과는 상관없이 현지에서 오디션을 봐서 ‘로스트’에 캐스팅되었고, 박중훈의 진출은 성공적이지 못했으니 제외)

 ‘일본이 참 부럽다.’라는 것을 크게 느낀 일은 일본에서가 아니라 호주에서의 경험이었다. 그곳에서 일본인 아티스트들과 공동으로 비디오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던 호주인 교수님과 일본 문화에 심취해서 일본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그곳에서 조연 연기자 생활까지 했다던 호주인 친구는 일본어까지 섞어 가며 일본 문화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한국의 문화도 좀 더 알려져서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 전에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문화가 무엇인지 좀 더 고민을 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하이서울 페스티벌 광고, 도대체 뭐 하자는 건지…]

최근 극장이나 지하철 방송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광고 동영상이 하나 있다. ‘하이서울 페스티벌’. 올해로 벌써 6회째라고 하는데 서울에 살면서도 그 6년간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자리를 비우고 있던 때가 많아 이런 행사가 있는지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나름 6회나 되었으면 여러모로 체계가 잡혀 있어야 할 텐데, 실제 행사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는 ‘글쎄……’라는 생각이 든다.

행사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된 것은 광고 동영상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광고가 전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물론 같이 있던 친구도 그것을 보고 난 반응은 ‘뭐~~야? 도대체 뭐 하자는 건지.’였다. 축제의 의도를 알기 힘들고, 영문을 선호하는 이상한 제목 때문에도 비판이 좀 있었다고 들었는데, 광고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축제의 정체를 알기 어렵다. 사람들이 나와서 그저 율동에 맞춰 춤을 추고 있을 뿐이다. 장기간에 걸쳐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상품의 티져 광고가 아니라 단기간 동안 이루어지는 행사인 이상, 행사가 누구를 대상으로 하고 무엇을 볼 수 있는지 정도는 알려줘야 하지 않나? 간호사와 여경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이 춤을 추는 므흣한 광경에 좋아할 사람들은 꽤 있었을 듯도 싶다만…

그 광고를 보니 왠지 이 역시 정치권이 만든 얄팍한 문화 상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 그래서 절대로 가보고 싶지 않다는 느낌만이 들었다. (실제는 그런 행사가 아니었다면 행사 관계자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잠재된 관객으로서 받은 인상은 그렇다는 것이다.) 선거만 시작되면 율동에만 신경 쓰고 개사한 노래들로 시끄럽게 신경을 거슬리는, 말로만 ‘매니페스토’지 정책은 없는 선거 유세와 춤만 있지 축제에 대한 정보는 없는 이 광고 동영상이 너무나도 닮지 않았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


포스터는 그나마 제 몫을 하는 것 같다. 실제로는 본 적이 없을 뿐.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남과 같음을 증명하기 – 덱스터

ru_happy 2008/05/05 11:27 Posted by ru_happy

[남과 같음을 증명하기 – 덱스터]

‘덱스터’는 범죄자들을 죽이는 연쇄살인범 덱스터의 이야기를 그리는 미드이다. 누군가는 ‘덱스터’를 보며 나쁜 놈이 더 나쁜 놈을 쫓는 이야기인 ‘추격자’를 떠 올릴 수도 있고, 누군가는 범죄자들을 처단하던 천재와 그를 잡으려는 천재의 두뇌싸움이 백미인 ‘데스노트’를 연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감정이 없는 주인공을 보며 ‘사이코패스’를 다룬 영화들과 비교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남과 다름’에 대한 이야기를 끄적여 보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덱스터는 덱스터의 ‘다름’을 알아챈 양아버지로부터 자신의 ‘다름’을 컨트롤하는 법을 배운다. 그 방법이라는 것은 바로 ‘~인 체 하는 것, 남들과 다름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감춰진 욕망을 분출할 수 있는 다른 배출구를 만들어 둔다. 덱스터의 오프닝은 이러한 주인공의 양면성을 정말 잘 살리고 있다. 면도, 요리, 식사 등과 같은 일상적인 행위 속에 담긴 충동을 피의 이미지로 연결지는 이 시퀀스는 이를 상당히 인상적으로, 그리고 정확히 대변한다.

정말로 끝내주는 목소리(개인적 취향 심히 들어감…)와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여자친구를 옆에 두고도 연애 감정을 꾸며내고, 또 다른 연쇄 살인범의 등장에 동질감을 느끼는 주인공의 모습은 얼핏 보면 전혀 이해되지 않는 일 같기도 하다.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여자친구와 함께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마음 속에 큰 울림을 남겼다. 아픔을 겪어 봤던 여자친구와, 내면의 공허함을 가진 주인공이 공통으로 가진 꿈은 바로 평범함이다. 그저 평균적으로, 큰 굴곡없이 남들과 같이 사는 것. 그건 너무 간단하지만 너무 어려운 꿈이다.

어릴 때는 나름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했고, 남들과 다른 사람들을 존경했고, 남들과 다르게 살려고 했었는데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할 때마다 계속 깎이어져만 간다. 그리고 결국은 남들과 다른 사람이 아닌 남들보다 못한 사람이 되어 간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남과 다르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경쟁 사회이다. 하지만 좀 더 깊은 내면을 이야기하자면 정말로 달라서는 안 되는 것 같다. 남과 다른 생각, 남과 다른 길을 택하면 모난 돌 취급만 받기가 쉽다. 남과 같은 길을 가고 남과 같음을 증명하되 남들보다 앞서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평범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길인가 하고 생각하니 씁쓸하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포비든킹덤에 관한 몇 가지 여담

ru_happy 2008/04/28 20:30 Posted by ru_happy

[포비든킹덤에 관한 몇 가지 여담]

성룡과 이연걸의 첫만남이라는 이슈에도 불구하고 극장에는 그렇게 많은 인파가 보이지는 않았다. 헐리우드 내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이 둘은 막강한 티켓파워를 가진 캐스팅이 아닌 듯하여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캐스팅을 제외하고 보면 패인은 너무 많은 관객들을 수용하려다 중심을 잃은 점일 것이다. ‘킬빌’처럼 무협 고전들을 오마주하기도 하고, 서양 사람들이 좋아하는 반지의 제왕 판타지의 뼈대와 특수효과를 가져다 쓰고, ‘가라데 키드’류의 소년 성장기까지 패키지로 묶었지만 킬빌처럼 아에 매니악하게 가지도 못하고, 너무 쉽게 풀려 버리는 저학년용 구성은 한계가 컸다. 하지만 이것저것 신경쓰지 않고 기분전환으로 보기에는 큰 무리 없는 영화이다. (개인적으로는 킬빌보다는 재미있었다. 킬빌이 걸작 대우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고전 작품에 대한 오마주에 열광하는 것은 매니아들에게나 해당되는 일이고, 파격이라고 해 봐야 서양에서 만들었다는 점이 그런 것이지 중국 무협 영화를 이미 봐 본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실 극장 보다는 TV가 더 친숙한 성룡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극장을 찾아가서 이 영화를 본 까닭은 바로 여기에 들어간 국산 CG때문이다. 한 동안 같은 길을 바라봤던 친구의 세계 데뷔를 확인하기 위해서... 모든 관객들이 다 나가고 직원이 눈치를 주었지만, 끝까지 크레딧을 지켜본 결과 그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녀석, 수고했다. 온라인 상에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포비든킹덤의 CG는 국내의 3개 CG전문회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공동제작을 한 것이다. 그래서, 개봉하기 전부터 어떤 퀄리티를 보여 줄 것인가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정작 포비든킹덤의 극장용 광고(티져)에서는 ‘나니아연대기, 툼레이더의 제작진’이라는 표현을 써서 마치 헐리우드 산 CG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마케팅 담당자들이 국산 CG가 들어간 것을 몰랐을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면 이것은 일부러 숨긴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든다. ‘디워’의 애국심 마케팅의 후유증 때문에? 국산이라고 하면 퀄리티가 낮아 보이고 헐리우드라고 하면 좋아 보일까봐? 어느 쪽이든 불신이 그 바탕에 있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 영화에서 짚어보고 싶은 점 또 하나는 스패로우라는 캐릭터이다. 골든 스왈로우 혹은 금연자(황금제비나 쇠제비 정도 되겠다. 제비 모양의 다트를 무기로 써서 붙여진 이름인듯)라는 고전 중국 영화의 캐릭터를 패러디했다는 골든 스패로우는 이 역을 맡은 유역비의 앳된 미모 때문에도 주목할 만 하지만 (중국의 국민 여동생이라고 한다. 그럴만하다. 유역비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한 내 개인적 평가도 많이 올라간듯… 쿨럭)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은 그녀의 대사이다. ‘스패로우라는 캐릭터가 따로 있나?’하고 처음에 착각했을 정도로 이 캐릭터는 ‘나’라는 주어를 쓰지 않고 대신 ‘스패로우’, 혹은 ‘She’라는 주어를 사용한다. 번역된 한글 자막은 ‘she’도 ‘스패로우’로 바꾸어서 ‘스패로우는 OOO해요.’같은 사오리 어법을 나타내고 있다. ‘미녀들의 수다’들의 인기 패널인 사오리는 ‘나는’ 이라는 말 대신 ‘사오리는’이라고 말하는 독특한 어법으로 유명한데 이는 자신을 ‘나’라고 부르지 못하는 일본 여성의 낮춤식 어법을 그대로 번역해서 생긴 습관이라는 설이 있었다. 스패로우의 사오리 어법을 들으면서 중국에도 그런 차별적인 어법이 있고, 그것을 영어로 직역하다 보니 저런 어색한 대사가 나온 건가 (“유감이에요. 안 됐군요.”가 “I am sorry”가 아니라 “She’s sorry.”라니 황당하기까지 했다.) 하는 추측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주인공 덕분에 복수를 마쳤으나 죽음을 눈앞에 둔 스패로우의 대사는 “I… Thank you.”였다. 그것을 듣고 나니, 막판에 와서야 ‘she’가 아닌 ‘I’가 된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고, 앞의 대사들 역시 실수였던 것이 아니라 의도된 대사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부모에 대한 복수만을 바라보느라 자신의 삶을 살 수 없었던 스패로우는 ‘나’라는 주체가 아닌 3인칭의 대상물일 수 밖에 없었고, 복수를 끝마치고 나서 자유로워진 스패로우는 비로소 ‘나’가 되었으리라… 자막을 무심코 읽어서는 눈치채지 못했을 중요한 메시지이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BLOG main image
lifesavers
예술을 통한 삶의 구원
by alright

공지사항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77)
Lifesavers (16)
김민 (30)
응삼 (5)
편의점 (18)
alright (30)
bonbon (18)
elefant (2)
juerno (26)
ru_happy (30)
heyparty (2)
Guest (0)

달력

«   2008/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294817
  • 094
textcubeget rss

lifesavers

alright'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atter & Media
Copyright by alright [ http://lifesavers.tistory.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atter & Media DesignMyse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