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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원스(Once)

아마 본 얼티메이텀을 볼 때였을 겁니다. 예고편으로 정말 거친 화면의 영화 한편이 소개되었습니다. 원스. 저는 희한하게도 정제되지 않은 거친 화면, 별 내용 없지만 일상을 정말 리얼하게 담은 영화들이 참 좋습니다. 여자친구와 헤어진지도 1년이 훌쩍 넘어버렸고 그 동안 로맨스 영화를 극장에서 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지만 원스 만큼은 꼭 극장에서 보고 싶더군요. 선댄스 영화제 출신이라는 직함도 마음에 들었구요. 선댄스 영화제 출신의 영화는 저를 실망시킨적이 없었거든요. 그렇지만 원스는 언제 극장에 걸렸었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사라지더군요. 백방으로 알아보고 다녔지만 대구에서는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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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시험칠 일이 있어서 서울에 가게 되었는데 지겨운 기차 안에서 읽을거리로 필름 2.0을 샀지요. 짧은 단신으로 원스가 슬리퍼 히트작이라며 소개하면서 재개봉관을 알려주는데 당당하게도 대구 동성아트홀이 올라와 있더군요. 11월 1일. 정말 오랜만에 혼자 영화를 보았습니다. 완전 기대하던 원스를 말이죠.

동성아트홀은 국내 최초의 무삭제 제한등급 상영관이었습니다. 1992년부터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탈바꿈했죠. 탈바꿈이라 해봐야 이름 뿐이고 상영관은 그대로입니다. 의자에 앉은지 5분만에 허리가 아파오더군요. 요즘은 참 영화보기 좋구나라는 생각이 새삼들었습니다.

잡설이 길었네요. 영화 원스는 대부분 사람들이 아시다시피 아일랜드 음악 영화입니다. 음악 영화다 보니 영화를 이끌어가는 건 이야기라기 보다는 음악입니다.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길거리에서 노래부르는 남자와 체코에서 왜 아일랜드로 넘어왔는지 불분명한 여자가 길거리에서 만납니다. 여자는 노래에 반하고 남자는 여자의 독특한 관심에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밥을 먹으며 음악 이야기를 나누다 둘은 피아노를 치러가죠. 피아노를 치는 여자를 본 남자는 즉석에서 악보를 줍니다. 코드를 알려주고 기타와 피아노만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여자는 즉흥적으로 알토 화음을 넣기 시작합니다. Falling Slowly.



이렇게 즉흥적으로 음악을 만들어 가는 것은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지만 직접 참여하고 있을 때에 더욱 즐겁습니다. 교회에서 가끔 여러 사람들과 즉흥적으로 연주를 하고 소리를 맞추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션, 보컬, 화음 등이 전부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직접 참여해 본 사람만이 그 즐거움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과정 하나하나를 보는 듯한 세밀함 덕분에 이 순간 남자와 여자의 즐거움에 더욱 공감하게 되더군요. 또한 허슬&플로우에서 녹음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즉흥적으로 투입된 보컬과 음악들. 조화로운 소리를 듣는, 그것도 즉흥적으로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일은 무척 짜릿합니다.

이렇게 만남을 가지던 그들은 더욱 가까워집니다. 남자가 실수를 하지만 진심어린 사과로 화해하고 음악을 통해 더욱 가까워집니다. 남자와 여자는 가까워졌지만 영화는 그 관계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음악의 요소를 하나하나 짚어가려 합니다. 첫 만남에서 화음을 보여주었다면 이번에는 작사입니다. 남자의 곡에 여자는 가사를 붙이고 남자 또한 자신의 집에서 자신의 곡에 가사를 붙입니다. 배터리를 사 CD플레이어를 살리고, 집으로 걸어오며 노래하는 여자를 잡은 롱테이크는 제가 느낀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습니다. 물론 남자의 작사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가까워지지만 다른 곳을 바라볼 수 밖에 없으니까요. 여자의 If You Want Me. 남자의 Lies.

 



화음, 즉 팀이 있고 곡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보여줄 것은 레코딩이지요. 남자는 큰 결심을 합니다. 큰 결심에는 돈이 들게 마련이지요. 이러한 일련의 과정 또한 매우 우연적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우연에 '이건 말도 안돼.'라고 토를 달 수가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에게 충분히 공감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어떻게든 음악을 듣고 싶으니까 말이죠. 게다가 그러한 우연이 무척 코믹하게 그려져 우연으로 인한 반감을 상쇄시켜줍니다.



영화 원스를 뮤직비디오 같다라고 표현하는 글을 많이 보았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뮤직비디오라고 하기엔 많이 아쉬운 감이 있습니다. 비록 영화의 내러티브보다는 음악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사실이지만 단절되는 이야기와 남녀관계를 매우 '쿨'한 시각으로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거친 화면이지만 리얼한 이야기, 쿨한 시각, 감각적인 음악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 영화가 인기를 얻는 비결인듯 하네요. 현실적인 주인공의 모습 속에서 관객은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은 하지 못했던 표현을 감각적인 음악에 실어 보여주는 남녀 주인공을 통해 관객은 대리만족을 느끼게 됩니다.

오랜만에 혼자 영화를 보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영화에 너무 몰입했기 때문일까요? 1년 이상을 혼자 지냈지만 아무렇지 않았는데 정말 오랜만에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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