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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을 세 개씩 가진 사람들

호주의 대학에서 공부하던 때의 일이다. 친하게 지내던 홍콩 친구가 있었는데, 한국에 관심이 많던 그 친구는 직접 만나서든 메신저를 통해서든 항상 먼저 말을 걸어오곤 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전화로는 먼저 연락을 하는 경우가 없고, 문자를 보내도 답을 잘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하루는 그 이유에 대해 물어봤더니 특이한 대답을 들을 수가 있었다. “너는 ooo 통신사가 아니잖아!”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 또 한 사람은 호주의 다른 도시에 거주하고 있던 한국 친구였다. 휴대폰을 개설하고 바로 전화를 걸었더니, 친구가 “너 어디 통신사야?”라고 물어왔다. 대답을 해 주었더니 친구는 다른 번호를 알려 주며 앞으로는 그 번호로 연락을 하라는 것이었다. “응? 너 휴대폰 두 개야?”라는 물음에 친구의 답은 “아니 세 개.”였다. 나는 자연히 ‘어? 이 친구가 그렇게 사치를 부리던 사람이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친구들에게서 위와 같은 답이 나오게 된 것은 사실 호주의 휴대폰 시스템 때문이다. 호주에는 우리와 같은 요금제 외에 단기 체류자들이 주로 쓰는 선불 요금제가 있다. 이를 이용하려면 하나의 전화번호와 일정 금액의 정보가 담긴 심카드를 구매해서 아무 휴대폰에 장착하기만 하면 되고, 금액을 다 쓰면 충전용 카드를 구매해서 그 번호를 입력해 주면 된다. 문제는 통신 요금이 꽤 비싸서 이 금액이 금방 소진된다는 점이다. 요금제에 따라 다르기는 하나, 분당 500원 이상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같은 통신사끼리는 무료통화, 할인 통화, 무료문자 등의 서비스가 많이 제공되어 큰 차이가 난다. 같은 통신사였다면 한 달을 통화할 비용이 다른 통신사와는 며칠이면 날아가 버리니, 첫 번째 친구처럼 통화를 피하고 싶어 하는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호주의 휴대폰 시스템이 우리와 다른 점 또 하나는 구형 휴대폰이 매우 흔하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에는 삼성, LG의 최신 휴대폰 광고가 등장하지만, 매장에 가보면 조그만 화면에 글자도 90년대 호출기에서나 봤을 법한 전자식 글자가 입력되는 저가의 모토로라, 노키아 휴대폰들도 함께 진열되어 있다. 그래서 통화를 많이 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한 통신사의 휴대폰을 쓰면서 타 통신사 휴대폰과의 통화로 비싼 요금을 내느니, 다른 통신사의 싼 휴대폰을 추가로 가지고 있는 것이 비용이 더 싸더라는 계산이 나온다. 호주에는 이런 이유로 두세 개씩의 휴대폰을 가진 사람이 꽤 많다고 한다.

‘세 개의 휴대폰.’ 처음에는 사치라는 오해도 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재밌는 일로 여기게 되었지만, 결국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 그 곳 사람들이 만들어 낸 생활 방식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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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잡지 '행복한 동행' 기고글 (세 개의 휴대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