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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수수 파는 선생님

[지구 반대쪽에는] 사탕수수 파는 선생님

거대하고 신비한 사원 앙코르와트로 잘 알려진 캄보디아는 열대지방에 위치하고 있어 무척 덥다. 게다가 나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이 불볕더위를 이겨 내야 하는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캄보디아에서는 길거리에서 사탕수수를 갈아서 만든 즙에 얼음을 넣어 팔곤 하는데, 무척 달고 시원해 더울 때 사탕수수 주스 한 잔이면 잠시나마 더위가 가신다. 게다가 가격도 우리나라 돈으로 250원 정도로 아주 싸서 자주 사먹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사탕수수 주스 파는 아저씨가 집 앞 골목길을 지나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심한 더위에 현기증 증세까지 나타나던 그 순간 사탕수수 주스 장수가 집 근처에 도착했다. 부리나케 돈을 가지고 달려갔다. 사막 속 오아시스와 같았던 시원한 사탕수수 주스를 한 모금 마시고 돈을 내려는 순간, 왠지 낯이 익었다.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니 집 앞 초등학교 선생님이 아닌가! 오전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오후에는 학교 앞에서 사탕수수를 팔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선생님 말고도 많은 선생님들이 이른바 ‘투잡족’이었다. 캄보디아에서는 법적으로 겸직에 대한 규제가 없기 때문에 선생님뿐만 아니라 공무원들도 두세 개의 직업을 가진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젊고 똑똑한 선생님들은 낮 동안은 학교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영어 과외를 한다. 반면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거나 집안 대대로 해 오던 일이 있는 선생님들은 학교 앞에서 사탕수수를 팔거나, 시장에서 옷 파는 일을 부업으로 삼고 있었다. 사정을 들어 보니 30~40달러밖에 안 되는 교사 월급만으로는 생계를 꾸려나가기 어렵기 때문에 나오는 고육지책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선생님이 길거리에 나와 장사를 한다면 어떨까? 아무리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는 해도,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 어색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캄보디아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과 길거리에서 장사하는 일을 다르게 여기지 않았다. 또 사람들도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는 선생님을 무시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직업의 귀하고 천함을 따지지 않고 주어진 일이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며, 또 그것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그네들의 문화가 살짝 부러웠다.


- 『행복한동행』 2009년 9월호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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