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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erno

아기와 나, 마리모 라가와.

지금은 거의 펜을 들지 않지만, 저도 철 없던 중고등학교 시절엔 만화가가 되겠다고 동아리 활동이니 코믹 마켓이니 ACA니 하며 만화라는 매체에 이 한몸 불태운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제 스스로 제가 그렸던 만화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기와 나'라는 만화에 참 많은 영향을 받았었구나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로 올라가는 겨울에 한 친구랑 헌책방에 가서 아기와 나가 실려있는 순정 월간지인 '터치'를 구입하고 함께 책을 보며 '내가 윤진(아기와 나의 '완벽하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설정의' 주인공)이랑 닮았네.', '아니네, 내가 더 닮았네.'하며 말싸움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로 돌아가서 그 초딩들에게 하이킥을 먹여주고 싶군요. 아무튼.

  아기와 나에는 스토리적인 측면에서 제가 그리고 싶었던 만화의 모든 요소가 담겨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일상의 묘사', '인위적이지 않은 감동', '밝은 웃음', '비폭력', '드러내지않는 깨달음' 등 입니다.
 

  만화는 총 18권으로 완결되었습니다.(완전판은 15권.) 대부분 에피소드 형식으로 되어 있고 가끔씩 3-4회에 걸쳐 이야기가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많은 에피소드 가운데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13권을 거의 통채로 차지하다시피한 '아빠와 엄마의 연애 이야기'입니다.

  원래 이야기가 엄마의 죽음으로 시작되므로 작품에서 그녀는 회상장면으로만 등장합니다. 사실 그녀는 매우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순수하며 남을 배려할 줄 알고, 독립심도 있습니다. 그녀는 고아인데 숙모집에서 자라다가 괴롭힘을 못견뎌서 가출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사건을 거쳐 '아빠'와 동거를 하게 됩니다. 그 둘은 순수한 의미의 '가정부-고용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주위사람들의 눈길은 당연히 그렇지않습니다. 뭐, 제가 봐도 동거입니다만. 그리고 다시 크고 작은 우여곡절을 거쳐 둘은 결국 결혼에 골~인. 특히 그 둘이 맺어지게 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인물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데 그 인물은 최종회에서 다시 등장한답니다.

  예전에 리뷰했던 카미조 아츠시를 '순정 만화처럼 그리는 남자 만화가'로 꼽는다면, 마리모 라가와는 '명랑만화를 그리는 여성 만화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본좌는 다카하시 루미코 여사.) 마리모씨의 만화에는 동성애를 다룬 만화중 최고라고 꼽히는 '뉴욕 뉴욕', 최근작인 테니스 만화 '저스트 고 고'등이 있습니다. 사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언제나 상쾌한 기분'이라는 만화인데 구할 길이 없더군요. 이것은 근친의 내용이 살짝 담겨있는 유쾌한 분위기의 만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