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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걸즈>와 <미녀는 괴로워>

<드림걸즈>와 <미녀는 괴로워>는 닮은 꼴 영화다. 둘 다 음악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형식적으로도 (어느 정도) 닮았고, 외모의 잘나고 못남이 중요한 갈등의 요인이라는 점도 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영화는 다르게 전개되어 다르게 끝난다. 물론 <드림걸즈>도 한계가 많은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 판단을 하자면, <드림걸즈>는 그것이 위선이라 할지라도 긍정적인 결말을 보여주었고, <미녀는 괴로워>는 좀 더 솔직했지만, 무책임했던 영화라고 생각한다.

내가 두 영화에서 눈여겨 본 것은, 남자 주인공들의 역할이었다. 각각 제이미 폭스와 주진모가 분한 <드림걸즈>의 커티스와 <미녀는 괴로워>의 한상준은 본질적으로 같은 인물이다. 둘 다 음악을, 더 나아가 그 안에서 노래하는 사람조차 상품이라고 생각하는 철저한 사업가기질을 타고난 남자들이다. 곧, 두 남자는 두 영화를 지배하는 세계를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두 영화에서 그들은 서로 다르게 묘사되며 다른 결말을 맞는데, 나는 그것이 두 영화의 큰 차이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드림걸즈>의 커티스는 결말에 가서는 마치 '악마'처럼 묘사된다. 인간을 상품가치로 판단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안간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에피의 비극은 따지고 보면 그 뿐만 아니라 에피 이외의 모든 등장인물들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모두 커티스가 모두 뒤집어 쓰고 혼자 버림받는다. 이에 반해, <미녀는 괴로워>의 한상준은 한나를 그 지경으로 비참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서는 책임에서 자유롭다. 영화는 모든 책임을 한나가 지게 하고, 마지막에는 추하게(그러나 예쁘게) 울며 사람들 앞에 용서를 빌게 한다.

<드림걸즈>의 결말이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영화가 커티스를 버림으로써 그가 대변하는 비인간적인, 인간의 희생을 강요하는 세계를 확실히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 세계를 부정하며 인간을 그들이 지어야 할 모든 책임으로부터 해방시키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정한 세계를 대신할 더 나은 세계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이고 그 세계는 인간이 만들어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미녀는 괴로워>는 한상준에게 책임을 묻지도 않으며, 세계에 대한 부정도 없다. 단지, 세계에 종속될 수 밖에 없었던 나약한 한나에게 모든 책임을 묻고, 도리어 그것을 그녀가 속한 세계에 용서 받게 만든다. 모든 것은 인간의 잘못이며 세계는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살짝살짝 건들이던 모순된 세계에 대한 비판도 별 의미가 없는 것이며 결국 세계가 어떻든간에, 인간은 순종하고 살아야 한다는 건인가.

<드림걸즈>가 훌륭한 영화라는 것이 아니라, <미녀는 괴로워>가 개념이 없다는 것이다. 별 거 아닌 영화에 왠 오바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별 거 아닌 영화라서, 그냥 쉽게 즐기고 마는 영화라서 <미녀는 괴로워>의 결말이 더 위험하게 느껴진다. 더군다나, 외모와 성형에 관한 문제가 별 거 아닌 것도 아니지 않은가. 표현의 자유라면할 말은 없지만, 대중영화라면 단순히 주목거리만을 만들기에 앞서 영화가 보여주는 현실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녀는 괴로워>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그런 영화가 관객 600만을 돌파했다. 그리고 대종상은 <미녀는 괴로워>를 떡하니 작품상 후보에 올려 놓고 김아중에게 여우주연상까지 안겨준다. 정말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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