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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같이 일하는 아가씨가 조부상을 당해 문상을 다녀왔다. 항상 내게 상냥했던 그녀가 보고 싶어서 큰 맘 먹고 먼길을 갔다. 초췌한 모습이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상냥하고 예뻤다. 늦으막 도착한 우리 곁에 앉아,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녀가 무척이나 좋아했던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 찾은 마지막 방문길의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 한 구석이 뜨거워졌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나 서러움 때문이 아니라, 죽어서도 이어 지는 초월적인 관계에 대한 알 수 없는 애틋함 때문이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인간의 인생에 대한 묘한 깨달음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주말에 본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는 인생의 찰나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죽음으로 시작해 생명의.. 더보기
Smalltown Boy(스몰타운보이/Bronski Beat) 귓가에 계속 맴도는 노래다. 중독성 강한 비트와 고음 창법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노래의 제목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자못 쓸쓸하니, 참 매력적이다. 'Smalltown Boy'는 '작은 마을에 사는 소년'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남들과 달랐기에 동네 사람들의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었는데, 다이빙 선수에게 마음을 고백했다가 동네 사람들에게 늘씬 두들겨 맞고는 새벽 기차를 타고 마을을 떠나게 된다. '쌍화점'같은 영화가 버젓이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는 요즘같은 세상에, 'Smalltown Boy'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동성애를 소재로 한 흔하디 흔한 성장 스토리 정도로 여기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득 이 이야기가 더 슬프게 느껴지는 건 노래의 가사에도 나오듯, 소년이 찾고 있는 해답이 '가장 가까워야 할 사.. 더보기
<Ugly Betty> 베티, 그녀의 정의 세번째 시즌의 키워드는 Repositioning이다.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나 관계에 대한 리포지셔닝이 주로 진행되고 있는데, 이를 테면, 그렇게 차가웠던 윌레미나의 인간적인 면을 재조명한다거나, 베티와 마크, 베티와 아만다가 새로운 프랜드십을 형성하는, 이전 시즌에서는 감히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던 캐릭터의 입체화, 관계의 재구성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펼쳐 진다. 베티는 여전하다. 여전히 선하고, 여전히 용감하다. 불의에 무릅쓰고, 정의를 위해 자기가 가진 것을 포기할 줄 아는 씩씩한 여장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번째 시즌에 들어 가장 짜증나는 캐릭터를 고르라면, 실은 베티다. 100% 신뢰할 수 밖에 없었던 첫번째, 두번째 시즌의 베티가 왜 이렇게 비현실적이다 못해, 짜증나는 캐릭터가 되버렸는지. .. 더보기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와 선택의 문제 일본 에니메이션 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네기시'라는 주인공이 도쿄로 상경해 데스메탈 그룹 'DMC(디트로이트 메탈 시티)'의 리드 싱어 '클라우저'가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네기시'의 고민은, 쉽게 말하면 To-be와 As-is 사이의 극단적인 변위 때문인데, 매일밤 악마의 화신 '클라우저'로 변신하는 '네기시'가 진정으로 꿈꾸는 음악은 데스메탈은 웬 걸, 부드럽고 귀여운 멜로우 사운드, 스윗팝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나는 '네기시'의 고민을 이중적인 자아 정체성에 대한 혼란으로 이해했었다. 사람들의 조소를 사는 그의 스윗팝에 비해, 그의 데스메탈은 여기 저기서 그 천재성을 인정받고,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그의 '악마적인' 한마디 한마디가 DMC의 팬들에게는 마치 성서의 한구절처럼 여겨지는 .. 더보기
<미쓰홍당무>, 그녀의 문제 1. 는 양미숙의 새빨간 얼굴처럼 뜨거운 이야기의 영화다. 사실 그녀의 속사정, 그자체는 그닥 새로운 이야기거리는 아니지만, '무엇'보다는 '어떻게'가 중요한 법, 미스홍당무는 제법 징글징글한 새로운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내가 내가 아니었으면,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을 거면서" "난 내가 너무 부끄러워" 그녀에게 100% 공감하건 공감하지 않건 상관없다. 터질 것 같은 그녀의 감정은 제멋대로 관객들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가는 깊숙이 파고든다. 그렇게 무례하게 자기 얘기만 두서없이 늘어 놓고 그녀는 먼지 툴툴 털고 웃으며 사라져 버린다. 정말 그렇다. 부끄러운 마음, 수치스러운 마음에는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다.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의 나 자신이 이유라면 이유인데다, 시뻘건 불꽃처럼 솟아올랐다가, .. 더보기
<Weeds>, '삶'이라는 이름의 마약 미드 는 소개하기도 살짝 민망하리만치 막장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하루하루 일상에 마취되어 사는 내 모습을 돌아 보자면 야 말로 현대인의 삶을 꿰뚫는 그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드라마라는 생각이 든다. 삶은 강한 중독성으로 인간을 마비시킨다. 안정된 체제 내의 미리 규정되어 시간 안에서 대부분 사람들이 가질 법한 같은 목표를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삶이야 말로 이 세상의 어느 마약보다도 강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는 ‘마약’이라 사실을 부정하기 힘들다. 늦은 일요일 오후, 창틀에 머리를 찌어가며, 내가 이런 바보가 아니었는데. 라며 후회해 봤자 이미 월요일은 다시 오고, 이렇다 할 흥분이나 쾌감 없이 그냥 그저 그렇게 한 달을 때우고 나면 월급이 나오게 프로그램되어 있는 것이 일상적인 현대인의 ‘.. 더보기
놈놈놈... 최근 개봉한 ‘놈놈놈’이 흥행일로를 달리고 있다. 추격자의 관객동원도 뛰어 넘었다고 하니, 오랜만에 한국산 블록버스터가 한국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는 듯, 무조건 기분 좋은 일인 것처럼 부산스러운 것 같다. ‘놈놈놈’을 보고, 성질이 났던 건 아마 나뿐 인가 보다. 아니, 나랑 같이 영화를 봤던 외국인 뿐이었나 보다. 오랫동안 기대했던 영화를 보고 나오며 정말 괘씸한 느낌이 들었던 건 ‘인디아나 존스’보다 차라리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진 않았다. 뭐 이런. 대부분 ‘놈놈놈’의 느슨한 네러티브 구성은 인정하는 분위기다. 그래도 최초의 본격 국산 서부극의 시도, 그리고 김지운 감독의 세련된 비주얼 감각은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뭐, 그건 좋다. 그러나, 아무리 용기 있는 시도였다 할지라도, 땟..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