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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박정현과 씨디 플레이어 엠피삼이 없던 시절, 나의 가장 큰 보물 중의 하나는 파나아소닉에서 나온 휴대용 씨디 플레이어였다. 그 때도 거금이었던 13만원이라는 돈을 주고 대구 교동 시장에서 샀던 이 물건 때문에, 나는 그제서야 씨디를 하나씩 사기 시작한다. 남들은 씨디를 처음 들을 때의 그 깔끔한 소리에 거부감을 느꼈다더라만, 나로서는 그저 놀랍고 신기하만 했다. 다만, 씨디를 많이 사 모을 형편이 되지는 못해서 10장도 안되는 씨디를 하루에 한 개씩 번갈아가면서 들어야만 했다. 박정현의 경우는 사실 씨디를 갖고 있지 못해서, 테이프인가 씨디인가를 빌려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누구에게 빌렸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만.. 10대 후반에 닳고 닳도록 듣던 박정현의 1집은 내가 너무 많이 들어서인지 원래가 좋은 노래들이 많아서인지는 .. 더보기
음악여행 라라라 #001 - 이승열의 전심(全心)마사지 (20081126) 집에 TV가 없어서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나는 라디오 스타 4인방에 대해서 묘한 호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하는 말장난은 내용만 놓고 봤을 때는 잡담이지만, 다채로운 배경을 갖고 있는 그들의 과거를 고려해보면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같이 느껴져서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고교시절 즐겨듣던 음반의 주인공이 줏어먹는 개그를 하거나, 낄낄거리며 듣던 욕 방송의 진행자가 땀을 뻘뻘 흘리며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거나, 깐죽거리는 신정환과 어리버리하지만 왠지 마음이 따뜻해보이는 김국진까지. 넋놓고 입벌리고 보면서 즐기기만 하는 무언가에 익숙하지 않는 나로서는 보면서도 마음이 쓰이고 불편한 이들에게 오히려 정이 간다. 그런 그들이 별안간 대박을 하나 쳤다. 나는 그들이 음악 쇼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이게 뭔 소린.. 더보기
분화구 (심심해서 써 봤던 시시껄렁한 소설이니 널리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1. 세계에서 몇 번째로 크다고 한국어로까지 친절하게 자랑하고 있는 아소산의 분화구는 사실 대단한 장관은 아니었다. 뭐 내 생전 활화산의 분화구를 본 적이 없으니,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좀 가소로울 수는 있다. 하지만 HD TV로 본 남태평양 어딘가의 화산처럼 뻘건 용암이 튀어오르는 것도 아니고, 매캐한 연기만 내뿜는 그 시시한 분화구에서 어쩌다가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버렸는지. 분화구는 넓었고, 마치 목장의 그것처럼 나무울타리가 둘러쳐져 있었지만, 그 너머가 가파른 절벽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분화구 중심을 원점으로 하는 나이테와 같은 색색 지층의 동심원이 부드럽게 넓어지다 내 발 언저리까지 이르러 있었을 뿐이다. 외향적인 서.. 더보기
Preview: 생각의 탄생 - 최악의 과학자, 최악의 예술가 "최악의 과학자는 예술가가 아닌 과학자이며, 최악의 예술가는 과학자가 아닌 예술가이다." 물리학자 아르망 트루소 (생각의 탄생에서 발췌) 모든 화가는 대상을 정밀하게 모사하는 것에서부터 미술을 시작한다. 예민한 관찰력, 공간-색채에 대한 지각능력이 없으면 그의 예술적 목표가 캔버스에 둥근 점하나를 찍는 식의 추상적인 것이라도 좋은 화가가 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뮤지션은 뇌 속에서 발생한 주파수영역의 패턴(화음)과 시간영역의 패턴(리듬)을 악기를 통해 구체화한다. 그의 목표가 5분간의 침묵과 그로 인해 두드러지는 관객의 숨소리 등으로 이루어진 모호한 예술이라고 할지라도, 시간과 주파수 양 영역의 수학적 패턴을 사고하지 못한다면 좋은 뮤지션이 될 수 없다. 또한, 종종 오감의 영역을 넘어선 추상적이고 관념.. 더보기
Water From the Same Source - Rachel's 같은 곳에서 시작된 물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산속 깊은 계곡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줄기, 벌써 작은 폭포를 만들어낸 녀석들, 물장구치는 아이들의 정강이를 감싸고 도는 시내, 농부의 밭에 들렸다가 금새 큰 강에 이르른 물줄기. 각각의 물은 마치 분할된 화면에서 동시에 재생되는 옴니버스 영화처럼, 동일한 시간에 서로 다른 공간을 묘사하는 섬세한 악기의 떨림으로 모사된다. 각각의 악기는 서로 다른 물줄기의 시간적 흐름을 대변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6박자라는 경쾌한 리듬과 복잡하지 않은 화음 진행을 기반으로 같은 근원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끝까지 잃지 않고 유기적이다. 각각의 악기가 표현하는 시간적인 흐름은, 물이 흘러 바다로 가기까지 겪는 변화무쌍한 이벤트를 시의적절하게 표현해주고 있지만, 그것은 .. 더보기
집에서 즐기는 CD 음질의 노래방 - UC씽 (기술에 대해 조금 오해를 하고 있어서, 내용을 일부 수정했음.) 1. 현황 UC씽이라는 서비스가 시작되었는데, 굉장히 고무적이다. 노래방의 열악한 반주 음질에 싫증이 난 대부분의 대중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는 고음질의 반주 서비스가 시작된 것이다. 이제 누구나 가수들이 부르는 것과 비슷한 음질의 MR을 반주로 깔고 노래 실력을 뽐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그간 음악 신호에서 보컬 소리만을 분리해 내는 기술은 많이 개발되어 왔고, 예를 들어 Adobe Audition 같은데 들어있는 부가기능만 보아도 성능이 많이 좋은 게 사실이다. 이 서비스는 보컬 음향을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지능적으로 지워 주는 기술만으로(즉 수작업 없이) 이루어진 것은 아닌 것 같지만, 음원의 양을 보아 나름대로의 자동화된 툴을 .. 더보기
Brandi Carlile - The Story 작년 Calling All Angels 라이브로 나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이끌어내 주었던 Brandi Carlile의 노래를 새삼 들어보니 너무나도 좋다. 어쿠스틱하면서도 패기를 잃지 않고 있는 사운드가 무엇보다 좋고, 맑고 고운 목소리는 아니지만 감정이 풍부한 보컬 음색이 훌륭하다. 늘 같이 연주하는 것 같은 쌍둥이 뮤지션들도 멋있다. 유투부 동영상 밑에 댓글을 보니 그녀가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악플을 다는 개새끼들이 있던데, 악플에 악플로 응수하고 싶었으나 영어가 짧아서 관뒀다. 아래 노래는 미드 그레이즈 아나토미에서 발췌된 장면들로 프로모션 비디오를 만들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The Story라는 싱글의 라이브입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