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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얼음과 불의 노래

이 판타지 소설은 사실, 깊이 있게 생각해볼 만한 주제는 없는 편이다.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문학적 감수성이 부족하고, 독자의 가치관을 뒤집어 놓을 정도로 거창한 사상 역시 부족하다. 그런데, 이 성경책보다 두꺼운(일단 기동성 면에서 낙제점인) 책을 여섯권이나 사서 본 이유는 단지 재밌어서, 였다. 나는 이 책을 앞서 말한 것과 비슷한 이유들(문학적 감수성 부족, 주제의식 부족) 때문에 반지의 제왕과 비교하고 싶지만, 그 점을 떠나서, 재미만 놓고 봤을 때는 반지의 제왕을 앞선다.

이 긴 미국 판타지 소설은, 삼국지 류의 대하 서사시 정도나 되어야 느낄 수 있는 웅장함과 비장함, 스케일적인 측면에서의 감동을 고스란히 살리고 있다. 게다가 작가가 가진 발군의 스토리텔링 능력(치고 빠지는 식의)은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긴 이야기에 무리없이 몰입되게 해준다. 게다가 등장하는 캐릭터의 면면은 티라미스 케익의 잘린 단면처럼 겹겹이 쌓인 번뇌와 이유, 감정들로 인해 마치 한 사람을 해부하여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당연한 얘기지만 절대 악인도, 절대 선인도 없다. 끊임없이 남의 것과 충돌하는 자신의 욕망과 꿈을 향해 치열하게 달리는 사람들만 있을 뿐.

아쉬운 점은, 대귀족 간의 암투와 중상모략으로 점철된 권력 싸움의 소용돌이만 되풀이될 뿐, 그 아래서 실제 전쟁을 수행하는 시다바리 인생들에 대한 묘사가 없다는 것이다. 이 소설이 중세에 나온 소설이라면 뭐, 시대적인 이유로 눈감아줄 수 있는 부분이지만, 자본주의가 새로운 사회 계급화를 촉진하고 있는 현시대에 글을 쓰는 작가라면, 약간은 감안을 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고로, 베스트 주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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