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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이상한 계절 - 못


Close (2집 타이틀)


기다리던 앨범이 콤보로 출시된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기다렸다는 말은, 자주 가는 음반 쇼핑몰을 들릴 때마다 뭐 새로 나온게 없나, 하고 기웃거리던 뮤지션들의 새 앨범들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2004년, 못(MOT)의 첫번째 앨범, 비선형(Non-linear)가 발매되었을 때, 우연히 그 음악을 접했던 나는, 외이도의 솜털 하나하나를 곤두세워가며 그들의 음악을 경청했다. 멜로디와 가사는 음울했고, 읊조리는 보컬은 눅진눅진했다. 마음 움직이는, 그대로 흘려 받은 듯한 화음들은 들으면 들을 수록 정밀한 기계장치의 부품처럼 아귀가 맞아들어가는 계산된 것들이었다. 앨범 하나 안에서 온갖 실험이라는 실험은 다 하고 있으면서도,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절절한 진정성이 있는 명작이었던 것이다. 21세기에 대한민국에서 나온 앨범들 중에서, 적어도 내가 들어본 것들 중에는 아직 이렇게 충격적이었던 음반은 없었다.

공학에서 비선형은 말 그대로 선형이 아니라는 뜻이다. 선형이 아니라는 것은,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말과도 같다. 다만, 비선형적인 방식으로 예측할 수는 있되, 그것이 맞다는 보장은 누구도 할 수 없다. 또는, 복잡해보이는 현상이지만 그것을 관통하는 비선형의 방식을 찾아내기만 하면 그 현상을 쉽게 통찰할 수 있기도 하다. 공학도 출신인 이들의 눈에는 세상사가 비선형 방식으로 풀어야 할 문제로 보였던 듯 하다. 내 입장에서는 이들의 음악 자체가 비선형이다. 선형으로 쉽게 예측이 불가능하지만, 이 복잡 미묘한 음악을 가만히 듣다 보면 마치 비선형인 듯한 어떤 규칙이 드러나는 것도 같았다.

그랬던 그들이 3년만에 2집, 이상한 계절을 발매했다. 역시 쉽게 와닿는 곡들은 하나도 없으며, 오히려 프로그래밍에 의존했던 드럼 루프가 좀더 복잡다단해지고 심지어 인더스트리얼 넘버를 듣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들의 1집은 좋은 평을 받았지만, 말랑말랑하거나 통통 튀거나 흔들어주는 음악을 다운받아 듣는 대한민국의 대중에게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정도의 음악성을 가진 자들이 대중의 귀에 쏘옥 들어와 박히는 음악을 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터.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더 용감해졌고, 더 거칠어졌다. 나는 그들의 2집을 쌍수를 들며 환영하고, 역시나 온 신경을 곤두세워 즐겁게 들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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