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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인간실격 - 다자이 오사무

다섯 번의 자살 시도를 결국 성공시켜 마흔이 되지 않은 나이에 요절한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인 듯한) 소설 인간 실격은, 전형적으로 기분을 잡치게 하는 어두침침한 소설이다. 제국주의 팽창기의 일본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지만, 실제로 그것 때문에 소외받고 상처받는 개인상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여기서부터 이 소설은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 작품은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보다 더 과격하고 논쟁적이며 거친데다, 연민하기 어려운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독자 입장에서 나는 그를 용서하고 싶었으나, 상실의 시대에서의 와타나베와 같은 독자를 대리해주는 캐릭터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몸을 던졌던 어느 강바닥에서, 다자이 오사무는 팔짱을 끼고 낄낄거리며 독자에게 던진 수수께끼를 즐기고 있을 것만 같아, 책을 읽는 내내 좀이 쑤시고 약이 올랐다.

극 중 화자인 요조는 날 때부터 특이한 인간이었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흥미가 없었고 무감했다. 명랑한 천성으로 내부의 모순을 제법 위장할 줄도 알았던 사회적 인간이었으나, 자신의 내부에서 고고히 진행되는 파멸을 막을 방법은 알고 있지 못했다. 황폐화되는 내면을 드러내면서 감정을 배설하는 방법 역시 알고 있지 못했다. 몰핀과 알코올에 중독되었고, 변변한 직업이 없는 대신 여성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특징으로 수많은 여자들의 정부(情夫) 역할을 하며 살아갔던 20세기 초반의 한 일본인의 일그러진 자화상은, 여전히 거북하고 불쾌하지만, 21세기 초반을 사는 나는 어쩐지, 공감하게 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겨울버찌와 자화상 - Egon Schiele


부스러지기 쉬운 인간의 자아.

곱게 보관되어야 하고, 충격을 받지 않아야 하며, 잘못될 경우 산산조각이 나버린다는 점에서 인간의 자아는 니트로글리세린과 같이 위험하다. 어린이의 자아는 태어나 첫 울음을 울고나서부터 혹독한 환경에 노출되어 바닷바람에 모래가 날아가듯 마모된다. 인간의 일생을 통틀어 마모의 정도가 심한 기간은 개인별로 다 다르겠지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황폐화를 경험하면서 산다. 이상주의자는 그것을 막고, 재생시킬 방법을 인간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겠지만, 현실에서의 인간관계는 잘 해봐야 잠깐의 현상 유지 정도일 뿐이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요조는, 인간으로서는 실격이다. 책 제목부터가 그렇고, 그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며, 그의 주변 인물도 그렇게 생각한다. 실격인 그는 그에 합당한 격리 또는 추방을 당하지만, 불편한 의구심을 남긴다. 자아가 심각히 손상된 인간은 아웃인가? 그보다 더 심각히 오염된 자아를 내면에 잘 숨기고 사는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렇지 않은데. 미션 임파서블에서처럼 잘 들러붙는 가면을 얼굴에 붙이고 사는데 익숙한 현대인들(간혹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은 모두 세이프인가.

이런 결론에 의거하여 요조는 실격에서 해방될 수도 있겠다. 적어도 현실에 익숙한 사람들에게서는. 너는 나처럼 스스로의 파멸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구나. 너는 내가 가지게 된 멋진 스키니 마스크를 가지지 못했구나. 불쌍하다. 무죄. 쾅쾅.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게 있어서 요조는 여전히 실격이다. 파괴되는 자아를 돌보지 못하고 드러내다 스스로 무너져버린 그가 불쌍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존재의 모순을 깊이 성찰하고, 지향하는 바를 스스로 발견하며, 무너지는 나를 남이 아닌 자신의 자유 의지로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처럼 인생에 있어서 무책임했던 그는, 인간이 본래적으로 갖고 있는 모순에 극명히 희생된 피해자라고 하더라도 용서될 수 없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