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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erno

ef - a tale of memories

ef -a tale of memories

from : http://www.ef-memo.com/


 
  동급생, 하급생, 유작, 노노무라 병원, 애자매...... 제목에서부터 밤꽃 냄새가 폴폴 풍기는 이 명사들은 90년대 중후반에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던 남학생들에게는 어느새 그리운 추억이 되버린 미소녀연애시뮬레이션 게임(이하 미연시, 우리나라에서는 야겜이라 불렸었습니다.)의 이름들입니다. 이렇게 인기를 끈 미연시들은 자연스럽게 애니화되고 다시금 남학생들의 피골이 상접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는 했었습니다. 어쨌든.

  최근 일본 티비 애니메이션들을 구분해보면 출판 만화를 원작으로 하던가, 라이트 노블(light novel :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흥미 위주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던가, 미연시를 원작으로 하던가 중의 하나입니다. 10월부터 방송되고 있는 'ef - a tale of memories'는 'minori'라는 게임회사가 제작한 ef - a fairy tale of the two의 애니버전입니다. 사실 게임은 분량이 너무 많아서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발매되는데, 애니는 2006년 12월에 발매된 1부와 아직 나오지 않은 2부 사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이런 게임을 하지 않으니 정확히는 알 수가 없군요.

  사실 이 애니메이션의 1화를 처음 보았을 때는 지루해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다만 화면의 연출만은 상당히 눈에 띄었습니다. 예를 들어, 캐릭터의 외곽선만 그려놓고 배경으로 채색하여 투명한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던지(위의 사진을 보시면 알 수 있을 듯) 오프닝을 2화 마지막에 처음 등장시킨다던지 하는 것은 신선했습니다. 특히 7화 후반부에 타이포그래피를 이용하여 인물 심리 상태가 점차 변해가는 것을 표현한 연출은 압권입니다. 하지만 기교를 과도하게 부리는 면도 있습니다. 등장인물의 뒤에서 망원렌즈로 찍은 듯한 장면은 지나치게 자주 등장합니다.

  이야기는 6명의 인물들에 의해 전개되며 크게 보자면 두 가지 이야기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이 중에서 저는 신도 치히로와 아소 렌지의 이야기를 흥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사고로 인해 치히로는 13시간만 기억이 지속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어제의 그녀와 오늘의 그녀를 연결시켜주는 것은 그녀가 항상 가지고 다니는 일기장 뿐입니다. 버려진 역에서 우연히 아소 렌지는 그녀를 만납니다. 그녀의 상태를 알게 된 렌지는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고자합니다. 그녀는 소설을 쓰고자 합니다. 그녀가 쓰고 싶어하는 이야기는, 모든 것이 멸망한 세계에 혼자 살아 남은 여자아이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주목한 것은 아소 렌지의 심리 상태의 변화입니다. 그는 치히로의 상태를 알게되서도 여전히 그녀를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기억상실증은 장애가 되지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전과 다름없이 친근하게 지냅니다. 하지만 점차 치히로의 마음이 진지해지자 그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연애라는 것은 하나의 인간을 책임지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의 신선함이 가시면서 어느새 익숙한 현실이 되버립니다. 상대의 긍정적인 면은 당연한 것이 되고 부정적인 면은 커보입니다. 그는 기억상실증이 있는 치히로가 어쩐지 부담스러워집니다. 그리고 이윽고 사건이 터집니다. 렌지를 항상 기억하기위해 잠을 자다가 중간에 깨어나서 일기장을 읽으며 그를 상기시키던 치히로는 수면 부족으로 인해 쓰러집니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치히로의 머리속은 리셋 되어서 렌지는 물론 지난 4년간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히스테리를 일으키는 치히로. 둘이 함께 바닷가에서 만들었던 모래성은 여전히 바닷가에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치히로는 그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4년간의 기억이 사라졌을 때, 혹시 이전의 나는 죽은 것이 아닐까?'라는 그녀의 말을 떠올리며 렌지는 오열합니다.



ps. 게임판의 오프닝 애니메이션은 신카이 마코토가 담당하였다고 하네요. 역시 작화는 환상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