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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연수원에서의 이벤트 하나가 무산으로 돌아가면서 남아 버린 시간에 단체로 영화를 보았습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문소리, 김지영, 김정은 처럼 이름만 들어도 막강한 배우들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임순례 감독. 솔직히 임순례 감독의 작품은 하나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 유명한 와이키키 브라더스조차도. 그래도 좀 알아주는 감독이니까 기대치가 꽤 되는 것이 사실이겠지요. 그런데 영화는 무척 실망스러웠습니다. 영화가 시작하고 대사가 3개쯤 지나갔을 무렵부터 저 스스로가 민망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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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함이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스포츠 영화는 어떠한 소재를 바탕으로 만들건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를 보장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뻔한 플롯이지만 이야기 구조가 재미있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개인적으로 정말 재밌게 본 스포츠 영화는 '글로리 로드'입니다. 연기도 연기지만 탄탄한 이야기와 인종차별 문제. 그리고 마지막에 자막으로 처리되는 뒷 이야기까지. 고등학교 시절 농구부에서 우승을 하고 난 이후에 사회 여러 분야로 진출하는 모습을 보고 부러워 했던 기억도 나네요. 어려운 팀을 구원할 감독의 등장. 팀의 불화. 불화를 이겨내는 에피소드. 인종차별을 극복한 우승. 화려한 플레이. 재미를 주는 요소로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 역시 이러한 재미의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난관을 극복하고 아테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실제 사건. 세대교체, 감독과의 불화. 복잡한 개인사정. 하지만 팀을 화합으로 이끄는 주인공.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생순은 어색하고 민망합니다. 이유는 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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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체가 잘못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관람자가 낯이 붉어질 정도로 어색하고 민망한 대사. 그리고 연기. 특히 몇몇 대사는 여전히 잊혀지지 않습니다. '한미숙! 넌 핸드볼 최고의 선수잖아!', '이런 쭈꾸미 같은 놈' 등등 손으로 꼽자면 끝이 없지요. 게다가 연기까지 엉망. 문소리님, 김지영님은 어떻게 넘어간다고 치더라도 김정은님은 여전히 파리의 연인에 출연한 듯 하더군요. 대사도 어영부영. 거기에 서프라이즈를 보는 듯한 어색한 외국인 연기. 오버도 절제도 아닌 엄태웅. 갑작스레 뻗어버린 미숙의 남편. 뭐 제대로 건질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내내 웃기만 했지요. 민망한 대사에.아무리 좋은 소재가 있더라도 잘못 표현할 경우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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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함의 두 번째 이유는 바로 핸드볼. 04년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를 막 시작했을 무렵 핸드볼에 관련한 글을 쓴 기억이 납니다. 여전히 비인기 종목이라는 글이였지요. 영화를 보면서 영화의 소재가 핸드볼이 아니라 농구나 축구였더라도 이렇게 어색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농구, 축구, 야구는 인기 스포츠이며 익숙하고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었지요. 글로리 로드만 해도 농구를 소재로 하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여자 핸드볼은 다른 스포츠에 비해 속도감이 떨어집니다. 게다가 핸드볼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속공과 스카이 슛을 화면에 제대로 잡아내지도 못했지요.

이제는 영화를 봐도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단지 안타까울 뿐. 우생순도 마찬가집니다. 이런 스토리를 이정도로 밖에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극장을 나왔을 때 누군가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는 말을 흘깃 듣게 되었습니다. 관점이 다른 경우도 당연히 있을 수 있지요. 정적이 흐르는 장면에서 낮고 굵은 목소리로 '쩐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은 저였으니까요. 저 또한 이 영화의 실제 배경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안타까움과 감동으로 보았지요. 마지막에는 실제 선수들의 인터뷰가 나옵니다. 가장 감동적이고 인상적이었습니다. 웬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오히려 다큐멘터리처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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