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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영화 읽기, ‘G’Day Nemo’

[영어로 영화 읽기, ‘G’Day Nemo’]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즐거운 이유 중 하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넓어지는 데 있다. 어쩌면 새로운 눈이 하나 더 달리는 (정말로 그렇다면 괴물이 되겠지만……) 것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운전 면허를 따고 나니 그전엔 알지 못하던 차들의 미묘한 움직임이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처럼, 영화를 배우고, 문화를 배우는 과정에서도 세상의 새로운 면들을 발견하는 묘미를 즐길 수가 있다.

언어 역시 문화의 한 부분이기도 하면서 문화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점에서, 세상을 비추는 좋은 거울이 된다. 영화 속의 언어도 이와 거리가 멀지 않다. 우리 영화들만해도 각 지방의 지역색, 사투리가 캐릭터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가 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문득 잊기 쉬운 사실은 영어를 쓰는 곳은 훨씬 더 넓고, 더 많은 지역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헐리우드가 세계 시장을 상대로 하면서 초지역적인 문화와 더 쉽게 표현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고 하더라도, 한글 자막을 읽는 것을 넘어 영어를 읽으려고 하다 보면, 새롭고 재밌는 차이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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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을 가장 크게 느낄 수 있었던 때는 ‘니모를 찾아서’를 두 번째로 보았던 때이다. 첫 번째로 보았을 때는 지느러미 하나가 작은 니모가 바로 ‘해저2만리’의 네모선장에서 따온 것임을 깨닫고 그들의 작명 센스에 감탄하기는 했었지만, 전체의 배경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었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가 나오고 나서야 “오, 얘네들이 호주까지 갔네.” 하고 작은 설정 중의 하나라고만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러나, 호주에 잠시 머무르면서 호주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고, 호주식 영어를 배우고 나서 본 ‘니모’는 전혀 다른 작품이었다. 헐리우드 영화가 아니라 호주 영화라고 할 만큼 수많은 것들이 호주의 문화와 언어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바다에 살던 니모를 잡아간 사람의 주소는 wallaby way, Sydney 인데, 월라비는 호주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작은 캥거루를 가리킨다. 검색을 해 본 결과 실제로 이런 이름의 주소도 존재하는 것 같다. 호주 사람들은 영 연방 국가들 사이에서 제일 인기 있는 스포츠라고 할 수 있는 럭비의 국가 대표팀을 위해서도 월라비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니모가 사람에게 잡혀 어항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어항의 다른 물고기들이 해주는 환영 행사는 호주 원주민(애보리진)의 댄스를 보는 듯 하고, 그 과정 중에 Ring of Fire를 통과하는 의식도 벌어 지는데 이것은 호주 지역을 포함하는 환태평양 화산대의 영문명칭 이기도 하다. 먹을 것에 환장하며 'mine!(내 꺼!)' (울음소리와도 절묘하게 매치 시킨 최고의 대사!) 라고 외치는 갈매기들의 모습도 영락없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근교의 모습이다. 비싸게 구입한 샌드위치를 그들에게 순식간에 빼앗긴 안타까운 경험이 떠오른다. 호주식의 사투리와 속어들도 여기저기서 들을 수 있다. 미국 사람들을 비난하는 초식주의자 상어들은 G'day (그다이=Hi),  Mate (마이트=friend) 같은 말들을 사용하고, 바다 거북들도 No worries (노워리스=You're welcome) 라고 인사를 전한다. 이렇게 하나하나를 새롭게 알게 되는 재미는 예전에는 좋아하지 않았던 영어 공부를 멋진 일로 만들어 주었다.

우리가 헐리우드 영화나 미드를 쉽고 즐겁게 볼 수 있는 이유는 보편성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배경에 상관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화는 항상 보편성과 개별성을 동반하기 때문에 우리는 영화를 볼 때 알게 모르게 그 둘을 함께 받아 들인다. 그리고 이것이 코카콜라, 맥도널드, 헐리우드로 대표되는 문화 잠식 현상의 바탕이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종종 우려하는 문화사대적인 종속이나, 무조건적인 거부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보편성에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개별성을 상하구분없는 객관적인 태도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기본자세와도 같다. 영어, 그리고 또 어떤 것이든, 외국어를 배운다는 점은 그런 점에서 또한 가치 있는 일인 것 같다.
 
 
 
* 이 글은 N사의 온라인 카페 ‘퇴근 후 영어 광내기’에 남겼던 글을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