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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즈, 한국식 혈연 드라마의 부활?

[히어로즈, 한국식 혈연 드라마의 부활?]

*주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우리나라 드라마의 흥행 요소이면서 고질적인 병폐가 되는 것은 같은 소재의 반복이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누구다 알다시피 바로 불치병과 감춰진 혈연 관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은 가족이고, 병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가 보다.”라는 우스개를 외국 사람들도 알 정도니 정말 대단한 일이다.

불치병이 죽음으로써 이야기를 극적 효과를 높이고 순수한 사랑과 같은 주제를 강화하는 쉬운 장치인 반면, 혈연 관계는 프로이트 심리학에서 말하는 ‘가족 로망스’의 욕망에 바탕을 두고 있다. 현실의 부모보다 사회적 신분이 높은 진짜 부모가 따로 있을 것이라고 믿는 이런 유아적인 환상은 절대적인 존재로 여기던 부모에 대한 환상이 깨져 버렸을 때 부모를 부정함으로써 그 환상을 지켜내기 위한 방법으로 작용한다. 아이가 이런 환상을 그렇게 소중히 여기게 되는 까닭은 부모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자기도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좌절로 이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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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헐리우드에도 우리나라 드라마보다 훨씬 더 혈연 관계 판타지를 적나라하게 활용한 드라마가 등장했다. 뜻밖에도 그것은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영웅이 된다는 설정으로 출발했던 ‘히어로즈’이다. 히어로즈 시즌1의 핵심 내용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Save the cheerleader, save the world. (치어리더를 구하면 세계를 구할 수 있다.)’ 이다. 이러한 문구를 보고 난 첫 느낌은 “도대체 그거랑 그게 무슨 상관인데?”라는 아리송함과 무관심이었다. 평범한 사람이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설정은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거꾸로 특정한 한 사람(치어리더)이 세계를 구할 구세주라면, 그 사람은 이미 평범한 사람이 아니지 않나? 그래서 결국 난 이 드라마를 보지 않았었고, 한참 후에서야 친구의 강력한 추천으로 다시 찾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은 저 말의 비밀이 드러나는 엔딩에 이르기까지 치밀한 이야기 구조에 정신없이 빠져들고야 말았다.

그러나 이 스토리를 즐기고 ‘Save the cheerleader’를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평범한 사람들이 영웅이 되는 이야기’라는 처음 설정과 광고에 대한 강한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여주인공 격인 클레어의 주된 관심은 “나는 이렇게 특별한데, 어딘가에 있는 내 부모도 특별한 사람이 아닐까” (물론 이것은 입양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족 로망스’에서 말하는 현 부모에 대한 부정의 요소는 가지고 있지 않다는 차이는 있다.)이고, 결국 이는 진실임이 밝혀진다. 여기까지는 기대에 부응하며 재미를 느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즌1의 후반부터 시즌2의 완결까지를 지탱하는 새 주제는 ‘특별한 부모들의 업보에 맞선 특별한 2세들의 활약’에 다름없다. 1편 주인공들의 숨겨진 부모들이 하나씩 드러나는 과정은 말 그대로 과잉, 과잉, 과잉의 혈연 드라마다. 결국 그들은 애초에 절대로 평범하지 않았던 타고난 사람들이었던 것뿐인 것이다. 모두 부모가 남긴 위대한 유산을 가진 자들이요, 특히 영웅이 된 히로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회사원이 아니라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정말 즐겨 쓰는 일반직에 몰래 근무하는 회장님 아들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가 진짜 평범한 사람들에게 남기는 말은 무엇이 될 것인가. ‘가족 로망스’를 아이의 심리로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사실 성인이 되어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심리이다. 타고난 사람만이 특별하다는 이야기는 타고나지 않은 사람들은 특별한 부모만을 욕망하고 그렇지 못함을 좌절하게 만든다. 결국 이는 노력에 의한 자기 발전을 부정하고, 승리자에 대한 순응을 부추기는 것이다. (이는 앞서 ‘라따뚜이’에 대한 글에 댓글로 남긴 ‘라따뚜이’와 ‘인크레더블’의 위험성과도 같다.)

아도르노는 ‘대중음악론’에서 대중음악의 유사(의사) 개별화적인 특성을 말한다. 즉, 어떤 패턴이 성공을 거두면 그것이 고갈될 때까지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규격화가 되며, 그것을 감추기 위해 “다른 것 같지만 사실 똑같은 것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중은 끝없이 반복되는 이러한 문화상품을 소비하는 가운데 세계를 그대로 받아 들이고, 현실 질서의 순응으로 이어진다. 이와 비교할 때 ‘숨겨진 고귀한 혈연’은 드라마의 규격화되고 성공적인 패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정말로 위험한 패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