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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삼국지’, 한국판 전문 만화들의 활약을 기다리며

[‘바둑 삼국지’, 한국판 전문 만화들의 활약을 기다리며]

우리나라 작가 분들의 만화 중에도 명작이 많지만 책방을 가면 먼저 일본 만화들을 둘러 보게 되는 이유는 그 엄청난 다양성과 전문성에 있다. 다시 말하면, 연애물, 학원 폭력물, 판타지, 무협물을 제외하고도 수많은 선택권이 있다는 뜻이다. 이 속에서 나는 와사비의 풍미를 처음으로 느낄 수도 있었고(미스터 초밥왕), 홍차의 세계(홍차왕자)에 입문할 수도 있었다. 와인(신의 물방울)에서부터 칵테일(바텐더), 자동차(이니셜 D)는 물론 정치(쿠니미츠의 정치), 사기(검은 사기)에 이르기까지 전문 만화들은 재미와 감동을 넘어 충실한 정보 매체의 역할까지 할 수 있기 때문에 소장가치도 매우 크다.

전문 만화들의 또 다른 강점은 소재의 독특함이 가지는 매력 때문에 영화화, 드라마화가 용이하다는 것이다. 색다른 직업만 있지 하는 일이 없거나, 장소만 다르고 내용은 결국 똑같은 사랑 얘기로 끝나버리는 수많은 드라마들이 지탄을 받는 것과는 달리, 이러한 만화들을 근간으로 하는 작품들은 좀 더 실제 환경에 대한 진정성을 갖출 수가 있다. 그러나, 만화-> 애니메이션-> 실사 영화의 전환 구조가 자리 잡힌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의 실정은 너무도 열악하다. 최근에는 그나마 만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이 대거 등장하고, 또 개봉을 앞두고 있지만, 원작자가 하나같이 허영만 아니면 강풀이라는 사실은, 그분들의 노력의 성과가 대단하다는 뜻임과 함께, 전반적인 환경은 그렇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만화에 스토리작가를 따로 두는 것 조차 여전히 흔하지 않은 상황이니 새로운 소재 개발, 치밀한 현장 취재를 기대하는 것은 어느 정도 무리일수도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같은 이야기에만 머무른다면, 결국은 독자로부터 멀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판타지와 에세이툰만 보고 살 수는 없으니까. ‘슬램덩크’만 하더라도 지금은 우리가 최고의 농구 만화로 꼽고 있지만, 사실은 만화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반대가 많았다고 한다. 당시 스포츠 만화의 주류는 야구였던 탓에 농구라는 소재의 흥행성은 점칠 수 없다는 것이 이유다. 그래서 슬램덩크도 초반에는 학원 연애물과 폭력물, 개그 만화의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지만, 결국에는 농구 만화 그 자체로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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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 일 하나는, 최근에 기가 막힌 전문 만화를 한 편 발견한 것이다. ‘바둑 삼국지’. 조금 거창한 제목 같지만, 실제 인물들이 한중일 삼국을 넘나들며 펼치는 활약상과 세밀한 감정 묘사, 매력적인 그림체는 이 작품을 그 제목에 걸맞은 명작으로 만들어 준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이 탄생하고 연재가 계속될 수 있게 만드는 힘은 바로 소설 원작자, 스토리 작가, 작화가의 긴밀한 협력으로 만들어지는 생생함이다. ‘고스트 바둑왕 (히카루의 바둑)’이 판타지의 설정을 빌려 새로운 소재인 바둑을 친숙하게 만들어 성공을 거두었다면, ‘바둑 삼국지’는 정면 승부로 바둑과 실제 인물들을 다루면서도 어느 판타지보다 환상적인 이야기를 펼친다. 삼국지가 한 명이 아닌 많은 지장과 용장들의 인생을 담고 있는 것처럼 ‘바둑 삼국지’도 바둑의 시대를 이끌었던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설사 ‘바둑’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들의 매력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바둑이라고는 둘러싸면 먹는다는 사실 밖에 모르는 처지이지만, 이 만화의 힘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이 만화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질 수 있기를, 최종회까지 무사히 연재될 수 있기를 빈다. 그리고 더 많은 전문 만화들이 나와 우리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주기를 기대해본다.


* 이미지 출처: 파란
 (‘바둑 삼국지’는 온라인 포탈 파란에서 연재되고 있습니다.)

* 이밖에 우리나라 만화 중 괜찮은 전문 만화가 있으면 추천부탁드립니다.
(예: 허영만 ‘식객’, ‘타짜’, ‘아스팔트 사나이’ 등
강풀 ‘26년’, 김수용 ‘힙합’, 박흥용 ‘내 파란 세이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