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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비긴즈 – 판타지와 현실 사이

[배트맨 비긴즈 – 판타지와 현실 사이]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등과 같은 판타지 대작 들이 성공을 거둔 이후로 헐리우드에서는 계속 판타지 영화들을 찍어 내고 있다. 넘치는 상상력의 산물인 판타지라고도 하지만, 이렇듯 지나치게 판타지 소설 원작들에 기대는 경향은 오히려 상상력의 부족에서 오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든다. 부족한 러닝타임으로 인해 원작이 담고 있는 가치를 제대로 구현해내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뭐든지 가능한 환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점 때문에 이야기 구성에서 ‘왜’, ‘어떻게’라는 고민 자체가 실종되어가는 것 같은 안일함을 느끼게 된 것이다. '판타지'도 결국은 '이야기'라는 점에서 독자, 혹은 관객이 받아 들일 수 있을만한 사실성을 요구한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배트맨 비긴즈’는 정말로 잘 구성된 판타지 작품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럴듯함’ 이라는 판타지의 기본 요건을 충실히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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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만들어진 작품의 프리퀄(원래 이야기의 앞선 내용을 다룬 후속 작품)을 제작하는 입장에서 ‘배트맨 비긴즈’의 작가들은 많은 고민들을 해야 했을 것이다. 배트맨을 잘 모르는 새로운 관객들 외에도 배트맨의 탄생 배경을 이미 알고 있는 팬들을 동시에 만족시켜야만 했기 때문이다. 특히 수작이라고 평가되는 배트맨 1은 탄생 배경을 이미 다루었었다는 점에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난관이었다.

작가들이 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선택한 방법은 사실성의 극대화로 인한 차별화였다. 팀 버튼과 그 이후의 감독들은 배트맨과 매력적인 악역과의 대결 구도를 통해 시리즈를 이끌었고, 이러한 미치광이 범죄자들은 '만화적'인 상상력을 반영하여 꾸며졌었다. 후속작들은 기괴한 범죄자들을 늘리고, 동료도 늘려가며 강한 캐릭터성으로 전작들을 능가해보려고 했지만, 이것은 결국 작품성의 악화만을 가져 왔다. 배트맨 비긴즈는 악당들만 따지고 보면, 오히려 그러한 후기의 배트맨 시리즈들보다도 아쉬운 면이 있다. 듀카드도 정신과의사도 조직 보스도 이전의 조커나 캣우먼이 보여줬던 포스를 주지 못한다. 그러나, 배트맨 비긴즈가 다루고자 한 것은 매력적인 악당이 아니라, 배트맨의 탄생 과정 그 자체라는 것이 다르고 그 방법이 사실적인 시선이라는 것이 다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악당이 가진 기괴한 특성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장비들을 시험해보며 배트맨의 모습을 만들어 가는 브루스 웨인, 화려하기 보다는 투박한 매력의 초기 배트카, 첨단의 화려함을 잃고 몰락하게 되는 고담시의 모습 자체이다. 배트맨 마스크가 중국산 대량생산품이라는 설정 등과 같이 현실을 적절히 반영한 위트도 빼놓을 수 없다. 엔딩에서 조커 카드를 내보이며 배트맨 1으로의 연결점을 만드는 것은 멋진 팬서비스이기도 했다. 이렇게 ‘배트맨 비긴즈’는 현실적으로 가능할 법한, 그럴듯한 설정으로 고담시와 배트맨의 탄생 배경을 풀어 냄으로써 ‘프리퀄’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올해에는 배트맨 비긴즈의 후속편인 ‘다크 나이트’가 개봉할 것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프리퀄은 프리퀄로 끝나길 바랬었는데 굳이 그래야 했을까라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배트맨을 이미 다룬 이상 이제는 결국 악당과의 대결 구도로 돌아갈 수 밖에 없을텐데, 히스레저의 조커가 과거의 조커를 정면 승부로 이겨 낼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다시 어떤 새로움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인가. 제작진들이 그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냈는지 아닌지는 이번 여름에 직접 확인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