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lright

<미쓰홍당무>, 그녀의 문제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미쓰홍당무>는 양미숙의 새빨간 얼굴처럼 뜨거운 이야기의 영화다. 사실 그녀의 속사정, 그자체는 그닥 새로운 이야기거리는 아니지만, '무엇'보다는 '어떻게'가 중요한 법, 미스홍당무는 제법 징글징글한 새로운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내가 내가 아니었으면,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을 거면서"
"난 내가 너무 부끄러워"

그녀에게 100% 공감하건 공감하지 않건 상관없다. 터질 것 같은 그녀의 감정은 제멋대로 관객들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가는 깊숙이 파고든다. 그렇게 무례하게 자기 얘기만 두서없이 늘어 놓고 그녀는 먼지 툴툴 털고 웃으며 사라져 버린다.

정말 그렇다. 부끄러운 마음, 수치스러운 마음에는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다.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의 나 자신이 이유라면 이유인데다, 시뻘건 불꽃처럼 솟아올랐다가, 아무일 없었다는 듯 사라져 버린다.

공감 못한 것처럼 괜히 미안한 척 했지만, 실은 내 마음도 아팠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쓰홍당무>는 그렇게 쿨할 수가 없다. 손대면 터져버릴 것 같은 그녀의 이야기를 기가 막히게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그래서 이 영화는 재밌다.

구구절절 불쌍한 그녀의 사정을 늘어 놓다가도 그녀에게 50%, 그 이상 몰입하지 못하게 영화는 재빨리 달아나 버린다.

'그래! 너의 문제를 뱉어버리고, 상큼하게 마무리하는 거야!'

라고 생각할라치면, 다시금 양미숙을 구질구질한 존재의 늪에 떠밀어 버리는 게 정말 기막힌 이 영화의 테크닉이다.

그녀가 또렷하게 뱉는 자기선언 따위로는 <미쓰홍당무>의 이야기를 마무리할 수 없으며, 실은 안면홍조증의 치료 자체가 그녀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3.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참 좋다. 마치 내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이 된 것처럼, 그녀의 마음을 위로해 준 사람이 된 것처럼 기분이 좋다.

그렇다. 해결될 수 없는 문제도 있고, 문제의 해결이 목적이 아닐 때도 있다.
그럴 땐,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 


덧붙여, 공효진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alright' 카테고리의 다른 글

<Ugly Betty> 베티, 그녀의 정의  (7) 2008.12.10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와 선택의 문제  (1) 2008.11.23
<Weeds>, '삶'이라는 이름의 마약  (1) 2008.10.05
놈놈놈...  (9) 2008.08.04
타인의 취향  (7) 2008.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