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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메탈 시티>와 선택의 문제


일본 에니메이션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네기시'라는 주인공이 도쿄로 상경해 데스메탈 그룹 'DMC(디트로이트 메탈 시티)'의 리드 싱어 '클라우저'가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네기시'의 고민은, 쉽게 말하면 To-be와 As-is 사이의 극단적인 변위 때문인데, 매일밤 악마의 화신 '클라우저'로 변신하는 '네기시'가 진정으로 꿈꾸는 음악은 데스메탈은 웬 걸, 부드럽고 귀여운 멜로우 사운드, 스윗팝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나는 '네기시'의 고민을 이중적인 자아 정체성에 대한 혼란으로 이해했었다. 사람들의 조소를 사는 그의 스윗팝에 비해, 그의 데스메탈은 여기 저기서 그 천재성을 인정받고,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그의 '악마적인' 한마디 한마디가 DMC의 팬들에게는 마치 성서의 한구절처럼 여겨지는 괴상한 상황들은, 그의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악마적 자아의 무의식적인 발현으로부터 유도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네기시'의 고민은, 그의 직업의식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떻게 보면 프로테스탄티즘 윤리랑 비슷한 건데, 자신의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 같은 것 말이다. 물론, '네기시'의 경우, 그 소명의 근거는 종교적 믿음은 아니고, 그저 그가 타고난 성실함이겠지만.

한 에피소드에서, 그는 'DMC'를 떠날 채비를 하고, 공연장을 스쳐 가다 '클라우저'역을 하는 어설픈 대역을 보고, '저래서는 안된다'며... 다시 무대로 올라선다. 어쩌면, 그의 선택은 자신의 정체성이 거기 있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맡은 객관적인 '역할'(사회적인 의미에서)을 다하는 것이며, 그것은 정체성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는 행위로 풀이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다.

라는 말이 있지만,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을 찾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사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네기시'처럼 진정한 자신의 모습은 밀어둔 채, 자기가 맡은 사회적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살아가고, 그저 그렇게 우리 자신의 행복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방식의 행복을 찾아 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인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종류는 많고, 아다시피, 언제고 우리 뜻대로 선택할 수 있는 형편인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자아 정체성 따위 '생활' 앞에선 어쩌면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를 보며, 나는 인간이 자신의 인생에서 내려야 하는 중대한 선택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리고, 선택의 결과가 아닌, 선택의 과정 그 자체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의미를 배운다.
인간의 삶이란 것은 내가 되어야 할 것, 내가 해야만 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행복해야 한다는 것, 이 사이에서 방황하고 갈등하며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것일지도,
방황, 갈등, 혼란, 선택, 이 지긋지긋한 인생의 요소들이 바로 우리의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극적인 대사와 설정들이 문제가 될 수는 있겠지만,
꼭 추천하고 싶은 에니메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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