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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gly Betty> 베티, 그녀의 정의

<Ugly Betty> 세번째 시즌의 키워드는 Repositioning이다.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나 관계에 대한 리포지셔닝이 주로 진행되고 있는데, 이를 테면, 그렇게 차가웠던 윌레미나의 인간적인 면을 재조명한다거나, 베티와 마크, 베티와 아만다가 새로운 프랜드십을 형성하는, 이전 시즌에서는 감히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던 캐릭터의 입체화, 관계의 재구성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펼쳐 진다.

베티는 여전하다. 여전히 선하고, 여전히 용감하다. 불의에 무릅쓰고, 정의를 위해 자기가 가진 것을 포기할 줄 아는 씩씩한 여장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번째 시즌에 들어 가장 짜증나는 캐릭터를 고르라면, 실은 베티다. 100% 신뢰할 수 밖에 없었던 첫번째, 두번째 시즌의 베티가 왜 이렇게 비현실적이다 못해, 짜증나는 캐릭터가 되버렸는지. 그동안 뭐 내가 변한 거니, 아니면, 베티야 내가 널 잘못보고 있었던거니.

세번째 시즌에 들어 등장인물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 보게 되면서 깨닫게 된 건, 베티가 가진 '선함'의 본질이 단순한 '착함(goodness)'이 아닌 '공정함(fairness)'에 있다는 사실이다. '공정함'이라는 가치가 미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정확히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세번째 시즌에 들어 베티가 보여준 '공정함'은 개인적인 감정적 영역을 초월한는 초인적인 희생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며, 그녀가 가진 '공정함'의 바운더리가 공립 학교 교과서 수준의 단편적인 선악의 범위 내에서 선그어진다는 점에서 진짜 짜증 지대로다.

사실, '공정', '정의'라는 것이 공적인 가치로, 개인적인 잣대에 의해 그 기준을 정의하기는 어렵다. 물론, 베티처럼 '자기 자신'의 희생을 통해 세상의 '정의'를 지키려 한다면, 물론 칭찬받아 마땅한 일일 수도 있겠으나, 베티라는 캐릭터에 잔뜩 몰입해 드라마를 보는 나로서는 베티의 근거없는 '용기'와 교과서적인 '자기 희생'에 성질 뻗쳐 돌아버릴 것만 같다. 왜 만날 너만 당하니, 왜 만날 되도 안하게 자꾸 나서.

시민으로서의 윤리의식, 책임감, 의무. 그런 관점에서 <Ugly Betty>는 공립 학교 윤리시간에 상영해도 좋을 만큼, 긍정적인 예들을 보여 주는 교과서같은 이야기를 설파한다. 사회가 정하는 '정의'의 기준을 넘어, 개인 생활 속에서 스스로의 '정의'를 실천해 가는 베티의 이야기가 요즘 현대인에게 필히 들려주어야 할 이야기 일수도 있다.

하지만, 에피소드 마다 반복하는 베티의 '양보'와 '희생'을 보면서, 드라마지만 '너무 한다'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경고문이라도 삽입하던지 해야지.
'따라하는 건 좋지만, 언제나 베티처럼 똑같은 결과를 얻을 수는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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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데서나 막 그렇게 웃구 그르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