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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디 워(D-War)

 올 여름 영화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디 워'를 방금 심야로 따끈따끈하게 보고 왔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어떤 평도 보지 않는다는 철칙을 지킬 수가 없었던 영화였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워낙 많은 말들이 오고 갔으니까요. 게다가 진중권님이 '디 워'를 이야기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워 '100분 토론'도 아주 집중해서 시청했습니다. 덕분에 참 여러가지 생각을 가지고 영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대부분의 평론가들이 이야기하는 '그래픽은 볼 만하나 스토리와 캐릭터는 없다'는 말이 정답입니다. 100분 토론에서 진중권님이 말했던 것도 대부분 납득이 갑니다. 단지 그 표현방법이 조금 과격했었던 것이 문제가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냥 별 생각없이 본다면 심야영화비 4,000원은 전혀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후반부의 시가전과 이무기 간의 전투 장면은 꽤 흥미진진했으니까요. 관객 수 800만 돌파가 눈 앞, 미국 개봉을 앞 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 워'를 보면서 아쉬웠던 점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스토리, 인과관계의 부재, 대사처리와 배우들의 연기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완전히 개인적인 감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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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디 워'의 한 장면


 저는 괴수 영화 마니아는 아닙니다. 내가 본 괴수영화!라고 꼽을 만한 것은 킹콩과 고질라가 전부니까요. 하지만 '디 워'의 '이무기'가 가진 약점을 킹콩과 고질라를 통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무기'는 감성이 부족합니다. 괴수 영화의 주인공은 역경을 이겨내고 사랑에 빠지는 남녀가 아니라 바로 괴수입니다. 따라서 관객이 괴수를 통해 감정 변화, 전이, 이입 등의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질라의 탄생 배경, 죽음의 순간 등을 통해 연민을 느끼기도 하고 '절대악 괴수'로서 분노를 느끼기도 합니다. 100분 토론에서 진중권님이 이야기했던 킹콩과 사로잡힌 여자의 감정 교류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스톡홀름 증후군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말이죠. 하지만 '이무기'를 통해 감정의 변화를 느끼기는 힘듭니다. 탄생의 배경도 설명이 부족하고 선한 이무기의 존재로 인해 '절대악'으로 이해하기도 힘듭니다. 이무기는 여럿인데 그 중에 착한 놈도 있고 나쁜 놈도 있는건가? 그럼 '부라퀴'만 나쁜 놈? 다른 나쁜 이무기는 없어?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했으니 500년되에 용이 될 이무기 후보가 있는건가? 궁금증은 끊이질 않습니다. 캐릭터 설정이 명확하지 못해 이무기를 통해 감정의 격류를 느끼지 못한다는 점. 주인공인 괴수가 강한 임팩트를 주지 못한다는 점. 무척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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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킹콩'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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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킹콩'의 한 장면


 며칠 전, '디 워'가 해외 평론가들로부터 혹평을 들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영화평과 흥행이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디 워'가 미국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물음에는 저 또한 회의적입니다. 미국 영화에 비해 무엇이 부족한가?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저는 기술의 차이, 스토리 진행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디 워'가 미국인의 코드에 과연 맞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미국인이 생각하는 최고의 가치는 바로 '가족'입니다. 미국 드라마를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유명한 '프리즌 브레이크', '로마' 등을 보더라도 미국 사회가 '가족'을 얼마나 중요시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른 괴수 영화에서도 인간으로 등장하는 캐릭터에게는 부모가 있고 형제자매가 있습니다. 그러나 '디 워'에 등장하는 두 남녀의 가족 관계는 희미합니다.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그렇다면 두 남녀를 연인으로서 강하게 결합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이야기, 인과관계의 부족으로 이 또한 성공적으로 끌어내지 못합니다. 미국의 가장 중요한 트렌드인 '가족코드'를 놓친 상태에서 과연 '디 워'가 성공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타깃이 저연령층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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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디 워'의 남녀 주인공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승천하는 용과 아리랑은 무척 인상적일 것입니다. 우리에겐 익숙하지만 미국의 그들에겐 무척 생소할테니까요. 특히 동양 특유의 용이 무척 섬세하게 구현되어 깊은 인상을 줄 듯 하네요. 한 가지 궁금한 것은 미국 개봉에도 심형래 감독님의 에필로그가 들어가는가 하는 점입니다. 흥미진진한 시가전과 이무기 간의 전투 후에 갑작스런 에필로그는 솔직히 당황스러웠습니다. 이미 많은 방송을 통해 다 들었던 이야기들이었으니까요. 굳이 넣을 필요가 있었나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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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디 워'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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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디 워'의 한 장면


 며칠 전 썼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초속 5센티미터' 리뷰에도 했던 이야기가 여기에도 쓰일 수 있을 것 같네요. 물론 그 글에서도 '디 워'를 써먹긴 했지만. 영상이 아무리 뛰어나도 스토리, 캐릭터가 약하면 큰 성공을 거두기 힘듭니다. 스토리가 훌륭하고 캐릭터가 뛰어나야 캐릭터 상품도 팔리고, 다른 장르로 퍼져나갈 수 있는 것이죠. 친구와 '남극일기'란 영화를 보고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80억으로 저 추운데 가서 저렇게 고생해서 겨우 이 정도?' '디 워'는 이런 말을 듣진 않을 것 같습니다. 후반부는 꽤 볼만했으니까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들을 귀담아 듣지 않고 흘려버린다면 언젠가는 그것보다 더한 말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더욱 좋은 모습, 발전하는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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