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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초속 5센티미터

 얼마전 140기가의 하드디스크를 몽땅 날려먹으면서 몇 편의 글 또한 함께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중 하나가 지금 쓰고 있는 초속 5센티미터와 관련한 글이었는데요. 기억도 나지 않고 해서 작품을 다시 감상하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글을 써 봅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라는 작품을 통해서입니다. 처음 본 것은 아마 웃대였던 것 같군요. 무엇보다 신기하게 여겨졌던 것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처럼 고양이의 시각으로 모든 것을 본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다음 눈에 들어온 것은 놀라울 정도로 섬세한 디테일이었죠. 끝으로 놀란 것은 그 모든 것을 신카이 마코토 혼자 해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게임 회사를 다니고 있던 그는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로 2000년 제12회 DOGA CG 애니메이션 콘테스트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하고 본격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 게임회사도 그만두고 말이죠. 그 후 또 다시 그는 홀로 작업에 돌입 7개월만에 '별의 목소리'를 내놓습니다. 이 작품은 일본의 45석짜리 소극장에서 개봉해 3,000여명의 관객을 모았고 DVD로 발매되어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그리고는 인원을 조금 충원하여 - 그렇지만 여전히 음악, 성우, 일부 작화를 제외하곤 혼자서 작업하죠. - 장편 애니메이션인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를 내놓습니다. 전작의 후광을 받아 보려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묘하게도 이 작품의 DVD에 '별의 목소리 2'라는 부제가 붙어있기도 합니다. 내용도 흡사한 면이 없지 않아 있죠. 문자 메시지로 전달되는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이 '별의 목소리'라면 꿈을 통해 연결된 사랑은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입니다.

 다음 작품이 지금부터 이야기하려 하는 '초속 5센티미터'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참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3부작으로 나뉜 점도 괜찮았고 후반 뮤직비디오의 편집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작화야 두말할 필요도 없죠. 하지만 제작자라면 작품이 거듭될 수록 발전과 변화가 있어야 함에도 이번 '초속 5센티미터'에서는 과거에 비해 나아진 점을 발견할 수 없어 무척 아쉬웠습니다.

 그의 작품에서 항상 등장하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독백, 눈, 커뮤니케이션입니다.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에서는 주인공인 고양이의 독백, 후반부 작품을 마무리 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눈, 그리고 그녀와 외부인을 연결해 주는 전화가 중요한 도구로 사용됩니다. '별의 목소리'와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에서 또한 극을 이끌어 가는 나레이션, 매번 등장하는 눈 -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에서는 아예 눈 밭에서 많은 작업이 이루어지죠. - 그리고 등장인물을 연결해 주는 휴대전화와 꿈이 등장합니다.

 '초속 5센티미터'는 이러한 전작들의 집합체라 할 수 있습니다. '별의 목소리'에서 부터 이야기의 소재로 사용된 SF와 사랑. 신카이 마코토가 게임 영상을 만들던 사람이었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SF영상을 이야기에 매번 사용하고 있는데 이번 역시 2화에서 우주비행사라는 제목처럼 커다란 배경에 묘한 느낌의 SF영상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2화의 SF요소를 배제하고 늘 그랬던 것처럼 담담하게 이야기를 끌어 갔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야기는 각 캐릭터의 감각적인 독백으로 이끌어가고 있지요. 눈의 이미지는 벚꽃으로 치환되어 아예 제목에 사용되고 있기도 합니다. 작품 전체에서도 눈은 멈추지 않지요. 남녀 주인공은 편지로 이어져 있고 역시나 2화에서 남자 주인공은 받을 사람이 없는 문자를 계속 쓰고 있지요. '별의 목소리'에서 사용되었던 바로 그 소재입니다. '1000통의 문자를 주고 받았지만 우리는 겨우 1센티미터 가까워졌을 뿐이다.'라는 대사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늘 이야기하는 소통의 문제가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게 뭐가 잘못이야? 라고 되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라는 것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매 작품이 성공을 거두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면 변화를 통한 발전이 있어야함에도 전작을 답습하고 있다는 생각만 드니까요. 오히려 독백은 퇴보한 느낌이죠. 대사와 텍스트로 내용 전달을 시도한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가 너무 인상적이었으니까요.

 SF영상 외에도 철길, 스쿠터, 자전거 등 세밀한 묘사를 필요로 하는 소재가 매화 등장합니다. 최소의 인원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함에도 이 정도 퀄리티를 낼 수 있다!라고 자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 점이 놀랍기도 하지만요. 문제는 그러한 퀄리티를 통해 새로운 표현 방법, 이야기 전개를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도 말했지만 '초속 5센티미터'를 재밌게 보았습니다. 감정이입이 되는 부분도 꽤 있었구요. 나름 연애를 해보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보는내내 '또 이거야?'하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디 워'가 해외 평론가들에게 혹평을 받았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CG는 괜찮지만 스토리와 캐릭터가 문제다라는게 대부분이군요. 신카이 마코토 감독도 이러한 평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화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같은 이야기를 계속하게 되면 지루해지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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